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유럽중앙은행(ECB) 본부/AFPBBNews=뉴스1
'무제한 국채 매입 프로그램'이라고도 하는 OMT는 재정위기국의 국채를 무제한 사들여 자금조달 숨통을 열어주는 전략이다. 덕분에 금융시장에서는 유로존 재정위기국을 둘러싼 불안감이 누그러져 국채 금리 급등세가 진정되기 시작했다.
유로존 경제의 회복세가 탄탄해지자 ECB 안팎에서 최근 통화긴축 논의가 활발해졌다. 드라기 총재는 지난 9월 통화정책회의 뒤에 가진 회견에서 양적완화 규모를 줄이는 테이퍼링 방침을 10월에 발표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AFPBBNews=뉴스1
ECB의 통화긴축 행보와 관련해 시장에서 가장 꺼리는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가 독일이 ECB를 장악하는 것이다. 독일은 유로존 최대 경제국으로 ECB에서 이미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독일 출신이 ECB 총재를 맡은 적은 없다. 드라기 총재는 이탈리아 출신이고 전임자인 장클로드 트리셰는 프랑스 출신이다. 트리셰에 앞서 초대 총재를 맡은 빔 두이젠베르크는 네덜란드 사람이다.
이 시각 인기 뉴스
독일이 ECB 총재직을 거머쥐지 못한 건 다른 유로존 회원국들의 견제 때문이다. 트리셰의 후임으로 유력했던 악셀 베버 전 분데스방크(독일 중앙은행) 총재도 같은 이유로 드라기에게 밀렸다.
유로존 국가들이 독일의 ECB 장악을 꺼리는 건 매파 성향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독일은 인플레이션(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는 현상)을 부추기는 통화완화정책을 극도로 꺼린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초인플레이션'을 경험한 탓이다. 당시 빵을 사려면 수레로 돈을 실어날라야 했다. 독일은 유로존 재정위기 때도 ECB의 통화부양책에 반발했다.
독일이 ECB를 장악하면 통화긴축 속도가 급격히 빨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ECB의 섣부른 통화긴축은 특히 재정위기 후유증이 남아 있는 남유럽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젠 독일이 ECB 총재직을 가져올 때가 됐다며 옌스 바이트만 분데스방크 총재를 드라기의 후임으로 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최근 프랑스와 이탈리아도 독일 출신이 ECB 총재를 맡는 건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다만 바이트만 총재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바이트만이 ECB 정책위원회에서 그동안 뻔뻔할 정도로 매파 성향을 고수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