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치명타", 일부 '영란법 선물' 10만원 올려도…

머니투데이 최동수 기자, 이영민 기자 2018.01.24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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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금지법 개정? 현장에선]①화훼·축산·농수산시장 "기대 안해" 싸늘한 분위기

서울 서초구 양재동꽃시장 내 가게들의 한산한 모습 /사진=이영민 기자서울 서초구 양재동꽃시장 내 가게들의 한산한 모습 /사진=이영민 기자


"이미 매출이 반 토막 났다. 선물 상한액을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올려도 별 기대 안 한다." 설 연휴를 앞두고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법'(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상 일부 선물 상한액이 올랐지만 상인들의 반응은 여전히 냉랭했다.

정부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시행령 개정안 적용을 맞아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유통현장에 긍정적 반응이 일고 있다"며 "당장 올해 설 대목부터 국산 농산물 소비가 대폭 늘어나 농가소득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정부는 이달 17일부터 청탁금지법 선물 가액 상한선(5만원)을 농·축·수산물에 한해 10만원으로 올리는 개정안을 시행했다.



그러나 판매 현장의 분위기는 그렇지 못했다. 최근 찾아간 서울 시내 주요 화훼·축산·농수산시장 상인들은 설 연휴 매출을 걱정했다. 이미 청탁금지법으로 생계에 치명타를 맞은 상황이라 기대할 게 별로 없다는 분위기다.

22일 방문한 서울 성동구 마장동 축산시장의 상인들은 선물값 인상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시장에서 25년째 축산 도매업을 하는 S축산 대표 김영신씨(56)는 " 5만~10만원짜리 한우 세트를 그럴듯한 선물용으로 꾸미기란 현실적으로 힘들다"며 "어떻게든 구색을 갖춰도 포장비용까지 생각하면 안 파는 게 더 낫다"고 했다.



청탁금지법의 직격탄을 맞은 화훼시장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경조사비를 10만원에서 5만원으로 낮추는 대신 화환만 했을 때 10만원까지 가능하도록 했지만 상인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같은 날 국내 최대 화훼시장인 서울 서초구 양재동꽃시장은 주요 공공기관과 기업들의 인사시즌임에도 한산했다. 주문이 끊긴 탓에 문을 닫거나 주인이 자리를 비운 상점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양재동꽃시장에서 20년 넘게 화훼업을 해왔다는 유회은씨(59)는 "개정안으로 매출에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는 전혀 없다"며 "볼품없는 5만~10만원 짜리 화환을 보내느니 조의금만 보낸다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5만원짜리는 유통비 생각하면 차라리 안 파는 게 남는다"고 말했다. 조의금을 5만원 할 경우 화환은 5만원까지 가능하다.


난을 판매하는 최운학씨(62)는 "상한액이 오른 것은 다행이지만 이미 고정된 인식을 바꾸는 게 더 큰 문제"라며 "선물용 난을 뇌물로 여기는 분위기가 형성돼 되돌려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져 물류비용만 이중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22일 오전 11시 서울 동작구 노량진 수산시장 전경 /사진=최동수 기자22일 오전 11시 서울 동작구 노량진 수산시장 전경 /사진=최동수 기자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 분위기도 가라앉아 있었다. 특히 전복이나 굴비 판매점 등이 울상이다. 노량진수산시장에서 40년째 건어물을 판 김규천씨(80)는 "청탁금지법 탓에 굴비 판매가 50% 줄었다"며 "40만~50만원하는 최고급 굴비 세트는 찾는 사람이 없어 아예 들여다 놓지도 않았다"고 했다.

전복을 파는 이옥자씨(60)는 "청탁금지법 때문에 10년 동안 단체주문을 해왔던 회사와 거래가 끊겼다"며 "전복은 15만원 이상 돼야 선물 구색을 갖출 수 있는데 10만원이면 전복 개수도 부족해 선물용으로 볼품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농산물 시장에서는 그나마 희비가 엇갈린다. 청과물 시장 상인들은 상한액 조정으로 매출 상승을 기대하고 있지만 인삼·홍삼 판매상들은 여전히 냉소적이다.

서울 영등포 청과시장에서 15년 동안 영업을 한 김나영씨(67)는 "과일은 웬만하면 10만원을 안 넘어서 상대적으로 쉽게 선물할 수 있다"며 "매출이 훌쩍 뛰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지난해 추석 때 보다는 나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경북 영주시 풍기인삼시장에서 인삼을 판매하는 김선철씨(70)는 "청탁금지법으로 매출이 이미 크게 떨어졌다"며 "10만원으로 올린다고 해도 소비심리가 살아날지는 잘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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