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첫차를 운행하는 김창수 운행사원/사진=한지연기자
지난달 19일 새벽3시30분. 서울 강북구 우이동에 위치한 동아운수 차고지에서 간선버스 153의 첫차 운전대를 잡는 김창수(49) 운행사원을 만났다. 단정히 뒤로 넘긴 머리, 흰색 와이셔츠에 넥타이, 가디건이 깔끔하다. 추운 날 앞문을 열고 닫으면 바람이 들어와 어깨가 시리다.
버스경력 6년차 김씨는 153 버스를 3년 몰았다. 4시 출발하는 첫 차 운행에 맞춰 30분전 일찍 도착하려면 집에서 새벽 2시에 일어나야 한다. 집을 나서기 전 이미 커피를 머그잔으로 2~3잔 마신다. "커피는 '복용'하는거죠. 즐기며 마시는게 아니예요."
우이동에서 당곡사거리(보라매병원)까지 왕복하는 153 버스는 서울의 북동쪽에서 남서쪽을 가로지른다. 덕성여자대학교와 국민대, 연세대 등을 지나고 미아사거리와 여의도 등 주요 정류장을 거치는 '알짜'노선인 덕에 매해 서울에서 가장 많은 승객이 이용하는 노선 TOP3 자리를 놓치지 않는다.
153 버스는 새벽 일을 가는 이들의 발이 된다. 첫 정류장인 우이동도선사입구부터 버스를 기다리던 승객들이 차에 올랐다. 패딩과 마스크로 완전무장을 하고 등에는 배낭을 멨다. 세번째 정류장만에 첫 차는 거짓말처럼 콩나물 시루를 닮은 만원버스가 됐다.
"안녕하세요", "수고하십니다" 승객과 기사는 서로 활기찬 인사를 건넨다. 40명은 족히 넘어보이는 승객 중 첫 차에서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이는 단 2명뿐이다. 즐거운 목소리가 버스를 채웠다.
첫 차 운행을 준비하는 김창수 기사/사진=한지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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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첫 차는 활기도 있고 희망찬 에너지가 느껴진다"며 "'기사님 당 떨어지면 드세요'라며 간식을 주는 승객들도 있고, 다들 생활이 여유롭지 않을텐데 어떤 승객들보다 친절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타박도 피할 수 없다. 오전 4시 정각에 칼같이 출발했지만 "늦었다"는 승객들의 불호령은 첫차의 숙명이다. "첫 차가 너무 늦게와요", "첫 차타고 (일터에) 태워다 주는 첫차 타야 하는데, 왜 이렇게 늦었어" 버스에 오르는 승객들이 한 두 마디씩 던진다. 승객들은 첫 차 시간에 맞춰 출근 시간을 정한다.
김 기사의 손이 더욱 부지런히 움직인다. 하얀 장갑을 낀 왼손은 방향등을 움직이고, 오른 손은 체인지레버(기어 브레이크)를 옮긴다. 손과 발을 연신 움직이며 "안녕하세요" "늦어서 죄송합니다"를 내뱉는다. 첫 차 기사는 쉴 틈이 없다.
애교있게 '늦었다'는 불만을 터뜨리는 고객이 대부분이지만 불같이 화를 내는 승객도 있다. 여의도로 일하러 간다는 한 승객은 "차가 너무 늦어. 기어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승객이 많아서 그랬다. 죄송하다"는 김 기사의 말에도 "승객이 언제는 없었나?"라고 응수한다. 억울한 마음이 들만도 한데 김 기사는 허허실실이다. "늘상 듣는 얘기에요. 첫차 승객들은 1~2분이 예민하잖아요"라면서도 "쉬었다 온 것도 아닌데… 4시에 칼같이 출발해서 열심히 온거 보셨죠?"라고 기자에게 슬쩍 억울함을 표현했다.
첫 차를 운전하며 가장 좋은 순간은 언제일까. "몸은 좀 피곤해도 첫 차를 운전하다 해가 뜰 땐 기분이 좋아요. 서강대교 지날때 일출이 진짜 멋있거든요"라면서도 그는 "앗, 운전하며 이런 생각하면 안되는데"라고 웃었다.
버스 안에 꽉 찬 승객/사진=한지연기자
미아사거리와 국민대학교, 여의도에서 가장 많은 이들이 내렸다. 국민대가 다가오자 뒷문 바로 뒤에 앉은 승객은 뒷 자석 사람들의 버스 카드를 회수해 모아 하차 태그를 찍는다. "자, 일하러 가자" 누군가 외친 우렁찬 소리와 함께 153을 가득 채웠던 승객들이 한차례 내렸다.
4시52분쯤, 빠르게 달리던 김 기사가 슬쩍 앞 창문을 열었다. "졸리지 않다"는 말과 달리 그는 그 뒤로도 두어번 더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153 버스의 기점인 보라매병원이 다가왔다. 롯데백화점 관악점을 지날 때 그가 '당곡사거리 방향'을 가리키던 표지판을 재빨리 뒤집어 '우이동 방향'으로 바꿨다. 보라매병원에 도착하자 귀신같이 시간은 오전 5시40분을 가리켰다. 그는 첫 차를 몰며 연신 "늦어서 죄송하다"고 말했지만 배차시간에 단 1분도 벗어나지 않았다.
김창수 기사가 어둠이 깔린 새벽 첫 차를 운행 중이다/사진=한지연기자
기점은 버스기사에게나 기점이다. 승객에겐 기점의 개념이 없다. "기점에서 조금만 멈춰 있어도 승객들이 항의하고 난리가 나요" 그는 화장실을 가지 않으려 1시간40분이 걸리는 운행내내 물을 한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승객을 내려주고 태운 첫 차는 다시 우이동을 향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