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국민청원방에 올라온 게시물. /사진=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 캡처
◇익명성 장점, '여론 조작' 독으로= 지난 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20만 쉽게 넘어 정부 답변 얻는 법'이란 내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애플리케이션(앱) 설정에 들어가 인터넷 앱의 캐시나 데이터를 삭제하는 법, 1인 4계정(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텔레그램)법, 트위터를 이용한 무한계정법 등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청원자는 "트위터 가입을 무한히 하면 청원 동의도 무한히 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 국민청원 참여 과정에서 카카오톡을 통한 '중복투표'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초·중·고 학교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란 제목의 청원 마감일인 지난 5일을 앞두고 막판에 10만명 넘는 인원이 몰려 중복 투표 의혹이 불거진 것. 이에 청와대는 카카오톡을 통한 청원서비스를 잠정 중단했다.
이 같은 문제의 원인으로 게시판 운영 시스템이 지적된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은 누구나 익명으로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가능하다. 그러나 익명성의 장점이 오히려 단점으로 바뀌고 있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 캡처
◇청와대 청원게시판 vs 청와대 커뮤니티 판=일각에선 국민청원 게시판이 현안과 관계없는 장난스러운 글이나 지극히 개인적인 청원으로 '포털 커뮤니티화(化)' 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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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 캡처
단순 민원성 청원이나 감정 과잉의 청원 글도 문제로 지적된다. 청원 게시판엔 사회 현안에 대한 논리적 이유보다 별 다른 이유 없이 화가 난다거나 거친 표현으로 작성된 청원 글도 다수 볼 수 있다. 대학생 원모씨(27)는 "청원 게시판에 들어갔다가 이곳이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여론을 확인하는 인터넷 민주주의 광장인지 포털 뉴스 댓글창인지 헷갈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보완하면 더 나은 소통창구 가능=전문가들은 이러한 문제점 개선이 이뤄지면 더 나은 국민 소통 창구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문제는 분명히 보이지만 그렇다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자체의 순기능을 무시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고강섭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정치권과 언론도 국민청원게시판의 목소리에 주목하고 있고, 20만 동의가 넘은 청원은 법적 실효성은 없어도 대통령이 귀 기울인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정치적 효능감'이 커지고 있다"며 "청원 게시판 자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청원대로 해결되진 않아도 정부가 직접 하는 답변을 받으며 국민들이 정부 정책 방향에 대한 '알권리'를 충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어 고 교수는 "그러나 청원게시판의 순수성과 순기능이 변질되지 않게 중복투표 기능을 없애고 자주 올라오는 청원을 카테고리화해 비슷한 안건을 합칠 필요는 분명하다"며 "이 과정에서 국민들도 스스로 책임감을 가지고 더 나은 인터넷 광장을 만들기 위한 자정 작용을 해야 할 필요도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