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손 놓은 환경부, 넋 놓은 장관...뒤늦은 미봉책

머니투데이 세종=정혜윤 기자 2018.04.02 15:49
글자크기

[분리수거의 반란-재활용 대란, 급한 불은 껐지만…]③중국 수입 거부에 미국·유럽 수입량 증가, 폐지·플라스틱 가격↓ 업체들 수거 보이콧 선언

편집자주 단 며칠 만에 아파트 곳곳마다 재활용 쓰레기 대란이 벌어졌다. 이미 반년 전부터 예고됐지만 대책을 세우지 않은 결과다. 부랴부랴 발등의 불을 껐지만 문제는 복잡하다. 정부와 지자체, 아파트 주민, 재활용업체 등 쓰레기 분리수거를 둘러싼 입장이 서로 얽혔다. 재활용 비용과 수익은 나라밖 관련 시세와도 직결된다. 폐자재 재활용 정책을 근본적으로 점검하고 대책을 세우지 못하면 대란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재활용 쓰레기 수거 업체들의 스티로폼과 비닐 수거 중단이 예고된 1일 서울 용산구의 한 아파트 쓰레기 분리수거장에 비닐 및 플라스틱 배출에 대한 안내문이 붙어 있다.   재활용 업체들은 중국의 폐자원 수입 규제 등으로 폐자원 가격이 급락해 이날부터 스티로폼 등을 수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2018.4.1/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재활용 쓰레기 수거 업체들의 스티로폼과 비닐 수거 중단이 예고된 1일 서울 용산구의 한 아파트 쓰레기 분리수거장에 비닐 및 플라스틱 배출에 대한 안내문이 붙어 있다. 재활용 업체들은 중국의 폐자원 수입 규제 등으로 폐자원 가격이 급락해 이날부터 스티로폼 등을 수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2018.4.1/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7개월 동안 넋 놓고 있던 김은경 환경부 장관은 폐기물 대란이 일어나고서야 부랴부랴 현장을 찾았다. 김 장관이 취임 후 줄곧 환경부의 ‘반성’을 촉구했지만 정작 ‘반성’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환경부는 폐기물 대란으로 한바탕 난리를 치른 뒤에야 뒤늦게 국내 폐기물 우선 사용과 같은 대책을 내놓았지만 재활용 가격하락이란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쓰레기 대란은 언제든 다시 불거질 수 있는 여지를 안고 있는 셈이다.



환경부는 2일 “폐비닐 등 수거 거부를 통보한 재활용업체와 협의한 결과 48개 업체 모두가 폐비닐 등을 정상 수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활용품 회수·선별업체들이 아파트에 정상 수거 계획을 통보하면 수거가 곧 정상화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계속해서 업계와 아파트간 재계약을 설득하기로 했다.

그러나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 중국이 이미 지난해 7월 환경 악화를 이유로 플라스틱, 종이 폐기물 등 24개 품목 수입을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국내 재활용 수거 업체들의 수출길이 막혔다. 주로 국내 수요가 적은 저급(유색, 복합재질) 페트(PET) 파쇄품, 폴리염화비닐(PVC) 수출이 급감했다.



중국으로의 폐플라스틱 수출량은 지난해 1~2월 2만2097톤에서 올해 1774톤으로 약 92% 줄었다. 폐지류 역시 지난해 같은 기간 5만1832톤에서 올해 3만803톤으로 40.6% 떨어졌다.

그 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 폐기물의 절반가량을 수입해가던 중국이 연초부터 재활용품 수입을 금지하면서 갈 곳을 잃은 미국과 유럽 등의 국가들의 폐지, 플라스틱 등이 국내에 수입됐다.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폐지 가격은 지난해 1kg 당 수도권 평균 130원에서 지난달 90원까지 내려 왔다. 지난해 kg당 319원이었던 플라스틱 가격도 지난달 257원이 됐다.

중국 수출길이 막힌 상황에서 외국산 폐기물 수입이 증가하자, 국내 재활용 업체들이 설 곳을 잃었다. 보통 재활용 수거 업체들은 각 아파트 관리사무소, 부녀회 등과 계약을 맺고 폐지와 비닐, 플라스틱 등을 묶어 처리한다. 비닐과 스티로폼은 팔아도 돈이 안 되지만 폐지 등은 수익이 나기 때문에 덤으로 가져갔다.


그런데 돈이 되는 폐지 가격까지 폭락하면서 수거 업체들이 보이콧을 선언했다. 더구나 비닐 등은 오물이 묻어 분리수거가 잘 안 된 경우가 많다. 수거한 폐기물 중 40~50%는 쓰레기로 처리해야 한다. 이 때 들어가는 비용을 업체가 감당해야 하는 데 폐지가격이 급락했으니 가져갈 이유가 없어졌다.

중국발 재활용 쓰레기 대란에 각국은 대책 마련에 돌입했지만, 환경부는 손을 놓고 있었다. 유럽은 지난 1월 “모든 플라스틱 포장지를 재사용하고 일회용 컵 사용을 금지하겠다”고 발표했고, 미국과 호주 등은 자국 내 매립지를 활용하고 인도네시아·인도 등 다른 아시아 국가로 폐기물을 수출하기로 했다.

환경부가 한 것이라곤 지난달 26일과 30일 두 차례에 걸쳐 지자체에 공문을 보내 폐비닐 등 재활용품을 규정대로 재활용품으로 분리 배출해야 한다는 공문을 보낸 것 뿐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늦어진 건 아니고, 계속 준비를 해 오고 있었는데 발표 시점을 못 맞춘 것 뿐”이라고 말했다. 이 사안이 장관에게 제대로 보고됐는지, 장관이 어떤 의사결정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을 하지 않았다.

환경부는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서울시 등 수도권 지역 관계자들과 재활용업계 간담회를 마련했다. 당초 환경부 담당 과장 주재였던 재활용업계 간담회는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 안병옥 환경부 차관 주재로 격상됐다. 과장급이면 할 수 있는 일을 차관이 해야 할 정도가 된 것이다.

김 장관이 이날 갑자기 경기도 광명시에 위치한 태서리리사이클링 업체와 인근 아파트단지 등을 찾았다. 이 업체는 당초 폐비닐류 등 수거 거부 의사를 밝혔다 지난 1일 입장을 바꿨다. 상황이 종료된 마당에 현장을 찾는 것은 환경부 장관이 넋 놓고 손 놓고 있었다는 비판에 대한 면피성 행정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환경부가 올바른 분리배출 홍보를 통해 수거·선별하는 과정에서 잔재물을 최소화하고, 업체 처리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이달 중 관련 규정 개정을 추진한다고 했지만 가격하락이란 근본요인을 잡지는 못한다. 유관기관 합동으로 재활용 시장 안정화 대책을 마련해 발표했지만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알 수는 없다. 국내 폐기물 우선 사용과 제도화를 언급했지만 더 싼 폐기물이 있는데도 국산구매를 강제하는 것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