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 명령"…성범죄자는 어떤 치료를 받나

머니투데이 이영민 기자 2017.11.30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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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상담 등 다양한 심리치료…성인범 불참 문제 개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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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OO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8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최근 다양한 성범죄 판례들에 빠지지 않는 처벌 내용이 있다. 바로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 명령이다. 비교적 가벼운 성범죄부터 끔찍한 성범죄까지 유죄 판결을 받은 모든 성범죄자들에게 성폭력 치료 강의는 의무가 됐다.

30일 법무부 및 관련기관에 따르면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명령은 법원이 유죄로 인정한 범죄자에게 일정시간 보호관찰소 또는 전문기관에서 치료와 교육을 받도록하는 제도다. 법원은 범죄의 경중에 따라 최소 10시간에서 최대 300시간까지 이수 명령을 내린다.



1988년 보호관찰법 제정과 함께 도입된 이 제도의 초기 대상은 소년범에 한정됐으나 1997년 성인범까지 확대됐다. 접근 방식도 '정보 전달식 교육'에서 '인식 교정과 치료'로 점차 변했다.

최근 형사정책이 '재사회화'를 강조하면서 수강명령 비중도 늘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1년 2만5110명이던 수강명령 처분 대상자는 매년 꾸준히 증가해 2016년 4만3930명을 기록, 5년만에 2배 가까이 늘었다.



◇"나는 피해자에게 어떻게 했나"…치료 프로그램 내용은
성범죄자 치료 프로그램 중에는 참가자들이 스스로 저지른 범죄의 동기와 과정, 내적 대화 내용을 기록해야 하는 단계도 있다. /사진=여성가족부 '성폭력가해자 교정·치료프로그램 매뉴얼' 캡처성범죄자 치료 프로그램 중에는 참가자들이 스스로 저지른 범죄의 동기와 과정, 내적 대화 내용을 기록해야 하는 단계도 있다. /사진=여성가족부 '성폭력가해자 교정·치료프로그램 매뉴얼' 캡처
성범죄자 치료 프로그램은 법무부, 여성가족부 등 관련 부처에서 개발한 매뉴얼을 적용한다.

전국 10여곳 수강집행센터에서 진행되는 치료 프로그램은 보통 일주일에 한 번 8시간씩 진행된다. 심리 치료는 재범위험성 평가 결과에 따라 반 편성을 달리해 운영한다. 이수명령 100시간 이하자는 기본교육기관에서, 100~200시간자는 집중교육기관에서, 200시간 초과자는 심화교육기관에서 치료를 받는다.

참가자들은 비슷한 성범죄를 저지른 다른 참가자들과 10명 내외 소규모 집단을 이뤄 수업을 받는다. 강사는 질문지, 집단 상담 등 다양한 심리 치료 기법을 동원한다.


프로그램은 부정적 감정 나누기, 성폭력 행위 책임 인정하기, 피해자 고통 인식하기, 변화를 위한 자기조절 연습 등 순서로 이뤄진다. 프로그램 초기에는 참가자들이 억눌린 감정을 풀어내도록 격려한 후 잘못된 성인식을 점검하고, 이들이 저지른 성범죄의 심각성을 인식시키는 방식이다.

참가자들이 스스로 저지른 범죄의 동기와 과정을 기록해야 하는 단계도 있다. 기록지에는 '성폭력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에게 어떻게 말했나(내적 대화)', '성폭력 행위 동안 피해자의 반응', '피해자의 저항을 어떻게 극복했는가' 등 범죄 당시의 내용을 세부적으로 작성해야 한다.

참가자가 성폭력 사실을 직접 드러내고 범죄 행위가 계획적으로 발생했음을 인식시키기 위해서다. 다음 단계에서는 성폭력 중단 의지를 확인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장벽 세우기를 구체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피해자에게 사과편지와 새로운 삶을 약속하는 선언문을 작성, 낭독한다.

◇치료 프로그램 이수 후 재범률 낮아져…성인범 불참 문제 개선해야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참가자의 재범률은 미수강 성범죄자에 비해 크게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고려대 정유희 박사 논문에 따르면 성폭력 치료 미수강 성범죄자는 122명 가운데 24명(16.4%)이 1년 이내 다시 범행했지만, 강의를 들은 성범죄자는 124명 가운데 4명(3.1%)만이 재범한 것으로 조사됐다. 평균 재범 횟수도 강의를 듣지 않은 집단의 경우 23회였지만 강의를 들은 집단은 0.4회에 그쳤다.

하지만 치료 프로그램 이수율은 여전히 낮다. 특히 성인 가해자의 불참률은 매년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가부에 따르면 지난해 852명 중 10.1%인 86명이, 올해 6월까지의 교육 대상자 458명 중 13.1%인 60명이 교육을 받지 않았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김지영 책임연구원은 '수강명령프로그램 운용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개발과 수정·보완을 전담하고, 각 기관에서 실시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관리·감독도 담당할 수 있는 상시적인 전담부서를 설치해 각 프로그램의 다양화와 전문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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