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가들에 대한 고문이 자행된 옛 남영동 대공분실. 2005년부터는 경찰청 인권센터로 사용되고 있다. /사진=뉴스1
고 박종철 열사 31주기를 나흘 앞둔 지난 10일 오후. 지하철 1호선 남영역에서 내려 조금 걷자 육중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검은 벽돌 건물은 주변을 둘러 싼 고층빌딩 사이에서도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군부독재 시절 민주화 운동가에 대한 탄압이 이뤄진 옛 남영동 대공분실이다.
1976년 당대 최고의 건축가 김수근에 의해 건축된 남영동 대공분실은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가에 대한 고문이 자행된 곳으로 악명 높다. 'OO해양연구소'라는 위장 명칭을 사용했던 남영동 대공분실은 1987년 1월14일 물고문 끝에 박종철 열사를 숨지게 한 사건으로 세간에 존재가 드러났다. 이후 경찰청 산하 보안분실로 사용되다가 2005년부터 경찰청 인권센터로 운영되고 있다.
영화 '1987'을 온 가족이 함께 관람한 뒤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직접 보기 위해 서울로 온 김태완씨와 오의선씨 가족이 교육관을 둘러 보고 있다. /사진=남궁민 기자
건물 1층에는 역사관과 홍보관, 4층에는 인권교육관과 박종철기념전시실이 마련돼있다. 박종철기념전시실에서 만난 중년의 남성은 고문치사 사건을 전하는 당시의 신문을 읽고, 부모 손을 잡고 온 아이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박종철 열사의 유품을 보고 있었다.
피조사자들을 조사실로 들여보내던 후문. 나선형 계단과 연결돼있다.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다. /사진=남궁민 기자
1층에서 곧바로 5층까지 연결된 나선형 계단. 이곳을 통해 조사실로 도착한 피조사자가 자신이 몇층에 있는지도 알수없어 공포를 느끼도록 설계됐다. /사진=남궁민 기자
고 박종철 열사가 물고문 끝에 숨진 509호 조사실 /사진=남궁민 기자
옛 남영동 대공분실 조사실의 가구들은 피조사자의 자해를 막기 위해 모두 바닥에 고정됐다. /사진=남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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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9호를 돌아 본 전대봉씨(68)는 "한창 일하느라 바빴던 때라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어렴풋이 전해 듣기만 했다"며 "이 방마다 고문이 이뤄졌을 거라 생각하니 끔찍하다"고 말했다. 전 씨는 박종철 열사의 영정을 가리키며 "저런 학생이 드물지 않냐, 역사는 이런 사람들이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관·교육관 관리 아쉬워…"시민의 품으로 돌려달라" 청원 추진
옛 남영동 대공분실 건물은 현재 경찰청 인권센터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눈에 띄는 안내문이나 관리자가 없어 정보를 얻기 힘들었다. /사진=남궁민 기자
이런 이유로 경찰이 관리하고 있는 옛 남영동 대공분실을 시민들에게 돌려주자는 국민청원 운동도 힘을 받고 있다.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는 지난 2일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에 옛 남영동 대공분실 내의 민주화 전시시설을 확장하고 고문치유센터를 설치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청원을 올렸다. 해당 청원은 14일 자정 기준 7183명의 시민으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이 같은 목소리에 대해 박종철 열사 31주기를 하루 앞 둔 13일 경찰청 인권센터를 방문해 조문한 이철성 경찰청장은 "(건물 운영과 관련해) 실정법이 허용하는 법에서 시민단체들과 협의 하면서 그분들의 뜻에 부합하고 공간이 유익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머리 맞대고 노력할 것"이라며 "내일 추도식 행사가 끝나면 유족, 시민단체와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