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자녀인 '코피노'의 양육비 청구소송을 여럿 맡고 있는 법률사무소 해주 소속 정준영 변호사(42·변호사시험 3회)의 말이다.
“2010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들어가기 전 우연히 TV 다큐멘터리에서 코피노들의 사연을 봤습니다. 변호사가 되면 소송을 통해 그들을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죠.”
필리핀 법원에서 승소하더라도 강제집행이 어렵기 때문에 아버지가 한국인인 경우 처음부터 한국 법원에서 소송을 한다. “아버지가 한국인이지만 계속 필리핀 현지에 있어서 송달이 안 돼 어쩔 수 없이 소송을 취하한 적도 있죠.”
소송을 제기한 뒤엔 아버지의 인적사항을 확인하는 게 가장 힘들다. 실제로 찾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사실조회 신청을 통해 사진, 전화번호, 이름 등을 토대로 아버지를 찾는다. 탈퇴를 했더라도 기록이 남는 이메일 주소도 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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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이 시작되면 아버지가 필리핀에 가서 어머니를 협박하거나 돈을 준다고 약속하고 그만두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약속한 돈을 받지 못해 다시 의뢰인에게 연락이 오기도 하죠.”
소송이 시작되면 유전자 검사를 거친다. 이 단계에서 자녀와 아버지의 유전자가 일치하는지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 “2014년에 맡았던 사건은 자녀가 둘이었는데, 아버지는 첫째는 자기 아이가 맞지만 둘째는 아니라고 주장했죠. 유전자 검사를 해보니 실제로는 반대였습니다.”
전체 소송 과정은 사건마다 다르지만 인적사항 확인과 검사 등에 꽤 시일이 걸려 1년 가까이 소요되기도 한다. 유전자 검사, 통역, 출장 비용, 인지송달료 등도 먼저 부담한 뒤 승소하면 비용을 돌려 받는 방식이라 위험 부담이 크다.
“한 번은 9살 아이의 유전자 검사를 시도했는데, 1943년생 아버지가 이미 숨졌다는 겁니다. 이러면 소송이 중단돼 비용은 돌려 받을 수 없게 됩니다.”
하지만 승소했을 때의 보람은 무엇보다 크다. 특히 어린 아이들의 경우 K팝 등 한류에 관심이 있는 경우가 많아 한국인 국적을 갖고 태권도와 한국어를 배우는 등 인생이 180도 달라진다고 한다.
필리핀은 아직 이메일 등을 사용하는 사람도 많지 않고, 우편 역시 느린데다 비싸다. 한 사건을 놓고 정 변호사가 직접 현지를 서너번 왔다갔다 해야 할 때도 있다. 이러다보니 정 변호사는 현지 분사무소를 설립할 계획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