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2017년 '댕댕이', 30년 전 '니나니노'

머니투데이 김주동 기자 2017.11.01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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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파괴? 언어 유희? 그때도 '파괴'는 있었다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우보세]2017년 '댕댕이', 30년 전 '니나니노'


#1. 오는 11일은 '농업인의 날'이다. 11월11일의 숫자를 한자로 쓰면 十一, 十一이 되고 이 한자를 겹쳐 쓰면 흙 토(土)가 되니 '土土날', 즉 흙과 살아가다 흙으로 돌아가는 농업인의 삶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일종의 파자(破字, 글자를 깨뜨림)다. 이는 한자의 획을 풀어서 나누는 것으로 언어유희(놀이)기도 하고 역사적으로는 점술이기도 하다.

#2. "재기 발랄한 청소년들은 은유나 비유를 써서 속어를 발달시킨다. … 불량배들의 은어를 이용하여 '꼰대'(교장, 아버지) 등을 썼고, '아더메치유'(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하고 유치하다) 등을…."-1980년 기사
 "요즘 들어 비어 속어는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에게서 심해 … 기똥차다(기차다), 쌤통이다(고소하다) 골로가다(죽다) 등의 말이…."-1985년 기사
 "(OTL, KIN, ~하3 등을 예로 들며) 언어 파괴와 한글 변용으로 인한 의사 소통의 장애에 대한 우려…."-2006년 기사



최근 인터넷에서 퍼진 댕댕이, 띵언 같은 소위 '야민정음'이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야민정음은 글자를 비슷한 다른 모양의 글자로 바꿔서 쓰는 것이다. 그래서 '멍멍이'가 '댕댕이'가 되고 명언은 띵언이 되었다. '놀이'일 뿐이라는 시각이 있지만 어김없이 '한글 파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런데 이런 식의 '장난'이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80년대, 아이들은 역시나 바보라는 말을 즐겨 썼다.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 '니나니노'였는데, 두 글자씩 잘 겹쳐서 쓰면 '바보'가 된다. 깜찍한 재치에 많은 아이들이 한두 번씩은 써먹곤 했다. 한글 파괴였을까?



야민정음이나 니나니노가 대중을 상대로 한 의사소통 행위는 아니다. 파자는 놀이로 평가받고 한글로 파자처럼 노는 것은 파괴 행위라고 한다면 어딘지 서글프다.

언어도 살아있는 것이라 그 중 새로 생기는 것이 있고 사라지는 것도 있다. 옛날 신문에 언급된 꼰대, 기똥차다, 쌤통은 대중들이 받아들여 지금도 쓰이고 있다. 하지만 'KIN'은 지금 쓴다면 옛날 사람 취급받기 딱 좋다. 요즘 비난받는 줄임말의 일종인 '아더메치유'는 이제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한때의 유행은 지나간다. 기존과 다른 말이 생겼다고, 말 놀이가 생겼다고 당장 말의 품격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언어 파괴는 대중을 상대로 한 곳에서 어려운 한자어나 외국어를 쓰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여전히 문서 작업을 할 때는 어려운 말을 쓰고, 이름을 붙일 때는 영어를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고속도로에서 볼 수 있는 '졸음쉼터' 같은 쉽고 분명한 이름은 그래서 좀 더 박수를 받으면 좋겠다. 언어의 핵심은 소통이다. 한글이 찬사를 받는 것은 '누구나 쉽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보세]2017년 '댕댕이', 30년 전 '니나니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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