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부족한 사외이사, 공급 확대 어려우면 수요 축소해야

머니투데이 이학렬 기자 2018.03.19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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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외이사, 그들만의 세상-9]'쓸모'와 규제로 많아졌지만 인재풀 적어..불필요한 사외이사는 축소해야

편집자주 본격적인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맞아 기업마다 사외이사 물갈이가 한창이다. 자리를 차지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사이에 암투가 벌어지는가 하면 노골적인 청탁이 오고 가기도 한다. 기업 경영의 한 축이라는 본연의 기능보다는 은퇴한 유력인사들의 '인생3모작', 혹은 현직들의 '꿀 부업'이라는 매력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때론 권력에 대한 방패막이, 혹은 기업 장악을 위한 수단으로도 활용되기도 한다. 사외이사 세계의 현실과, 개선 가능성을 짚어본다.

[MT리포트]부족한 사외이사, 공급 확대 어려우면 수요 축소해야


금융회사를 비롯한 기업들이 많은 사외이사를 두고 있다. 법을 지키기 위해서, 필요에 의해 사외이사수가 늘어났다. 반면 사외이사를 할 사람은 부족하다. 사외이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늘릴 수 없다면 사외이사가 필요한 곳을 줄여야 사외이사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신한금융지주 이사회는 12명 중 10명이 사외이사로 구성돼 있다. 사외이사 비율은 83%다. KB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는 각각 9명 중 7명, 10명 중 7명이 사외이사다. 특히 하나금융은 오는 23일 주주총회 이후 김병호 부회장과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이 이사회에서 빠지면 사내이사 1명, 사외이사 8명으로 사외이사 비중이 88.9%로 높아진다.



금융회사를 비롯한 기업들이 많은 사외이사를 두는 건 여러모로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다수의 사외이사는 경영진에 대한 견제기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전문성과 배경을 갖춘 사외이사가 이사회에 참여함으로써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경영진이 나서기 어려울 때 사외이사가 든든한 힘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법 등 규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많이 둘 수 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상법과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금융회사 지배구조법)에 따르면 금융회사와 자산 2조원이 넘는 상장회사는 이사회에 사외이사 3명 이상을 둬야 하고 사외이사의 수는 이사 총수의 과반수가 돼야 한다. 이에 삼성전자 등 대부분 대기업들이 3명 이상의 사외이사를 두고 있다.



또 금융회사는 임원후보추천위원회, 감사위원회, 위험관리위원회, 보수위원회를 의무적으로 둬야 하는데 사외이사가 많지 않으면 소위원회를 구성할 수 없다. 특히 감사위원회는 사외이사가 감사위원의 3분의 2 이상이어야 한다. 감사위원회에 2명의 사내이사를 두고 싶다면 사외이사를 4명 둬야 하는 셈이다.

정부는 기업이 사외이사를 더 늘릴 수밖에 없는 제도 개선을 추진중이다. 금융위원회는 감사위원회 위원의 보수위원회를 제외한 이사회내 다른 위원회 겸직을 제한하고 임추위의 3분의2 이상을 사외이사로 구성하도록 의무화하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을 추진한다.

이사회의 권한이 사실상 없는 곳에도 이사회를 구성하다보니 사외이사가 늘어났다. 모회사가 100% 지분을 가지고 있는 완전자회사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은 금융지주회사의 완전자회사에 대해 경영 투명성 등이 확보되면 사외이사를 두지 않거나 이사회내 소위원회를 설치하지 않아도 되는 특례규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특례를 적용해 사외이사나 소위원회를 두지 않는 완전 자회사는 거의 없다. 실제로 △신한은행 6명 △KEB하나은행 5명 △KB국민은행 4명 등 주요 은행들은 금융지주회사의 100% 자회사지만 많은 사외이사를 두고 있다.

기업이 사외이사를 많이 필요로 하지만 사외이사를 할 사람은 많지 않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한 명의 사외이사가 여러 기업에서 사외이사를 하거나 여러 기업을 돌아가면서 사외이사를 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

사외이사를 할 수 있는 능력있는 전문가를 양성하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사외이사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사외이사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없기 때문에 수요를 줄이는 방법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다만 사외이사를 없앴을 때 부작용을 대비한 보완책이 필요하다. 예컨대 주주가 모회사밖에 없는 자회사 소속 이사들의 잘못을 추궁하기 위해 모회사의 주주가 이들을 상대로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이중대표소송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대법원 판례로 이중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없도록 돼 있다.

김우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중대표소송 등 100% 자회사의 임원들의 잘못을 추궁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된다면 100% 완전자회사에서 경영진을 견제할 사외이사는 사실상 필요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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