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들의 악습인 태움('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의미의 집단 괴롭힘)이 없어지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연세의료원 노동조합에서 제작한 '태움 배지' / 사진제공=연세의료원 노동조합
문씨는 암에 걸린 할머니를 보살피며 간호사를 꿈꿨지만 그 꿈을 이어갈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틈날 때마다 공무원 등 다른 길도 알아보고 있다. 만약 간호사를 한다고 해도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하고 싶다는 생각이다.
19일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인구 1000명당 활동 간호사 수(2016년 기준)는 한국이 3.5명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인 9명의 38%에 그친다. 2030년에는 전체 필요 간호사 인력의 44.5%에 달하는 15만8554명이 부족할 것이란 예상이다.
당장 간호사가 되자마자 이직하는 비율이 높다. 어렵게 대학을 마치고 자격증을 땄지만 생각과 다른 현실에 좌절한다. 병원간호사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신규 간호사(경력 1년 미만)의 이직률은 38.1%(6437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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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이 바뀌지 않으면서 전문 자격증을 활용조차 못하는 '장롱 간호사'가 숱하다. 2016년 기준 간호사 면허소지자 35만5772명 중 보건의료기관에서 활동하는 간호사는 17만9989명(50.6%)에 그친다. 면허소지자 절반이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서 일하거나 집에서 쉰다는 뜻이다.
간호사로 3년간 일하다 제약회사로 이직한 이모씨(30)는 "결혼하고 아이를 가졌을 때를 생각하니 3교대 근무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러니 간호사 처우 개선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쏟아진다. 열악한 근무 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 인력 증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지적이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학과 교수는 "새로운 인력을 늘리는 일보다 간호사가 병원을 떠나지 않도록 임금 인상, 근무 환경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며 "의료기관이 지켜야 할 간호사 인력 기준을 세부적으로 마련하고 보건복지부가 이를 철저히 관리·감독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전체 간호사 수가 증가해도 근무환경을 개선하지 않는 병원들은 인력난을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며 "처우 개선, 다양한 탄력근무제 도입 등 유휴간호사를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관계자는 "간호인력 문제는 환자 안전, 생명 보호 문제와도 직결된다"며 "충분한 인력을 확충해야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국민의 건강권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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