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진정한 라이벌

머니투데이 김익태 사회부장 2018.02.21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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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은 숙명이다.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하늘이 내린다고 했다. “하늘은 이미 주유를 내시고 어찌 또 공명을 냈단 말인가!” 삼국지에서 오(吳)의 맹장 주유는 임종 직전 촉(蜀)의 제갈공명과 같은 시대를 살게 한 하늘을 원망했다. 동시대에 발을 딛고 경쟁을 한다는 것 자체는 천운이다.

금지약물 복용으로 빛이 바랬지만, 랜스 암스트롱은 ‘투르 드 프랑(Tour de France)의 사나이’였다. 암을 이겨내고 세계 최대 사이클 경기 대회에서 7연패를 달성했다. 그에겐 숙명의 라이벌 얀 울리히가 있었다. 같은 기간 준우승만 3차례 차지했다. ‘만년 2 인자’였다.



2003년 대회였다. 암스트롱이 또 선두를 달렸고, 울리히가 그 뒤를 바짝 쫓았다. 결승점 9.5km를 남기고 암스트롱이 관람객의 가방끈에 걸려 넘어졌다. 울리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달리지 않았다. 속도를 늦춰 암스트롱이 자세를 추스르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레이스를 다시 시작했다. 결과는 패배였다. 암스트롱이 승리했지만, 사람들은 울리히를 ‘투르 드 프랑스의 진정한 영웅’으로 불렀다.

이처럼 라이벌은 공존할 때 빛을 발한다. 선의의 대결을 통해 서로를 인정하고 발전한다. 진정한 라이벌은 꼼수를 쓰지 않는다. 정정당당하게 경쟁한다. 반면 적개심으로 가득 찬 경쟁은 오히려 독이 된다. 라이벌이 아니라 불구대천에 가까운 적이 된다. 상대의 존재를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트 스케이팅 500m에서 경쟁한 이상화와 고다이라 나오 역시 라이벌의 진면목을 보여 줬다. 올림픽 3연패에 도전한 이상화는 경기 전 인터뷰에서 “(고다이라와) 비교하지 말아달라”고 정중히 부탁했다. 라이벌은 자신을 비춰보는 거울이다. 이상화에게 라이벌은 바로 '자신’이었다. 지지 않으려 시작한 싸움은 어느새 자신과의 싸움이 된다. 그러다 보면 1대 1의 경쟁이 1+1로 확장된다. 진정한 라이벌은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발전시킨다.

레이스를 마친 고다이라는 환호하는 관중들을 향해 ‘쉿’ 동작을 취했다. 다음 주자의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배려한 행동이었다. 다음 주자는 이상화였다. 금메달을 따고 일장기를 두른 채 트랙을 돌던 고다이라는 갑자기 멈춰서 이상화를 기다렸다. 복잡한 감정에 눈물을 쏟은 이상화를 포옹하며 한국말로 “잘했어”라고 말했다. 영어로 “I still respect you(나는 널 여전히 존경해)”라고 속삭이기도 했다. 라이벌이자 우상에 대한 찬사였다. 이상화는 “(나도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고 화답했다.

상업적으로 변질 되고 있지만, 그래도 올림픽은 올림픽이다. 국경과 나이를 초월한 두 선수의 ‘워맨스’(Womance)는 올림픽 정신의 정수를 보여줬다. 이들에게 메달 색깔은 중요하지 않았다. ‘세상은 2등을 기억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이상화는 진정한 라이벌에 깨끗하게 승복할 줄 아는 위대한 패자였다. 고다이라 역시 패자를 위로하고 보듬은 아름다운 승자였다.


우리 사회는 어떤가. 라이벌만 있다. 선의의 경쟁과 인정은 실종됐고, 적대감만 남았다. 라이벌을 ‘동반자’가 아닌 ‘타도의 대상’으로만 여긴다. 페어플레이와 스포츠맨십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정치권은 국민보다 정파를 우선한다. 민생과 아무 상관 없는 일로 정쟁을 벌이며 파행을 일삼는다. 승복할 줄도 모른다.

스포츠 세계는 관중이 없으면 성장할 수 없다. 라이벌 관계가 필수적이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진정한 라이벌이어야 한다. 사회 곳곳에서 이들의 활약을 목도할 수 있는 한해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광화문]진정한 라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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