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조종석엔 남녀가 없다"

머니투데이 황시영 기자 2017.10.11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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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국내 첫 승무원 출신 女기장…이혜정 진에어 기장, 20년간 1만 1600여 시간 비행 기록

이혜정 진에어 기장(48)이 지난달 28일 인천~간사이 노선 운항을 마친 후 인천국제공항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황시영 기자 이혜정 진에어 기장(48)이 지난달 28일 인천~간사이 노선 운항을 마친 후 인천국제공항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황시영 기자


"조종석(콕핏) 안에서 기장, 부기장이 있지 여자, 남자가 있는 것이 아니죠."

이혜정(48·진에어 기장)씨는 우리나라 최초의 '승무원 출신 기장'이다.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달 28일 인천국제공항에서 그를 만났다. 이날 새벽 4시에 기상, 오전 7시부터 인천~간사이 노선을 비행한 후 '퀵턴(바로 돌아오기)'으로 간사이~인천 노선 운항을 마친 터였다. 피곤한 기색이 있을 법도 한데 '자신의 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부터 뿜어나오는 활력과 카리스마부터 느껴졌다.

이 기장이 항공업계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1991년 아시아나항공 승무원 입사 때로 되돌아간다. 4년 후 '퍼스트클래스' 승무원까지 하고 나니 '새로운 도전'이 하고 싶어졌다.



같은 비행기를 탄 조종사들에게 운항승무원의 현실이 어떤지 '취재'했고 관련 공부를 한 후 1996년 사내 선발을 통해 조종훈련생이 됐다. 당시 여성 2명이 뽑혔는데 이 중 한명이 된 것. 이후 약 2년간 비행훈련 기록을 쌓은 후 부기장에 올랐다.

이 기장은 1998년부터 2009년까지 아시아나항공에서 부기장을 지낸 후 2009년 다른 항공사로 옮겨 기장이 됐다. 진에어에는 2014년 입사했다. 진에어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현재 이 기장의 누적 비행 시간은 1만1678시간에 달한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베테랑' 기장(캡틴)으로, 진에어가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가운데 유일하게 보유 중인 중·대형기 'B777-200ER'(355석 규모)을 조종한다. 진에어는 'B777-200ER' 4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하와이(호놀룰루), 호주(케언즈) 등 장거리 노선에 취항하는 것은 물론 괌, 일본 등 수요가 높은 중·단거리 노선에도 취항한다.

지금까지 '금녀(禁女)의 벽'을 깨느라 힘들지 않았느냐고 묻자, "조종석만큼 여자, 남자 구분이 없는 곳도 드물다. 매력적인 직업이니 청소년 여러분들 한번 도전해보시라"는 답이 돌아왔다.

"체력만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남자도 하기 힘들텐데, 조종이 자동화돼 있어서 특별히 여자라서 신체적으로 불리하다고는 생각한 적 없습니다. 기내 기압이 보통 5000~6000피트 정도입니다. 체력 버티기가 아니라 악천후 같은 나쁜 조건에서의 상황 판단, 승객 200여명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진다는 책임감이 중요한 일입니다."


베테랑 기장으로서 후배 운항승무원들에게 조종을 시켜보니 "남자 중에서 못하는 사람이 있고, 여자도 시켜보니 더 잘하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이 기장은 중학생 아들, 초등학생 딸을 둔 엄마이기도 하다. 남편도 항공사 기장이다보니 육아는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는다. 일과 육아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가 없을 리 없다.

"20년 넘게 하다보니 비행을 사랑하게 돼 일과 육아 사이에서 갈등을 덜 겪어요. 하늘 위에서 보내는 시간 외에는 아이들과 함께 보냅니다. 오늘 돌아오는 길에 날씨가 정말 좋았거든요. 조종사 좌석에서 전면으로 보는 하늘은 비행기의 좁은 창문 틈으로 보는 하늘과 달라요. '이 맛'에 비행합니다."

이 기장은 종이 매뉴얼로 가득 찬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다른 항공사 기장들과 달리, 차림도 백팩 하나로 간편했다. 회사 매뉴얼, 비행 매뉴얼, 젭슨 차트, 공항정보 등 운항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아이패드 에어'에 넣어 다니기 때문이다. 진에어는 국내 항공사 최초로 '종이없는 조종실(전자비행정보·Electronic Flight Bag)'을 실행 중이다. 한편, 국내 항공사 여성 기장은 이 기장을 포함해 10명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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