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섬세·집념 등 한국인의 최적 요소 모은 '컬링'…"이제 시작"

머니투데이 이영민 기자 2018.02.22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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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선 1위로 4강 진출한 여자 컬링팀…한국 컬링 역사 새로 쓴다

여자 컬링 대표팀 김경애, 김선영, 김은정, 김초희가 21일 오후 강원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예선 9차전 덴마크와 경기에서 승리한 뒤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여자 컬링 대표팀 김경애, 김선영, 김은정, 김초희가 21일 오후 강원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예선 9차전 덴마크와 경기에서 승리한 뒤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경상북도 의성에서 온 소녀들이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컬링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한국 여자 컬링 대표팀은 예선 성적 1위(8승1패)로 준결승에 올랐다. 한국 컬링 사상 첫 올림픽 4강 진출이다.

한국 여자 컬링팀의 활약은 눈부시다. 세계 랭킹 8위인 한국은 예선 첫 경기에서 세계 최강 캐나다(1위)를 꺾으며 파란을 예고했다. 라이벌 일본(6위)에 아쉽게 패했지만 이어진 스위스(2위)·영국(4위)·스웨덴(5위)·미국(7위) 등 강호를 모두 제압하며 연승을 질주했다.



한국 컬링은 2014 소치 대회에서 처음 올림픽 무대에 섰다. 당시 국가대표였던 경기도청 여자컬링팀은 10개 출전팀 중 세계랭킹이 가장 낮았지만 8위(3승6패)를 거두며 선전했다. 경북체육회 소속인 평창올림픽 대표팀은 소치 대회 국가대표 선발전 결승에서 경기도청에 패해 올림픽 출전이 좌절되는 쓴맛을 봤다.

김민정 감독이 이끄는 여자 대표팀은 스킵(주장) 김은정(28)을 비롯해 바이스 스킵 김경애(24), 김선영(24), 김영미(26), 김초희(22)로 구성됐다. 김은정과 김영미, 김경애와 김선영은 경북 의성여고 동기 동창이다. 김영미와 김경애는 친자매다. 막내 김초희만 의정부 출신이다.



낯선 스포츠 컬링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자 컬링팀의 실력은 10년 넘게 손발을 맞춘 결과다. 2006년 '의성 컬링센터'가 생기면서 의성여고에 다니던 김은정, 김영미가 방과 후 활동으로 컬링을 시작했다. 6개월 뒤 '영미 동생' 김경애가 언니를 보러 갔다가 얼떨결에 합류했고, '영미 동생 친구' 김선영이 친구 따라 컬링을 시작했다.

한국 컬링팀의 올림픽 준비 과정은 험난했다. 지난해 여름 대한컬링경기연맹이 관리단체로 지정되면서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했다. 자체 비용을 들여 해외 전지훈련을 가거나 컬링 강국 지도자를 초청해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대표팀은 위기를 함께 이겨내며 더욱 똘똘 뭉쳤다.

이들이 함께한 시간은 협동이 중요한 컬링에서 빛을 발했다. 컬링 용어 대신 김영미의 이름만으로 소통하는 것도 끈끈한 단결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팀은 스윕(빗자루로 빙판을 닦아라)·헐(더 빨리 스윕해라)·업(스윕을 멈춰라) 등 컬링 용어를 '영미'라는 구호 하나로 대신한다. 국내 팬 사이에는 외치는 톤에 따라 달리 해석되는 한국팀만의 구호를 소개하는 '영미 사용 설명서'까지 등장했다.


2~3시간 동안 이어지는 컬링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실수를 다스리는 강한 정신력도 필요하다. 한국팀은 실수가 나오더라도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주장 김은정은 '빙판의 돌부처'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표정 변화가 없다. 한국팀은 함께 미술 심리 치료를 받으며 평정심을 유지하는 훈련과 더불어 팀워크도 더욱 단단히 다졌다.

'빙판 위의 바둑'이라 불리는 컬링은 두뇌 싸움이 성패를 가른다. 아직 컬링이 생활스포츠인 북유럽 국가가 강세지만, 바둑·장기 등 두뇌 게임에 익숙한 아시아 국가에 유리한 종목일 수밖에 없다. 더불어 한국 특유의 섬세함도 컬링에서 꼭 필요한 요소다. 두뇌 싸움·고도의 장기 집중력·섬세함·선수들의 집념까지, 알고 보면 한국이 잘할 수 있는 요소를 모아놓은 스포츠가 바로 컬링이다.

평창올림픽 컬링대표팀의 활약으로 컬링이 국내 인지도 상승을 뛰어넘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외국에서는 이미 가족 스포츠로 통하는 컬링이 한국에서도 가족 스포츠로 번져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컬링을 많이 알려야 하는 사명감이 있다"는 김민정 감독과 선수들의 바람은 이미 이뤄진 듯하다.

한국의 준결승 상대는 일본이다. 한국은 오는 23일 오후 8시 5분 예선에서 팀에 유일한 패배를 안긴 일본을 상대로 설욕전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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