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IB 제도가 용두사미에 그치고 있는 원인은 증권사 부실이 우려된다거나 건전성 규제 장치가 허술하다는 은행권의 거센 반대 탓도 있지만 사업 승인권을 쥔 금융당국의 불투명한 인가 절차 때문이기도 하다. 명확한 기준을 밝히지 않아 불확실성을 키운 탓에 소모적인 논쟁을 야기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 나홀로 발행어음 인가를 받은 한국투자증권은 경쟁사를 따돌린 선점 효과를 즐기기는커녕 홀로 뛰는데 따른 역부족을 호소할 정도다.
발행어음은 증권사가 자기신용을 토대로 발행한 1년 미만 단기 금융상품이다. 자기자본 4조원 이상인 대형 증권사는 초대형IB로 지정되면 발행어음 신규 업무 인가를 신청할 수 있다. 발행어음을 투자자에게 판매해 조달한 자금을 기업금융이나 부동산금융에 활용할 수 있어 증권사의 자금 조달 능력과 투자 여력이 크게 강화된다.
초대형IB로 지정된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한국투자증권(자기자본 규모 순)등 5개사 중 한국투자증권만 유일하게 발행어음 인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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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어음은 자기자본의 최대 2배까지 가능하며 이를 통해 조달한 자금의 50% 이상을 기업금융(대출, 회사채 인수 등)에 써야 한다. 이론적으로 한국투자증권(지난해 9월 말 기준 자기자본 4조1908억원)은 최대 8조원 가량의 발행어음을 투자자에게 팔아 자금을 조달한 뒤 4조원 이상을 기업금융에 공급할 수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초기 시장인데다 위험 관리를 위해 올해 발행어음 목표를 4조원으로 잡았다. 결국 올해 기업금융에 투입될 자금은 2조원 수준에 그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내 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이 781조4000억원에 달하는 걸 감안하면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초대형IB를 통한 모험자본을 공급한다는 취지가 무색해질 정도다.
증권업계는 건전성 잣대인 NCR(평균 순자본비율)규제를 적용하는 등 충분한 위험관리를 실시하고 있음에도 초대형IB의 발행어음 업무에 대한 금융당국과 타 금융권의 우려가 지나치다는 불만이 크다.
안동현 자본시장연구원장은 "만약 증권업계 빅3인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이 동시에 망하더라도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이 무너지는 일은 없다"며 "그 정도의 크기가 안 돼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