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날]여기저기 술판… 봄철 공원은 '음주공화국'

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2018.04.08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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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나들이 진상족-③]음주 만연… "청소년 등 찾는 공원서 과한 음주 제한해 건전한 문화 정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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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저녁,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에서 시민들이 여유를 즐기고 있다. /사진=이재은 기자3일 저녁,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에서 시민들이 여유를 즐기고 있다. /사진=이재은 기자


온가족이 나들이에 나섰다가 온통 술판인 공원의 모습에 당혹감을 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과한 음주에 따른 추태가 심각해지자 당국도 음주 문화 개선에 나섰다. 서울시는 새해 서울숲·월드컵·경의선숲길·어린이대공원 등 22개 공원을 '음주청정지역'으로 지정했다. 음주로 소음·악취 등 혐오감을 주면 1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연트럴파크에서 시민들이 음주를 하며 여유를 즐기고 있다. /사진=김자아 기자연트럴파크에서 시민들이 음주를 하며 여유를 즐기고 있다. /사진=김자아 기자
◇'음주청정지역' 현수막 비웃는 음주족= 봄 날씨가 완연한 3일 오후 5시 연남동 경의선숲길(연트럴파크)에 일과를 마친 시민들이 속속들이 몰려들었다. 연트럴파크에 들어서자마자 '테이크아웃 스테이크'를 파는 곳이 보였다. 바로 옆 가게는 각종 술을 파는 리큐르샵(주류전문점)이었다.

연트럴파크에는 지난해부터 '공원이 2018년 1월1일부터 음주청정지역으로 지정 운영된다'는 현수막이 설치됐다. /사진=이재은 기자연트럴파크에는 지난해부터 '공원이 2018년 1월1일부터 음주청정지역으로 지정 운영된다'는 현수막이 설치됐다. /사진=이재은 기자
시민들은 이곳에서 술을 여러병 사들고 펴놓은 돗자리나 벤치에 앉았다. '공원이 2018년 1월1일부터 음주청정지역으로 지정 운영된다'며 걸린 현수막이 무색했다. 이를 비웃듯 현수막 주변에서 맥주와 함께 핫도그, 베트남식 바게트, 크림빵 등을 즐겼다.



공원을 관리하는 서부공원녹지사업소 관계자 2명은 "취객들의 추태가 말도 못한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들은 "술에 취해서 시끄럽게 하는 건 기본이고, 공원내 나무에 서서 소변 보는 것도 예삿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짙은 애정행각도 심각한데, 공원 한복판 술 취한 남녀가 서로 다리를 겹치고 있는 등 낯뜨거운 일이 다반사"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손 쓸 방법은 없다. 공공 음주를 불법으로 보는 상위법이 없어 '음주청정지역'의 강제성이 없기 때문. 공원 관계자들은 "파출소도 어떻게 못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건강증진과 관계자도 "단속에 나설 때면 파출소에 신고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고 말했다.



3일 오후, 여의도 한강공원 근처 여의나루역의 편의점에 주류를 사려는 시민들로 가득하다. /사진=이재은 기자3일 오후, 여의도 한강공원 근처 여의나루역의 편의점에 주류를 사려는 시민들로 가득하다. /사진=이재은 기자
◇"어떻게 모든 사람이 술을 마시죠?"= 한강공원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저녁 6시30분, 여의도 한강공원 근처 5호선 여의나루역은 공원을 향하는 나들이족으로 가득했다. 이들은 한 손에 기타를, 다른 한손에는 주류를 들고 공원으로 향했다. 역내 편의점에도 맥주·소주를 사려는 인파로 가득했다. 한강공원은 하천법에 적용되는 장소라 '음주청정지역'에서 제외돼 있다.

이를 알기라도 하듯 시민들은 삼삼오오 돗자리를 깔고 둘러앉아 배달 음식과 함께 맥주 피처 2병과 소주 3병씩을 두고 술을 즐기고 있었다.

대다수 시민들은 음주가 가능한 한강공원 문화에 만족감을 보였다. 대학생 장서인씨(21)는 "술집에서 마시면 비싼데 야외에서 즐기면 기분도 좋고 값도 싸다"고 말했다. 인근 직장인 조모씨(50)도 "좋은 날씨에 적당히 술을 즐기는 게 좋다"고 말했다.


3일 저녁,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에서 시민들이 여유를 즐기고 있다. /사진=이재은 기자3일 저녁,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에서 시민들이 여유를 즐기고 있다. /사진=이재은 기자
하지만 우려를 나타내는 이들도 적잖았다. 환경미화원 A씨는 "공원내 술 판매를 금지해야 한다"면서 "술이 추태와 시민의식 실종의 근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새벽 2~3시까지 술을 마시고 쓰레기를 그대로 두고 간다"고 설명했다.

그는 "술에 취해 자꾸 시비를 거는 이들에게 '어르신'이라고 부르며 말리는 일도 잦다"고 토로했다. 이어 한강공원이 청소년 비행의 온상이라면서 "청소년들이 술을 사와 밤에 텐트에서 민망한 짓을 하는 게 여간 많은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공원 음주문화가 외국인들의 눈에도 과하긴 마찬가지였다. 모스크바 출신 관광객 올가 키리요바·마리아 바카모바씨는 "러시아에선 술을 더 많이 마시지만 공개된 장소에선 마시지 않는다"면서 "건강에도 나쁘고 싸움도 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술도 밤 11시 이후에는 팔지 않는다"면서 "여기서는 '모든' 이들이 술을 마시고 있어 놀랐다"고 설명했다.

어린이 대공원 정문 입구에 '음주 금지'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사진=이재은 기자어린이 대공원 정문 입구에 '음주 금지'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사진=이재은 기자
◇'NO 음주' 선언 이후 평화 찾은 곳도= 음주 문제가 공원 본연의 기능을 잃게 한다는 지적에 바뀐 곳도 있다. 어린이대공원은 수년 전까지만 해도 공원내 편의점에서 주류를 판매했지만 대대적으로 개선했다.

어린이대공원 내 편의점에 들어가 "맥주 없냐"는 질문을 던지자 주인은 "공원 안 모든 편의점에서 다 술 판매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불법은 아니지만 다 같이 팔지 않기로 해서 없다"며 기자에게 무알코올 맥주를 권했다.

공원 정문 안내인은 이 같은 변화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예전에는 술 먹고 난동 부리고, 소리 지르는 이들이 많았다"면서 "이제 문화가 정착돼 간혹 군민회 등에서 와서 박스째로 술을 마시는 이들이 있으면 민원이 수댓건씩 들어온다"고 덧붙였다.

3일 어린이대공원 내 편의점 전경. /사진=이재은 기자3일 어린이대공원 내 편의점 전경. /사진=이재은 기자
시민들의 만족도도 높다. 딸 부부, 손자와 함께 산책을 즐기고 있던 외할머니 김모씨는 "술 취한 이가 없으니 아이를 데리고 안심하고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음주청정지역 조례안'을 발의한 김구현 전 서울시의원은 "술을 사회적 폐혜가 될 정도로 마시는 걸 금지하는 건 세계적 추세"라면서 "우리나라는 음주에 대해 관대한데 청소년·아이들이 찾는 공원 등에서라도 과한 음주를 제한할 수 있도록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빨간날]여기저기 술판… 봄철 공원은 '음주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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