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서 사회적 약자로"…SNS 폭로 나선 대학생들

머니투데이 김영상 기자, 방윤영 기자 2018.03.04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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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연고대 등 10개 대학서 '약자 혐오' 고발 SNS 페이지 생겨…"더이상 못 참아"

/삽화=임종철 기자/삽화=임종철 기자


"A여대 학생들은 전통적으로 B대 남학우들의 X집(여성 비하 비속어) 아니었나", "여고생은 2차 성징이 끝났기 때문에 여고생을 만나는 것은 소아성애가 아니라 정상적인 사랑"

연세대, 고려대 등 소위 유명대학의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에 버젓이 올라와 있는 말들이다. 일부 몰지각한 대학생들이 여성과 장애인 등 소수자를 향해 온라인 공간에서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3월 개강을 맞아 이 같은 저속하고 비상식적인 행태를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약자에 대한 성폭력을 폭로하는 미투(me too·'나도 당했다'는 뜻) 운동이 거세게 몰아치면서 새 학기 대학가에서도 다양한 비판의 '장'(場)이 열리는 모양새다.

무대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다. 주요 대학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성폭력 발언 등 각종 혐오 발언을 모아 게시하는 페이스북 페이지가 최근 등장해 주목받고 있다. 여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적극 고발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는 목적이다.



대학 커뮤니티에서 익명성과 폐쇄성에 숨어 폭력적 글을 올리는 문제는 고질적이었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장애인을 비하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여자들은 집에서 애만 키우도록 하는 게 남자한테 이득이다", "한국식 페미니즘은 여성을 장애인 취급해달라는 것" 등 황당한 주장도 끊이지 않는다.

그동안 애써 무시하거나 모른 체했던 대학생들이 SNS 폭로에 나섰다. 학내 커뮤니티 혐오 발언을 고발하는 '연세대 남자들의 사상과 가치관' 페이스북 페이지의 경우 지난달 24일 개설됐는데 일주일 만에 팔로워가 1900명을 돌파했다. 이 페이지에는 연세대 커뮤니티에 올라온 혐오 발언이 게시된다.

서울대와 고려대, 한양대 등 10여 개 대학에서도 각자 학내 혐오 발언을 고발하는 페이지가 잇따라 만들어졌다.


이 페이지에서 혐오 발언을 접한 대학생들은 충격적이라는 반응이다. 서강대 재학생인 김모씨(24)는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볼 때마다 저런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것이 한탄스럽다"며 "이 페이지가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세대 남자들의 사상과 가치관' 페이지를 만든 연세대 재학생 A씨(22)는 "대학 커뮤니티에서 성폭력 피해자 신상털이, 장애학생 혐오, 여대 조롱 등 익명성과 폐쇄성에 기댄 글이 많은 공감을 받는 것을 보고 스트레스가 심했다"며 "쌀벌레를 잡으려면 쌀을 볕에 널어야 한다는 말에 영감을 받아 이 페이지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글을 쓰는 학생이 어쩌면 나의 동기, 동아리 선후배일 수도 있다는 점이 불안을 키우고 있다"며 "개강을 맞아 학생들이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학내 문제를 스스로 드러내고 비판하는 대학가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장미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관심을 일으키고 분노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사람들이 의견을 공유하는 공간이 생겼고 그 공간에서 (잘못된 문제에 대한) 의견을 표출할 수 있다는 것은 한발 더 나아갔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황소연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활동가는 "그동안 (여성·소수자 비하 발언) 문제를 지적했을 때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기 일쑤였는데 이제는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행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이런 의식 변화를 바탕으로 여성·소수자 혐오를 없애기 위해 사회구조나 제도를 바꾸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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