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삼성전자 64K D램 개발생산 성공 기념식/사진=삼성전자<br>
인수 이후 삼성은 반도체 사업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지만 창업주 이병철 선대회장은 1983년 2.8 도쿄구상을 거쳐 그 해 3월15일 '왜 우리는 반도체 사업을 해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반도체 산업 진출 선언문을 발표하고 기흥 공장을 짓는 등 사업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이 선대회장이 30여 년을 내다본 혜안으로 반도체 사업의 포문을 열었다면 중요한 고비 때마다 성장의 길을 연 것은 이건희 회장으로 평가된다.
대표적 예가 2001년 '자쿠로 회동'이다. 이 회장은 일본 도쿄 오쿠라 호텔 인근의 타쿠로 음식점에서 당시 윤종용 부회장, 이윤우 반도체총괄사장, 황창규 메모리사업부장 등이 모인 자리에서 일본 도시바로부터 낸드플래시 합작 개발을 제의받은 것에 대해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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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본은 낸드플래시를 처음 개발한 회사로서 해당 분야에서 상당한 기술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삼성전자 고위 임원진은 자력으로 추진해 나갈 것을 제안, 이 회장도 이에 동의해 도시바 제의를 정중히 거절하고 독자 사업을 추진했다.
적절한 때 투자도 놓치지 않았다. 이 선대회장은 작고 직전까지도 기흥 공장 1~3라인 공사를 재촉했고 1987년 신임 회장에 오른 이 회장은 적자로 인해 공사 중단을 건의하는 임원진에 오히려 화를 내며 '제2 창업'을 공언했다.
그 결과 삼성전자는 1992년에 D램 1위, 1993년에 메모리반도체(D램과 낸드플래시) 1위에 오른 이후 단 한 번도 자리를 뺏기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역대 최대 이익을 거둔 지난해, 총 투자 규모가 30조원에 달할 것이라 밝힌 평택공장 가동에 들어갔다.
◇"자원없는 우리나라에서 우수한 인재로 할 수 있는 건 첨단산업"…사람에 공들인 삼성=이 선대회장은 반도체 산업진출 선언문을 통해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우수한 인재로 할 수 있는 산업이 첨단산업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 중 반도체산업은 성장성이 크고 다른 산업으로의 파급효과도 지대하며 기술 및 두뇌 집약적인 고부가 산업이기 때문에 한국에 적합한 산업이라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삼성은 반도체 분야 우수인재 육성과 영입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사업 초창기 반도체 사업인력은 이 선대회장의 특명을 받아 해외지사를 통해 반도체 정보를 입수하고 철저한 시장 조사 및 사업성 분석에 돌입해 64K D램 개발 등 첫 성과를 내는데 매진했다. 김광호 전 부회장이나 이윤우 전 부회장 등이 1세대 경영진에 속한다.
1983년 삼성 반도체 1라인 설립 당시 107명의 64K D램 개발팀이 경험과 전문지식이 전무하다시피 해 무박 1일간 64Km 행군하며 정신력과 체력, 굳건한 팀웍을 다졌다는 일화는 드라마틱하기까지 하다.
미국에서 선진 기술을 배워 한국으로 돌아온 점이 공통점인 진대제 전 사장과 황창규 전 사장 등은 2세대 반도체 경영인으로 꼽힌다. 특히 진 전 사장은 미국 IBM 출신으로 당시 사측의 만류에도 불구, 1985년 고국으로 돌아와 삼성전자에 합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진 전 사장과 황 전 사장 등의 명맥은 권오현 현 삼성종합기술원 회장과 김기남 현 삼성전자 DS부문장(사장)으로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1983년 D램 개발성공을 다짐하는 당시 삼성전자 임직원의 64Km 무박2일 행군 장면/사진=삼성전자
반도체업은 크게 D램·낸드플래시로 구성된 메모리반도체와 그 이외 종류의 반도체를 모두 아우르는 시스템반도체로 구성된다. 그 비중이 약 3대 7수준인데 IHS마킷에 따르면 지난 2016년 전세계 시스템반도체 매출액은 2083억달러, 메모리반도체 820억달러로 집계됐다.
시장으로 치면 시스템반도체 시장 규모가 더 컸지만 삼성전자는 당시 사업 실정에 맞다고 판단한 D램 분야에 우선 집중키로 결정했다.
잘 할 수 있는 한가지에 집중한 뒤 낸드플래시, 시스템반도체 등 분야로 영역을 넓혀나가자는 취지였다. 그 결과 삼성전자는 PC 성장기인 1990년대~2000년대까지 PC 종속 사업으로 여겨졌던 D램 부문에서 큰 결실을 거뒀고 2000년 이후 모바일 시기를 맞아 낸드플래시가 캐시카우로 급부상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에서의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시스템반도체에 대한 투자를 지속중이고 자체 모바일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엑시노스' 시리즈를 내놓는 등 성과도 창출중이다. 다만 최근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해 기업의 데이터센터 등에서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기존 메모리반도체에 대한 대규모 투자했던 전략이 여전히 유효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또 하나의 성공요인으로 꼽히는 것은 단일 부지전략이다. 일본만 하더라도 연구소는 도쿄에, 사업장은 자연재해 등을 우려해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에 산재해 있는 경우가 상당수다.
이에 반해 삼성전자는 1983년 기흥에 사업장 첫 터를 닦은 이후 최근까지도 기흥·화성 클러스터(권역)에서 연구와 생산을 모두 담당해왔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생산지와 연구소가 가까이 있을 경우 각 조직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움직이다보니 빠른 속도로 단점을 수정하고 강점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2017년 7월 정식 가동을 시작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항공사진/사진=삼성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