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베제강 사태' 일파만파…'메이드 인 재팬' 위기로 번졌다

머니투데이 유희석 기자, 권다희 기자 2017.10.12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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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부품, 車부터 우주로켓까지 광범위 영향…잇따른 부정사건, 일본 제품 명성 흔들어

'고베제강 사태' 일파만파…'메이드 인 재팬' 위기로 번졌다


일본 대형철강업체 고베제강의 제품 성능조작 사건의 파문이 일본을 넘어 해외로까지 번졌다. 오랫동안 쌓아온 '메이드 인 재팬'의 신뢰가 와장창 무너질 위기다. 소재 산업 특성상 자동차부터 항공기, 철도 등 거의 모든 곳과 연관된다. 심지어 일본이 자랑하는 우주로켓에도 불량 부품이 사용됐다. 조사 결과에 따라 자동차 대량 리콜 등 파장이 클 전망이다.

◇ 도요타부터 H-2A로켓까지 불량 부품 사용…해외 기업도 영향권



고베제강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8월까지 생산한 알루미늄 제품 1만9300t과 구리 제품 2200t의 성능을 조작했다. 강도 등 품질이 기준에 미달하는 제품에 대한 시험 결과를 조작해 납품했다.

고베제강의 불량 제품은 각종 부품으로 가공돼 일본의 거의 모든 산업계로 공급됐다. 자동차업계에서는 도요타, 닛산, 스바루, 마쓰다, 미쓰비시, 혼다 등이 고베제강 제품 사용을 확인했다. 고속열차 차량과 미쓰비시중공업의 국산 제트여객기 'MRJ'에도 부품으로 탑재됐다. 지난 10일 발사된 우주로켓 H-2A 36호기에도 사용됐다. 마이니치신문은 "고베제강 사태가 신칸센과 항공우주까지로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국가안보 분야도 영향을 받았다. 일본 방위성은 10일 "자위대 항공기와 미사일 등에도 고베제강의 불량 알루미늄이 사용된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원자력발전소에 고베제강의 품질 조작 제품이 사용됐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미국 보잉사 등 일본 기업과 거래하는 해외 기업들도 영향을 받았다. 히타치제작소가 영국에서 제작 중인 고속철 부품에도 고베제강 제품이 쓰인 것으로 확인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고베제강 거래처인 미쓰비시중공업과 가와사키중공업은 미국 보잉사 등에 항공기 주요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면서 "당국은 일본에 취항 중인 항공기 전반에 대해 안전성 검사를 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고베제강은 안전성 문제가 확인된 제품은 리콜(회수 · 무상 수리)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미 자동차 등 2차 제품 리콜로 인한 피해까지 고베제강이 배상해야 한다면 회사 존립 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고베제강은 11일 실적 악화에 대비해 자회사 고베부동산을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매각 규모는 약 500억 엔(한화 약 5054억 원) 정도로 추정된다. SMBC닛코증권의 야마구치 아츠시 연구원은 "(이번 사태가) 자동차 리콜로 발전하면 (고베제강의) 실적에 영향이 클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베제강 주가는 품질 조작 사건이 공개된 10일 22% 가까이 폭락한 데 이어 11일에도 18%가량 급락했다. 닛산, 미쓰비시중공업, IHI 등 고베제강 고객사 주가도 동반 하락했다.

일본 고베제강의 제품 생산 모습. /사진=블룸버그 방송 갈무리일본 고베제강의 제품 생산 모습. /사진=블룸버그 방송 갈무리
◇ '메이드 인 재팬'의 위기…日 제조업 신뢰도 추락

고베제강 사태는 일본 제조업의 신뢰도 추락 위기를 보여주는 최신 증거다. 일본경제단체연합회의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회장은 "일본 제조업에 대한 국제적인 신뢰는 품질이 압도적으로 좋기 때문"이라면서 "일본을 대표하는 제조 기업의 이번 사태는 유감"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최근 몇 년간 분식회계, 품질 조작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제는 비싸지만, 품질은 세계 최고"라는 세계 소비자들의 인식에도 균열이 생겼다.

전자업체 도시바는 2015년 1조5000억 원 이상의 이익을 부풀리는 분식회계가 발각됐다. 결국, 알짜 반도체 자회사 '도시바메모리'를 매각해야 했다. 세계 3대 에어백 제조사였던 다카다는 결함 은폐로 인한 손실 누적으로 파산했다. 최근에도 후지제록스의 호주와 뉴질랜드 자회사가 분식회계를 저질렀으며, 이달 초에는 닛산자동차가 무자격 사원을 완성차 안전성 검사 작업에 투입해, 결국 116만대를 리콜했다.

2011년에는 올림푸스가 10년 이상 1조 원 가량의 손실을 감춰온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줬다. 미쓰비시자동차는 지난해 60만대 이상 차량의 연비를 조작한 충격으로 결국 닛산에 매각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고베철강 사태의 충격이 '메이드 인 재팬'의 신뢰성을 뒤흔들고 있다"면서 "그동안 일본을 대표하는 대기업의 비리가 계속 발각됐음에도 타산지석으로 삼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의 이주 금속·광산 전문연구원은 "(교베제강 사태는) 일본의 제품이 완벽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준 것"이라며 "이는 중국 등의 제조기업에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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