낄낄 웃다가 아하 깨달음 주는 별난 '과악(樂)자'들의 수다쇼

머니투데이 류준영 기자 2018.04.21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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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제인의 과장창' 녹음현장…'學보다 樂' 아이들에 '과학자의 꿈' 들려주고파

(왼쪽부터)목정완, 최주영, 레이디제인, 황영준, 과장창 진행자 김재혁, 이선호/사진=임성균 기자 (왼쪽부터)목정완, 최주영, 레이디제인, 황영준, 과장창 진행자 김재혁, 이선호/사진=임성균 기자


“금(金)을 흡수하는 식물이 있는데, 이 식물을 통해 금을 더 쉽게 얻을 수 있다. 듣자마자 혹 하네요.”(레이디제인)

“작년 영국 페임랩(Fame-Lab) 대회 1등을 차지한 남아공 대표의 발표 내용인데요. 폐광지역 중금속 오염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서 중금속을 잘 흡수하는 나무를 심었는데 이 중에 구리나 금처럼 특정 이온을 더 많이 흡수하는 종도 있었다는 얘기입니다.”(목정완 카이스트(KAIST) 생명과학과 석박사통합과정)

지난 13일 오후, 요즈음 뜨는 과학 분야 팝캐스트 ‘레이디제인의 과장창(과학으로 장난치는 게, 창피해?)’ 녹음이 한창인 홍대 팟빵 스튜디오. 가수 레이디제인의 진행에 맞춰 4명의 ‘과학덕후’들이 재치있게 대화를 받아주고 맞장구를 친다.



‘과커(과학 커뮤니케이터) 특집’으로 진행된 이날 녹음에선 과학 토크 오디션이라 불리는 페임랩 대회 지난해 수상자들의 발표내용이 흥미롭게 다뤄졌다. 페임랩은 과학 커뮤니케이터를 양성하는 경연대회다. 파워포인트(ppt) 등 일반적인 발표자료 없이 과학 주제를 정해 3분 이내로 발표한다. 2005년 영국 첼트넘 페스티벌의 마스코트 행사로 시작된 페임랩은 매년 30여개국이 참가하며 세계적인 과학축제로 자리매김해왔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4년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이 대회를 아시아에선 최초로 도입, ‘페임랩코리아’란 이름으로 매년 5월 개최하고 있다. 대회 우승자는 페임랩 대회 한국대표로 참여하는 기회가 주어진다.

지난해 10월부터 과장창의 진행자로 활동 중인 이선호 씨도 페임랩코리아 톱10 순위에 오른 인물이다. 이 씨와 같은 사람을 ‘페임래버’라고도 부른다. 페임랩코리아가 과학기술을 청중에게 쉽게 이해시킬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을 갖춘 이에게 붙여준 호칭이다.



(왼쪽부터)황영준, 이선호, 목정완, 최주영/사진=임성균 기자 (왼쪽부터)황영준, 이선호, 목정완, 최주영/사진=임성균 기자
이날 녹음은 21일 ‘과학의 날’을 맞아 3명의 페임래버가 특별 게스트로 출연했다. 이들 이력이 제법 화려하다. 한양대 유기나노공학과 석사과정인 최주영 씨는 학부 시절 공예를 전공, 한때 예술가의 길을 동경했다. 출중한 미모로 ‘2016 미스월드코리아’에 출전한 바 있다. 목정완 씨는 2005~2006년 2년 연속 생물올림피아드에 출전, 금상을 받았다. 황영준 씨는 고등학교를 2년 만에 조기 졸업하고, 포항공과대에서 응원단장으로 활약한 바 있다. 이들과 함께 ‘우리나라 과학문화’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네 사람은 “과포자(과학을 포기한 자)가 생기고, 아이들이나 젊은이들 사이에서 ‘과학자’라는 꿈이 사라진 이유는 과학을 가르치는 방법에서 찾을 수 있다”며 “그 원인을 제공한 기성 세대들이 다시 한번 과학에 대한 설렘과 기대를 가질 때 이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페임랩코리아 출전 시 다뤘던 주제는


▶목정완 씨(이하 목)=별다른 기행없이 자라온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뭔가 특별한 행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평소 해왔다. 발생생물학을 연구하는 박사과정을 밟는 어느 날부터 닭을 기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유정란 한 줄을 사들고 와 아이스박스 안에 노트북 어댑터를 넣어 부화기를 만들었다. 게임 프로그램을 실행시켜보니 유정란 부화 온도인 37도가 정확히 유지됐다. 그런 상태로 3주가 지난 후 병아리가 태어났다. 그때 형용할 수 없는 경이로움을 느꼈다. 이런 경험을 대회에 나가 발표했다. 하나의 세포가 한 생명체로 거듭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선호 씨/사진=임성균 기자 이선호 씨/사진=임성균 기자
▶이선호 씨(이하 이)=우리 몸은 약 100조개의 세포로 이뤄져 있는데 이들끼리 세상에서 가장 작은 택배를 보낸다. 바로 엑소좀이라는 것인데 세포 내 단백질, DNA(유전자) 물질을 잘 포장해 분비하는 ‘세포의 아바타’라고 생각하면 된다. 흥미로운 점은 암세포도 엑소좀을 보낸다. 암세포 엑소좀이 정상 세포에 전달되면 암세포가 쉽게 전이될 수 있는 환경으로 바뀐다. 즉, 엑소좀을 연구하면 수많은 난치성 질환을 치료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피 한방울 뽑아서 엑소좀만 분석하면 기존 CT(컴퓨터단층촬영)나 MRI(자기공명영상)보다 훨씬 간편하고 저렴하게 암을 조기 진단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도 나와 있다.

▶최주영 씨(이하 최)=젤 네일아트를 주제로 설명했다. 학부 시절 미대생이었고, 미인대회 등에 출전하면서 젤 네일아트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손톱에 붙어있을 때는 딱딱해 보이는 젤 네일아트가 실제로는 액체상태라는 반전을 보여주며, 빛이 있어야만 반응할 수 있는 라디칼(화학변화 시 분해되지 않고 다른 분자로 이동하는 원자무리)연쇄 반응, 고체와 액체의 중간상태인 젤 상태를 간단한 소품을 통해 이야기했다.

-대회 참여 이후 달라진 점은

황영준 씨/사진=임성균 기자황영준 씨/사진=임성균 기자
▶목=아침부터 밤까지 연구실에만 틀어박혀 있던 일상이었는 데 이제 주말이면 길거리로 나간다. 청중이 많은 공간에서 게릴라성 강연을 진행하는 ‘사이언스 버스킹’, 과학을 소재로 한 성인연극 SNL(사이언스나이트라이브) 등 이전에 시도해 보지 못한 다양한 과학대중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누적 청취율이 약 70만명 가까이 된다. 국내에는 아직 과학을 소재로 한 팟캐스트가 많지 않아 쉽게 주목을 받았던 것 같다. 방송을 진행하면서 어떻게 이런 연구가 가능하지 하는 감탄사를 터뜨릴 때가 많다.

-활동 중 겪은 에피소드가 있다면

▶황영준 씨(이하 황)=작년 대학로에서 실제 필드에서 활동 중인 배우들과 함께 과학연극무대에 처음 오른 적 있다. 연습하며 수차례 외웠던 대본이 생각나지 않아 애드립으로 만회해 보려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여느 연극과 달리 과학연극은 대본 자체가 워낙 정교한 이론과 원리 중심으로 이뤄져 맥을 놓치면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다. 연기 도중 복장 일부분이 벗겨지는 장면도 있었는데 너무 많이 벗겨져 제 입에선 엄청난 데시벨의 고함이, 관객들에게는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모르는 일생일대의 최악의 당혹함을 안겨준 것 같아 미안하다.

목정완 씨/사진=임성균 기자목정완 씨/사진=임성균 기자
▶이=푹푹 찌는 무더위가 이어지던 지난해 7월, 신촌에 자리를 잡고 생애 첫 과학버스킹을 할 때가 떠오른다.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이불킥을 날리게 된다. 비바람까지 불어 구경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지나가는 행인들마저도 눈길을 전혀 주지 않던 ‘원맨쇼’였다. 그래도 시작한 건 끝을 봐야 한다는 생각에 미리 짠 시나리오에 맞춰 공연을 마쳤다. 오직 악으로 깡으로 버틴 그날의 공연 덕분에 지금은 과학공연장에 홀로 서도 두렵지 않다.

-자신이 생각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와 앞으로 역할은

▶황=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이슈, 이를테면 원전과 미세먼지 등은 과학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켰다. 이제 과학은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과 같은 개념이 아니다. 우리 삶과 불가분의 관계다. 과학적 사고와 판단이 더해지면 집단적 이해도가 높아지고, 사회적 합리성도 생긴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이 과정에서 과학과 사회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최주영 씨/사진=임성균 기자최주영 씨/사진=임성균 기자
▶최=고궁 나들이를 나가보면 한복을 차려 입은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난다. 요즈음 나온 생활한복이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춰 잘 디자인된 덕분이다. 이처럼 사람들이 과학에 대해 관심을 갖기 위해선 ‘때깔 좋은 콘텐츠’가 필요하다.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은 이런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데 있다.

▶이=우리가 가장 쉽게 접하고 편하게 즐기는 문화로 음악을 꼽는다. 수많은 학문분야 중 유일하게 음악만이 음학(學)이 아니 음악(樂)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선다. 이 한 글자에 과학소통의 철학이 모두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과학도 ‘과악’이 되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이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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