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인사의 말이 예언처럼 2일 실현됐다.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이 국정감사 때 우리은행의 자체 특혜채용 감찰보고서를 검찰에 넘겼다고 한지 사흘만이다. 우리은행은 사회고위층과 VIP고객 등의 채용 청탁 내용이 담긴 문건이 유출돼 결국 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
박 회장은 상품권을 구매한 뒤 수수료를 제하고 현금으로 바꾸는 '상품권 깡'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혐의를 받고 지난 9월초 경찰에 입건됐다. 실제 ‘상품권 깡’을 했는지 조사가 끝나지 않았지만 금융권에선 시기가 문제일 뿐 박 회장의 사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해말 금융감독원이 투서를 받아 조사한 결과 무혐의 판결을 내렸던 사안을 경찰이 다시 조사한다고 나선 것 자체가 그만두라는 정부의 압박이라는 해석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또 있다. 고발로 자리가 위험해졌다는 점이다. 이 행장은 채용 합격자 중 청탁이 있었던 직원 명단을 내부자가 외부로 유출해 검찰 조사까지 가게 됐고 박 회장은 내부 투서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됐다. 금융권이 주목하는게 이 대목이다. 전 정부와 인연이 있었던 CEO(최고경영자)는 자신과 관련이 있는 고발이 이뤄져 결국 옷까지 벗게 되는 수순이라는 것이다.
BNK금융그룹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서도 음모론적 시각이 존재한다. 성세환 전 BNK금융 회장 겸 부산은행장은 엘시티 비리 사건에 대해 무혐의로 조사가 마무리된 직후 갑작스럽게 주가조작 혐의로 현 정부 출범 직전인 지난 4월 구속됐다. 성 전 회장은 보석 신청도 기각됐다가 BNK금융 이사회가 차기 회장을 선출하기로 결정한 뒤 사퇴 의사를 밝히고 6일 후 보석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BNK금융 회장엔 정부와 친분이 있어 ‘낙하산’ 논란이 있었던 김지완 회장이 선임됐다. 성 전 회장이 좀더 일찍 풀려났다면 후계구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다.
이 시각 인기 뉴스
게다가 은행 CEO들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아니다. 대부분은 검찰이나 경찰 조사로 소송까지 가게 되면 엄청난 소송 비용을 걱정해야 한다. 위에서 사인이 오면 험한 꼴 당하기 전에 재빨리 눈치 채고 옷 벗는게 상책이란 얘기다.
채용비리는 철저히 조사해 척결하는게 맞다. 하지만 금융협회장에 뜬금없이 현 정부와 인연이 있는, 70세 때론 80세 가까운 옛 고위 관료들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을 보면 모든 게 있는 그대로의 사건은 아닌 것 같다. 자꾸 음모론이 떠오르는 금융권을 보면서 옳은 일을 한다고 해도 ‘뭐가 있겠지’ 하는 냉소적인 마음이 생기는 심란한 가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