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미래에 베팅한 미친 남자’ 손정의의 점선면 전략

머니투데이 김신회 기자 2018.04.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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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 제국] ① 50수 앞을 보고 투자한 뒤 순식간에 연결 → 플랫폼 장악해 '게임의 룰' 지배

편집자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세계 비즈니스 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미국의 우버와 중국의 디디추싱에 투자하면서 차량공유제국을 건설하고 있고, 아마존에 맞서는 전자상거래제국도 구축하고 있다. 반도체·인공지능 회사에 투자하면서 차량공유와 전자상거래, 자율주행차까지 편입하는 거대한 IoT(사물인터넷) 제국을 만들고 있다. 일국의 비즈니스를 자신의 IoT 제국에 모두 복속시키겠다는 구상이다.

[MT리포트]  ‘미래에 베팅한 미친 남자’ 손정의의 점선면 전략


손정의 회장은 1986년 작은 벤처에 불과하던 마이크로소프트(MS)를 발굴해 소프트웨어를 일본에 독점 판매하며 큰돈을 벌었다. 10년 뒤인 1996년에는 창업 6개월밖에 안 된 야후의 지분을 인수하고 야후재팬을 세운다. 야후는 문을 닫았지만 야후재팬은 여전히 일본 포털 1위다. 다시 10년 뒤인 2006년에는 일본 3위 이동통신사이던 보다폰재팬을 인수해 아이폰을 독점 판매하며 몸집을 불렸다. 이 때까지만 해도 그는 장사의 귀재, 비즈니스의 천재 정도로 불렸다.

하지만 그로부터 다시 10년 뒤인 2016년 손 회장을 보는 세계의 시선은 완전히 달라졌다. ‘미래에 베팅한 미친 남자’라 불리기 시작했다. 손 회장은 60세 생일이 되는 날 은퇴하겠다고 공언해왔지만 이를 1년 앞둔 2016년 번복했다. “욕심이 생겼다. 엄청난 패러다임 시프트의 새로운 비전을 보았다. 내 소임이 아직 덜 끝난 것 같다.”



그러면서 그해 7월 손 회장은 영국 반도체 설계회사 ARM을 인수했다. 1주당 43%의 프리미엄을 얹어 전액 320억달러(약 35조원) 현금으로 인수했다. ‘미쳤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는 오히려 “50수 앞을 내다보고 돌을 던졌다“, “정말 싸게 사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지금 전 세계 스마트폰의 90% 이상이 이 회사가 설계한 반도체를 쓰고 있다.

이때부터 손 회장은 자신이 말한 ‘패러다임 시프트’라는 ‘빅픽처’의 포석들을 정조준해 사들이고 투자하기 시작했다. 차량공유, 자율주행, 반도체, 전자상거래, 인공위성 통신, IoT(사물인터넷), 로봇 등 분야는 달랐지만, 핵심기업들을 손에 넣은 뒤 ‘미래’라는 키워드로 연결했다.



손 회장은 최근 2년간 전 세계 차량공유회사들을 차례차례 장악했다. 우버(미국), 디디추싱(중국), 그랩(싱가포르), 올라(인도), 99(브라질) 등에 투자했다. 투자한 회사의 경쟁사에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벤처캐피털 업계의 불문율도 깨버렸다. 우버가 최근 그랩에 동남아 사업을 넘긴 것도 손 회장의 작품이다. 손 회장의 계산은 각 나라 차량공유시장을 장악한 뒤 이를 연결해 세계 차량공유 플랫폼을 만드는 것. ‘소유’가 아니라 ‘공유’가 될 수밖에 없는 자율주행차를 차량공유 플랫폼 안으로 넣겠다는 구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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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회장은 전자상거래회사들도 하나씩 수중에 넣고 있다. 알리바바(중국), 쿠팡(한국), 스냅딜·플립카트(인도), 라자다(싱가포르), 토코피디아(인도네시아)에 잇달아 투자했다. 이 역시 손 회장의 계산은 각 나라 전자상거래를 장악한 뒤 이를 연결해 아시아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만드는 것. ‘아시아 이커머스 블록’을 만들어 아마존을 고립시킨다는 구상이다.

손 회장은 또 기술을 지배하는 기술에도 공을 들였다. 그는 “인터넷 다음은 모든 것이 인공지능으로 연결되는 IoT”라며 미국 그래픽카드(GPU) 제조업체 엔비디아에 투자했다. 엔비디아의 GPU는 인공지능 개발의 핵심인 딥러닝에 최적화된 반도체다. 그는 또 “정보혁명 다음은 로봇혁명”이라며 보스턴다이내믹스 등 로봇회사들에도 투자했다. 소형위성 900개를 띄워 통신망을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미국 인공위성 통신망 서비스 원웹에도 투자했다.


소프트뱅크가 지금까지 출자한 기업은 800여곳. 지난해 5월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10조엔(약 100조원) 규모의 기술투자펀드(비전펀드)도 만들었다. 손 회장은 지난 1월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회견에서 “10조엔이 2년 정도 지나면 고갈될 것”이라며 “100조엔 규모의 펀드를 구상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투자한 회사들은 모두 연결이 된다. 로봇회사들이 개발하는 자율주행로봇은 전자상거래회사의 물류창고에서 사용된다. 반도체설계회사 ARM의 목표는 전 세계 1조개의 IoT 디바이스를 연결하는 것인데 여기엔 엔비디아의 딥러닝 기술이 탑재된다. 원웹의 인공위성 통신망은 이 IoT가 원활하게 연결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손 회장이 구상하는 단일의 차량공유 플랫폼과 우버가 개발 중인 자율주행차에는 엔비디아와 ARM이 개발한 딥러닝 칩이 탑재된다. 월마트가 우버의 차량서비스를 활용한 식료품 배송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는데 손 회장이 이를 통해 미국에서 아마존과 정면으로 맞설 거라는 시나리오도 나온다.

‘점→선→면 전략’이자 ‘군(群)전략’이다. 서로 다른 모델의 독립적 기업들에 투자한 뒤 이들을 자본관계로 결속하고 종국에서 차량공유, 자율주행, 전자상거래 각각의 플랫폼을 한꺼번에 지배하는 거대 IoT 플랫폼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손 회장은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물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IoT가 인류 최대 패러다임 시프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 플랫폼의 권력자는 소프트뱅크가 된다. 플랫폼을 장악해 그 제국의 ‘게임의 룰’을 지배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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