이 논리를 적용하면 트럼프는 어떤 거짓말을 해도, 설사 뉴욕 5번가 한가운데서 누군가를 총으로 쏘아 쓰러뜨린다 해도 ‘단 한 표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건물에 자신의 이름을 넣고 아파트, 골프클럽을 하나로 엮어 명품 프랜차이즈로 선전했다. 예능프로그램 ‘어프렌티스’를 통해서는 자신의 집과 자가용, 제트기를 공짜로 선전하며 ‘당신도 트럼프가 될 수 있다’고 유혹했다.
브랜드에 편승하는 대중의 기대 심리를 트럼프는 어떻게 이용하고 있을까. 이를 테면 전 분야에서 그는 ‘충격’에 가까운 일들을 벌이고 있다. 국가 규제의 해체, 복지국가와 사회 서비스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 화석 연료 열풍의 조장, 그리고 이민자들과 급진적인 이슬람 테러리즘을 겨냥한 문명 전쟁 등이 그렇다.
이런 일들은 사회와 시장에서 연쇄적 충격을 일으킨다. 규제 완화로 시장이 거품이 터질 수 있고 반이슬람 정책으로 안보상 충격이 발생한다. 화석 연료 채취는 기후 충격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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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트럼프가 ‘쇼크 독트린’(충격 요법)에 의지하고 있다고 역설한다. 쇼크 독트린은 전쟁, 쿠데타, 테러 공격, 시장 붕괴, 자연재해 등 집단적 충격으로 대중이 혼란에 빠진 현실을 체계적으로 이용해 철저히 친기업적인 조치들을 밀어붙이는 전술을 의미한다.
저자는 트럼프가 이런 위기 상황을 만들어 자신이 구축한 브랜드에 대중이 기대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행정부를 기업 정서로 가꿔 자신의 원하는 의제를 밀어붙여 민주주의의 규범들을 유예하는 전술을 통해 신자유주의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핵심이다.
실제 트럼프 내각은 거대 기업 출신들이 정부 정책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국무부에 엑슨 모빌 출신, 국방부에 보잉사 출신, 재무부에 골드만삭스 출신 등 기업의 이익을 대변해온 신자유주의의 그림자들이 권력을 장악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트럼프의 이상하고 위험한 정치에 대해 “노”(No)는 해답이 될 수 없다. 저자는 트럼프를 넘어뜨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브랜드를 손상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우두머리’라는 트럼프 개인 브랜드를 정치적 ‘꼭두각시’나 역겨운 기업 이미지로 만들어 타격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브랜드에 대한 거부자들이 늘수록 정책의 정상화도 이뤄질 수 있기 때문.
저자는 트럼프가 돌발적인 출현이 아니라 지난 반세기 동안 지속해 온 위험한 조류의 연장선상이라고 보고 있다.
“트럼프는 결코 충격적인 인물이 아니다. 그는 오래전에 차단해야 했던 도처에 퍼져 있는 아이디어들과 동향들이 낳은, 진부하기 짝이 없고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결과물이다. 트럼프의 악몽 같은 대통령 활동이 내일 당장 끝나더라도, 트럼프를 낳았고 세계 각지에서 똑같은 복제 인물을 만드는 정치적 상황은 여전히 그대로일 것이기 때문이다.”(서문 22쪽)
저자는 “트럼프는 단순히 미국의 대통령이 아니라 우리 문명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상징”이라며 “문명의 위기가 다가온 상황에서 단순히 수동적인 ‘반대’만 외쳐서는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노로는 충분하지 않다=나오미 클라인 지음. 이순희 옮김. 열린책들 펴냄. 384쪽/1만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