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경기’ VS ‘안하무인 태도’…지금 평창은 ‘갑질’ 논쟁 중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강주헌 기자 2018.02.18 15:13
글자크기

‘평등’ 올림픽정신 훼손하는 갑질 사례 잇따라…국가부터 조직위원회 간부까지 막말·차별·푸대접

15일 평창올림픽 자원봉사자에게 막말을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갑질 논란에 휩싸인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사진=뉴스115일 평창올림픽 자원봉사자에게 막말을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갑질 논란에 휩싸인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사진=뉴스1


한국 사회의 뜨거운 화두인 ‘갑질 논쟁’이 평등을 주요 가치로 삼는 올림픽에까지 번졌다.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서로 화합하는 올림픽 정신이 ‘경기 밖’에서 훼손되고 있는 셈이다.

메달을 놓고 벌이는 선수들의 감동적 경기 뒤엔 관습처럼 이어진 특권층의 안하무인 적 태도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푸대접이 연일 도마에 오르고 있다.



지난 15일 한 자원봉사자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린 글은 ‘갑질’의 단면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일행이 자원봉사자들에게 던진 막말이 화근이었다.

이날 크로스컨트리 경기장을 방문한 이 회장 일행은 IOC 관계자가 미리 예약한 자리에 무단으로 앉았다. 해당 좌석을 관리하던 자원봉사자들은 자리를 옮겨달라고 요구했다.



해당 자원봉사자는 “IOC 측 인사와 함께 (대한체육회 회장을) 앉지 못하도록 제지했지만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오면 일어나겠다’며 팔짱을 끼고 움직이지 않았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대한체육회 고위 관계자가 자원봉사자에게 “야!”라고 고함치며 “머리를 좀 써라. 이 분이 누군지 아느냐”, “IOC는 별것 아니다. 우리가 개최국이다”라고 말하는 추태를 부린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체육회는 “이기흥 회장이 ‘개최국 위원장인데 우리도 앉을 수 있다’고 말한 것이 확대 해석됐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자원봉사자는 “이기흥 일행의 표정과 말투에서 자원봉사자들을 ‘호구’로 보고 무시했다”며 “갑질을 반성하기보단 스스로 합리화해 책임을 회피하려는 행태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고 말했다.

한국 보안요원에게 폭언과 폭행을 한 영국 IOC 선수위원 애덤 팽길리. /사진=IOC 홈페이지한국 보안요원에게 폭언과 폭행을 한 영국 IOC 선수위원 애덤 팽길리. /사진=IOC 홈페이지
앞서 이날 오전엔 영국 IOC 선수위원이 한국 보안 요원을 폭언하고 폭행한 사건도 있었다. 강원도 평창 메인프레스센터 앞 주차장에서 영국 IOC 선수위원 애덜 팽길리(41)는 현장을 안내하던 보안요원과 승강이를 벌이다가 폭언하며 넘어뜨리는 폭행을 했다.

보안요원 김모씨는 “(가해자가) 내 말에 불응하고 'XX코리아'라고 말하면서 밀치고 30여m를 끌고 가 넘어뜨렸다"고 주장했다.

보안요원이 보행자 길이 아닌 버스 통행로로 들어오는 IOC 위원을 안전을 위해 제지하던 상황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팽길리는 당시 보안요원에게 "상부에 말하면 한국에서 일할 수 없게 만들겠다"고 협박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특혜 응원’ 논란도 '갑질'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박 의원은 지난 16일 스켈레톤 국가대표 윤성빈 선수가 금메달을 확정한 순간 관중석이 아닌 경기장 피니시 라인 안에 들어와 있어 특혜 논란에 휩싸였다.

서울시장 출마 의사를 밝힌 박 의원이 금메달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얼굴을 비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박 의원은 “올림픽 관계자들의 안내를 받아 경기장에 들어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윤성빈 어머니와 여동생도 경기장 밖에서 경기를 봤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특혜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올림픽 개막 전부터 부실급식, 방한대책 미숙 등 홀대 논란의 중심에 있던 자원봉사자들. /평창=김창현 기자올림픽 개막 전부터 부실급식, 방한대책 미숙 등 홀대 논란의 중심에 있던 자원봉사자들. /평창=김창현 기자
평창올림픽의 ‘갑질 논쟁’은 개막 전부터 달아올랐다. 지난 1월 말 자원봉사자들을 향한 국가 차원의 ‘푸대접’이 그것이다. 국가가 올림픽 성공을 위해 평창을 찾은 자원봉사자들에게 부실 급식을 제공한 것이 알려지면서 논란은 확산했다. 또 영하 20도의 날씨에 온수를 사용하지 못해 찬물로 씻어야 하는 문제도 거론됐다.

평창 동계올림픽 자원봉사자들의 '홀대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올림픽 개막식을 앞두고 자원봉사자 약 2000명이 활동을 포기하기도 했다.

문제는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러도 올림픽 조직위원회의 태도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조직위는 “대체 인력은 충분하다”며 여전히 ‘갑’의 태도를 견지했고, 이에 따른 비난 여론은 갈수록 거세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급기야 17일 평창올림픽 자원봉사자들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 때는 식사가 부실하다고 해서 대통령으로 가슴이 아팠다”며 “내가 평창올림픽의 현장감독이고 오늘 여러분들의 경험이 살아가면서 두고 두고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 자원봉사자는 “국가가 정성스럽게 지원해주는 요소들이 적지 않지만, 근본적으로 ‘높은 사람들’의 특권의식과 태도가 축제 분위기를 망치는 것 같다”며 “남은 기간만이라도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