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갑지 않은 원화 강세…외환당국 ‘마지노선’ 주목

머니투데이 유엄식 기자, 권혜민 기자 2017.11.23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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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 당국자 “투기세력, 정부 역할 간과” 발언 수위 높여…시장, 내년 원/달러 환율 평균 1100원 미만 예측

국제통화금융(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참석차 미국 워싱턴을 방문 중인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12일(현지시간) IMF에서 기자브리핑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국제통화금융(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참석차 미국 워싱턴을 방문 중인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12일(현지시간) IMF에서 기자브리핑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스1


최근 원화 강세 흐름이 심상치 않다. 내달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추가 금리인상을 예고했고 정부가 연일 미세조정을 하는 데도 아래쪽으로 잡힌 방향이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다. 시장도 방향성을 찾는데 분주한 모습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의 정책 대응 셈법도 복잡해졌다.

2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일대비 3.7원 내린 1085.4원에 마감했다. 2015년 5월6일(1080원) 이후 2년6개월 만에 최저치다.



북‧미 갈등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된 9월말 달러당 1149.1원을 기록한 뒤 원/달러 환율은 계속 떨어졌다. 환율은 보통 2~3거래일마다 상승‧하락을 반복하면서 ‘절충점’을 찾는데 이 기간은 하락장 이후 반등이 미미했다. 그만큼 원화 절상 압력이 강했다는 의미다.

원/달러 환율은 9월말부터 지금까지 60원 가량 떨어졌다. 두 달간 원화가 달러화 대비 약 5% 절상된 것이다. 이 기간 엔화는 0.5%, 위안화는 0.7% 절상됐다. 대만 달러화 등 아시아권 통화도 대체로 절상률이 1~2%대에 그쳤다. 유로화는 보합 수준이며 호주 달러화는 되레 3% 절하됐다.



그 배경에 대해선 여러 관측이 나온다.

우선 국내 경기회복세가 강하다는 점이다. 지난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4%로 2010년 2분기(1.7%) 이후 7년 여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3년 만에 연간 3%대 성장률이 유력하다. 주식시장도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정도로 흐름이 좋다.

이에 따라 이달 말 한은이 6년 여만에 기준금리를 올릴 가능성이 거론된다. 정책금리 인상은 기본적으로 자국 통화 강세 요인이다.


또 중국과 560억달러(64조원/3600억위안)규모 통화스와프 재연장 협상이 극적 타결됐고, 준(準) 기축통화국인 캐나다와 한도와 만기가 없는 상설 통화스와프 계약을 새로 맺어 금융안정망이 탄탄해진 것도 원화 강세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해도 원화의 절상 속도는 매우 빠르다. 이에 시장 일각에선 그동안 잠재된 북한 리스크가 해소된 점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북한은 지난 9월 15일 이후 핵‧미사일 도발을 하지 않고 있다. 공교롭게도 원화는 이 시점 이후 절상 속도가 빨라졌다.

앞서 원화 강세요인을 일부 상쇄시켰던 지정학적 리스크가 걷히자 이를 시발점으로 강세 압력이 더 쎄졌다는 것이다.

시장 관계자는 “달러화는 연초부터 약세 흐름이 지속됐고 이 영향으로 신흥국 통화는 꾸준히 절상됐는데 원화는 지정학적 리스크로 되레 절하된 시기도 있었다”며 “9월말부터 원화 절상폭이 더 확대된 것은 이런 측면도 반영된 것”이라고 했다.
달갑지 않은 원화 강세…외환당국 ‘마지노선’ 주목
심리적 지지선이었던 1100원, 1090원이 단기간 잇따라 뚫리자 당초 미온적이었던 정부 반응도 달라졌다. 외환당국 고위관계자는 이날 최근 원/달러 환율이 가파른 하락세를 나타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역외 투기세력들이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정부의 역할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종전까지 “면밀히 주시하겠다”는 입장에서 강경 기조로 바뀌는 분위기다.

원화 강세는 향후 한은 통화정책 운용에도 변수도 떠오를 전망이다. 그 자체로 11월 금리인상론을 뒤짚기 어렵지만 내년 추가 금리인상 속도조절에 힘을 실어줄 수 있어서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원화 강세가 지속되면 외국인 자금 이탈 우려는 완화되면서 한은 금리인상 필요성이 이전보다 줄어들 수 있다”고 했다.

시장은 내년에도 원화 강세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현대차투자증권은 내년 원/달러 환율이 평균 1075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내년 초 1100원대에서 연말 1050원대로 하락한다는 전제가 깔렸다. 우리은행(1080원), 하나금융연구소(1095원), 신한금융투자(1100원) 등도 내년 원화 강세 흐름을 예측했다.

원화 강세로 지난해 7월 1100원대였던 원/엔 재정환율도 현재 970~980원으로 떨어졌다. 수출 경합 상품이 많은 일본 기업과의 경쟁에서 부담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물가, 금리, 교역조건 등을 고려한 적정 환율이 달러당 1184원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시장 관계자들은 향후 외환당국의 대응에 주목한다. 오는 30일 한은 금통위 통화정책회의가 중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민경원 우리은행 선임연구원은 “금일 정부 고위 인사가 원화를 밀고 있는게 투기세력이라고 단정 짓는 등 강한 발언을 했지만 실개입 물량은 거의 없었고 1090원선도 깨졌다”며 “내주 한은 금리결정 이후 이주열 총재가 환율 동향과 추가 금리인상 등에 대해 어떻게 발언하느냐에 따라 금리, 외환시장 모두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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