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한국판 골드만삭스에 대한 우려

머니투데이 진경진 기자 2017.11.14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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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활성화와 도덕성 사이에서 눈치게임은 안돼

2011년 7월 금융위원회는 초대형IB(투자은행) 육성 계획을 발표했다. 은행권의 높은 문턱에 막혀 대출 사각지대에 놓였던 기업들에 자금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6년여가 지났지만 도입 취지에는 변함이 없다. 더욱이 초대형IB가 활성화되면 창업 초기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들이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어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이자 최근 발표한 혁신 성장 정책과도 지향하는 점이 같다.



하지만 지난 13일 금융위원회가 5개 대형 증권사를 초대형IB로 지정한 직후 업계에선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많다. 5개 사업자 중 초대형IB의 핵심 업무인 발행어음 사업 인가를 받은 곳이 한국투자증권 1곳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6년4개월 만에 공개된 '한국판 골드만삭스'는 들인 시간과 거창한 명칭에 비해 초라했다.

한국투자증권은 자기자본이 4조3450억원(6월말 기준)이다. 초대형IB 출범으로 가능해진 발행어음 규모는 자기자본의 2배인 최대 8조6900억원 수준이다. 50% 이상을 기업금융(대출·회사채 인수·비상장사 지분투자 등)에 쓴다고 가정해도 5조원 남짓이다. 이 역시도 2020년을 목표로 삼았을 뿐 당장 내년까지 발행어음으로 조달할 자금은 5조원에 불과하다.



현재로선 한국투자증권 단 1곳만 발행어음을 통해 내년까지 5조원을 조달한 뒤 2조5000억원 가량을 기업금융에 투입하는 셈이다. '반쪽짜리 한국판 골드만삭스 출범'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나머지 4개 증권사는 대주주 적격성 문제와 과거 징계 등이 문제가 되면서 심사가 미뤄졌다. 최근 재벌 개혁·도덕성 문제 등이 민감하게 적용되는 만큼 비판 여론을 의식해 모험자본 공급은 후순위로 밀린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증권사에 대한 발행어음 인가 심사를 언제 다시 진행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키운다면서 정치·사회적으로 제약이 너무 많다"며 고개를 저었다. "초대형IB는 중개 업무 중심의 증권업을 개편하고 모험자본을 공급해 경제를 활성화하는 방안"이라는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발언처럼 금융위가 초대형IB 도입의 취지를 다시 한 번 고민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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