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중국 소도시 즈공에 세계1위 기업이 두 개인 이유

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진상현 특파원 2017.11.22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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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유적지 즈공, 세계 공룡 모형 90% 생산… 중국 전통 연등도 세계화 성공
중국 서남부 청위 경제권 3,4선 도시 산업육성 경쟁

[르포]중국 소도시 즈공에 세계1위 기업이 두 개인 이유


지난 17일 중국 쓰촨성 즈공시 건구룽텅커지(自贡亘古龙腾科技有限公司)의 작업장에 들어서자 기괴한 모습이 연출됐다. 철제 프레임으로 만들어진 동물 모양의 물체가 꼬리와 머리를 흔들며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공룡이다. 아직 피부가 입혀지기 전 프레임 상태의 공룡 모형 작동 테스트가 진행 중이었다. 작업장 내부에는 비슷한 형태의 공룡 모형 틀 수십개 이상 만들어지고 있었다. 현대 공룡(공룡 모형)들의 고향 즈공에 왔음을 실감하게 된 순간이다. 중국 남서부에 위치한 쓰촨성의 성도 청도에서 남동쪽으로 20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이곳에서 전 세계 공룡 모형의 90%가 제작된다. 140여개 기업들이 지난해 기준으로 총 6억위안(990억원)어치의 공룡 모형을 생산했다. 수출되는 국가만 100여개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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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공룡의 고향…세계 공룡 모형 90% 생산



건구룽텅커지가 즈공 내 1위이자 세계 1위 공룡 모형 제작 업체다. 공룡 모형으로만 2014년 100만 달러, 2015년 400만 달러, 지난해 500만 달러 어치를 수출했다. 생산된 공룡 모형은 중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의 박물관, 과학기술 박물관, 놀이공원, 공룡테마파크, 쇼핑몰, 도시 광장, 리조트 등에 보내진다. 공룡 모형이 주력이지만 곤충, 동물, 고대 식물 등 다른 모형들도 함께 만들고 있다.

즈공에서 공룡 산업이 발전하게 된 것은 세계적인 공룡 유적지를 가졌다는 자부심, 개혁 개방을 통한 산업화와 세계 시장 공략을 통해 가능했다. 몇몇 소기업들이 단순한 형태의 공룡 모형을 만들고 있던 1992년 겨울 대만인 한 명이 이곳에 자리 잡고 처음으로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공룡 모형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후 1996년 봄 일본의 한 회사가 피부와 감촉 등이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은 공룡 모형을 청두에서 전시한 것이 중요한 자극이 됐다.



즈공시 정부 관계자는 "세계적인 공룡 유적지가 있는 우리가 이걸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면서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공룡 산업이 성장했다"고 말했다.

즈공은 쥐라기(약 1억 6000만 년 전) 시대 공룡 화석이 대거 발견된 곳이다. 1987년 유적지 자리에 '즈공 공룡 박물관'이 세워졌다. 이 박물관은 세계 3대 공룡 유적지 박물관 중 하나로 평가된다. 중국 '공룡 기업'들의 세계화와 시장 확대를 이끈 것은 업계 1위인 건구룽텅커지다. 이 회사의 궈치홍 최고경영자(CEO)는 "2007년 회사를 설립해 독자적으로 수출을 시작하게 되면서 즈공의 공룡 산업이 지금의 위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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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등 산업도 세계 1위…60여개국, 500개 이상 도시에 수출


즈공의 연등 산업도 공룡 산업처럼 전통과 산업화, 개혁 개방이 맞물려 세계 시장을 석권한 사례다. 800년 전 당·송 시절부터 시작된 이곳의 전통 연등 문화는 1964년 즈공시 정부가 시가 관리하는 축제로 승격시키면서 산업화가 시작됐다. 1989년 싱가포르에서 첫 해외 중국 연등 축제가 개최된 이래 지금까지 60여 개국, 500개 이상의 도시에서 축제가 열렸다. 즈공시 전체 연등 수출은 2013년 2013년 641만 달러에서 2014년 1214만 달러, 2015년 1678만 달러, 2016년 2177만 달러로 늘어났고, 올해 1~7월 942만 달러를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다시 17.2% 성장했다.

세계 1위 기업은 17개 기업이 합쳐 2016년 설립된 덩차이(灯彩, 랜턴)그룹으로 세계 연등 시장의 85%를 점유한다. 중국 정통 장식에서부터 로저 래빗, 트랜스포머 등 다양한 캐릭터까지 각양각색의 재료로 다채롭고 섬세한 연등 작품을 제작한다. 올해 7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가 열린 독일 함부르크에서 개최된 '세계 중국 연등 축제'를 주관하기도 했다. 중국연등박물관 관계자는 "향후 10년 내에 즈공의 연등 관련 수출 1억 달러(약1100억 원)를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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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공시는 '정염(소금기가 녹아 있는 지하수에서 얻은 소금)'으로도 유명하다. 약 2000년 전부터 이곳에서 땅을 파서 소금을 만들었고 청나라 때 이미 세계에서 가장 깊은 1001.42m까지 땅을 파 간수를 퍼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지금도 소금은 즈공을 대표하는 산업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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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위 경제권 주변 3선 도시, 산업 육성 경쟁…한국 기업진출은 걸음마

즈공은 전통에 바탕을 둔 산업에 그치지 않고 친환경, 항공산업 등 첨단 산업 육성에도 팔을 걷어 부치고 있다. 중국 서부 개발의 핵심 거점이자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사업과도 직결되는 청위(청두-충칭) 경제권의 중심에 위치한 것이 강점이다.

시 정부는 2015년 7월 즈공 항공산업단지 건설을 승인했다. 1단계 16.29㎢, 총 85.3㎢ 부지에 지어지며 소형 비행장부터 항공기 제조, 가스 터빈 및 신소재, 일반 제조 등 항공산업 전체를 포함하는 산업 체인을 갖출 예정이다. 2007년부터 건설이 시작된 즈공첨단산업단지는 전체 40㎢ 규모로 조성되고 있으며 에너지 절감 장비와 신소재 기업이 주요 축이다. 이미 25억 위안(약 4125억 원) 이상이 투자돼 13㎢ 이상이 개발 완료됐다. 앞으로 150개 기업이 더 유치될 예정이다.

일대일로 프로젝트도 큰 힘이 되고 있다. 거점 지역답게 일대일로 서비스 센터가 문을 예정이고 일대일로 협력 차원에서 체코가 아음속 비행기 제조를 위해 즈공시와 협력키로 했다.

일대일로가 진행되면서 유럽 등과의 교류가 확대될 경우 즈공의 전략 산업 수출도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다. 인구 328만명(2016년 기준)으로 지방 3선 도시 가운데도 작은 편인 즈공뿐 아니라 청위 경제권에 있는 많은 주변 도시들이 산업 육성을 위해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이 지역이 중국 내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지역 중 하나로, 그 수혜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우리 기업들은 쓰촨성 전체 기준으로 300여개 기업들이 진출해 있지만 대부분 수도인 청두에 나가 있고 주변 3, 4선 도시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베이징 현지의 한 경제 전문가는 "낮은 소득 수준, 지방 공무원들의 자질 등 지방 3,4선 도시들의 리스크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면서 "중국 대도시들의 제조업 경쟁력이 높아져 있는 만큼 어렵더라도 성장하는 지방 도시들을 선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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