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흔들기식 美 통상공세, 신뢰가 필요할 때

머니투데이 세종=유영호 기자 2018.04.03 0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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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릴 것이 없는 협상판이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레드라인을 지켰고, (철강 관세는) 우리가 가장 먼저 국가 면제 협상을 마무리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달 23일 한·미 FTA 개정협상 및 미 무역확장법 232조 철강관세 면제 협상을 일괄타결한 직후 스스로 한 평가다. 미국에 자동차시장 일부를 양보했지만 연간 268만톤 철강 수출물량에 25% 관세를 면제받기로 했다. 관세율 53%를 적용하는 12개국에 이름이 올라갔던 점을 고려하면 ‘선방’이라는 할 만 했다.



하지만 열흘 만에 분위기가 달라졌다. 환율 이면합의 논란부터 북·미 정상회담과 한·미 FTA 개정 연계설까지 미국의 ‘흔들기’식 통상공세가 이어지면서다.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주말 내놓은 무역장벽보고서에서 ‘레드라인’인 사과·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을 압박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주목해야 할 점은 우리가 이번 협상에서 ‘이익균형’을 달성했다는 것이다. 양측이 ‘윈-윈(win-win)’이라고 언급한 것은 분명한 시사점을 준다. 협상의 기본은 주고 받기다. 받기만하고 주지 않으려 하면 판은 깨지기 마련이다. 잃은 것이 더 많다는 비판도 있지만 이익균형은 상대적 개념이다. 사자와 맨몸으로 싸워 팔 하나를 다쳤다고 해서 패했다고 비난해야 할까. 한국은 세계 11위 경제국이지만 미국과 비교하면 사자와 맨몸의 사람만큼 격차가 크다.



협상을 단 3개월 만에 끝낸 것도 인상적이다. 1~2년을 예상했는데 예상 밖 속전속결이었다. 중국 춘추시대 명장 손무는 저서 ‘손자병법’에서 “전쟁은 전략이 졸렬해도 속히 끝내는 것이 가장 좋다”고 조언했다. 불필요한 소모전을 피해야 탄화(국가경제)가 바닥나지 않고 또 다른 전쟁에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상리스크는 항상 존재한다”는 김 본부장 말처럼 끝없는 통상 전쟁을 앞둔 우리 상황과 딱 맞다.

통상당국은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와 일전(一戰)을 치렀고, 미국발 추가 공세는 다음 전투지 지난 전투의 연장전이 아니다. 지금은 상대 노림수에 걸린 ‘제 살 깍아먹기’식 다툼에서 벗어나 ‘신뢰’를 기반으로 전열을 가다듬을 때다

[기자수첩]흔들기식 美 통상공세, 신뢰가 필요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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