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중앙은행, 출구 '난제' 풀기 성공할까

머니투데이 권다희 기자 2017.10.06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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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물가상승률 하락 … 통화부양책 축소 진행 어려워져

재닛 옐런 미 FRB 의장(사진왼쪽)과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사진=블룸버그 재닛 옐런 미 FRB 의장(사진왼쪽)과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사진=블룸버그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세계 금융위기 후 10년 가까이 펼쳐 온 ‘비전통적 통화부양책’ 축소에 본격적으로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이미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한 미국은 이번 달부터 채권매입 프로그램 양적완화(QE)로 늘려 온 자산 축소를 개시한다. 유럽중앙은행(ECB)도 이번 달 QE 축소 계획을 발표할 전망이다. 하지만 금융위기의 산물인 비전통적 정책을 원상복귀 시키기까지는 만만찮은 난제들이 남아있다.

◇성장률↑실업률 ↓물사상승률은 ‘나 홀로 제자리’



기업과 소비자들의 심리, 경제성장률, 실업률은 2008년 금융위기 직후보다 완연히 회복했다. 특히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 국)의 회복이 올해 들어 두드러졌다. 금융위기 후 수년간 역성장을 벗어나지 못했던 GDP(국내총생산)가 10년 내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실업률도 하락했다. 경기 심리 역시 10년 내 가장 높은 수준으로 회복됐다. ECB가 금융위기와 유로존 재정위기 후 개시한 통화완화 정책을 이제 접기 시작할 것이란 전망이 고조됐다.

그런데 물가상승률이 문제다. 다른 지표로만 보면 통화부양책이 축소돼도 이상할 게 없지만, 정작 ECB의 정책 목표인 물가상승률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ECB는 통화부양책인 QE 축소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물가상승률이 오르지 않은 상태에서 부양책 축소를 단행하면 정당성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비상사태에서 내린 처방전 격인 통화부양책을 경제가 개선됐는데 그대로 유지할 수도 없다.



지난 9월 29일(현지시간) 발표된 9월 유로존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예상을 하회하면서 ECB는 더 난처해졌다. 9월 유로존 CPI 상승률은 8월과 같은 1.5%를 기록하며 시장 예상치 1.6%를 밑돌았다. 식품과 에너지 등의 가격을 제외한 근원 CPI 상승률은 1.1%로 전월 1.2%보다 오히려 약화됐다. ECB의 정책목표 2%에 더 멀어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ECB는 곧 매달 600억 유로의 유로존 채권을 매입하는 QE 축소 계획을 밝힐 예정이다. 오는 26일 통화정책회의에서 구체적인 일정이 나올 것이란 게 시장의 예상이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QE 축소 계획 공표를 ‘가을’로 밝혔기 때문이다. 물가상승률이 목표에 달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QE 축소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ING는 최근 보고서에서 “10월 통화정책회의는 ECB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균형 잡기를 하게 되는 회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ECB는 한편으로 테이퍼링(QE 축소)을 공표해야 하면서 동시에 시장이 이 공표를 과도하게 매파(긴축)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걸 피해야 한다며 ”시장이 공표를 과도하게 해석하면 금융 조건이 너무 조급하게 경색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블룸버그도 “ECB가 커뮤니케이션 난관에 봉착했다”고 지적했다. QE를 내년부터 줄여나가려는데 물가상승률이 오르지 않아 자산매입을 줄이려는 정당성이 약화 되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1분기 에너지와 식품 가격이 높았기 때문에 내년 1분기엔 기저효과로 물가상승률이 더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심지어 ECB 내부에서도 우려가 있다. 페터 프라트 ECB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프랑스 경제지 레제코와 인터뷰에서 “물가상승률이 ECB의 목표까지 회복되기 위해서는 ECB의 통화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미국 근원 PCE 전년동월대비 상승률 추이/자료=미 상무부, 마켓워치미국 근원 PCE 전년동월대비 상승률 추이/자료=미 상무부, 마켓워치
◇낯선 물가상승률 하락…'미스터리'는 일시적?


오르지 않는 물가상승률로 난감하기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마찬가지다. 29일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8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상승률이 예상과 달리 떨어지면서다. 8월 근원 PCE 지수는 전년동월대비 1.3% 오르며 7월 1.4%보다 하락, 2015년 11월 이후 가장 둔화된 모습을 보였다.

물가 지표의 일종인 PCE는 FRB가 정책결정시 가장 비중을 두는 지표라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스콧 앤더슨 뱅크오브웨스트 이코노미스트는 “PCE 상승률 둔화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내년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늦추는 데 더 정당성을 준다”고 분석했다.

올 초까지 가팔라지던 물가상승률이 올해 들어 떨어진 원인은 누구도 명확히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 PCE 지수 상승률은 지난해 내내 올라 올해 초엔 5년 고점인 1.9%까지 상승, FRB의 목표치 2% 근처까지 도달했다. 그런데 올해 들어 예상과 다르게 갑자기 하락했다.

재닛 옐련 FRB 의장도 최근 이런 물가상승률 하락세를 ‘미스터리’라고 불렀다. 대신 옐런은 이 같은 물가상승률 하락이 ‘일시적’인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최근엔 휴대폰이나 약품 등 핵심 소비재 가격의 일시적 가격 하락에 의한 것이란 주장이다.

그리고 곧 물가상승률이 반등할 거로 전망했다. 물가상승률이 반등할 것이란 전망의 근거 중 하나는 임금 인상이다. 미국 실업률은 최근 16년 내 최저인 4.3%까지 떨어졌다. 노동시장에서 숙련 노동자들이 부족해지고 있다. 노동시장 수급에 의해 임금이 오르면서 이 움직임이 전체 물가상승률로 확대하리라는 기대다. 그러나 문제는 임금 역시 여전히 빠른 속도로 오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물가상승률이 하락하자 FRB 내에서도 기준금리 인상에 대한 의구심이 높아졌다. 찰스 에반스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물가상승률이 반등하는 명백한 신호가 보일 때까지 FRB가 현 수준의 기준금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화강세 불리한데…복잡해진 환율 방정식

세계 중앙은행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통화정책 전환에 나서면서 자국 통화가치를 둘러싼 셈법도 복잡해졌다.

대표적으로 ECB는 유로화 강세로 골치다. 유로화 가치는 올해 미 달러 대비 12% 상승했다. 무엇보다 자국 통화 가치가 오르면 수입물가가 떨어지면서 가뜩이나 낮은 물가상승률을 더 떨어트리는 요인이 된다.

유로존의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지난해 중반 이후 급격하게 오르다가 최근 몇 달 간 상승세가 잠잠해졌다. 이 역시 유로화 상승 시기와 맞물린다. 프랑소와 빌로이 데 갈라우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는 지난주 “물가상승률이 목표치로 돌아오는 게 매우 느리다”며 “강력한 내수의 효과를 유로화 절상이 상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크리스토프 베일 코메르츠방크 이코노미스트는 유로화 가치 상승이 ECB 정책에 결정적인 변수가 될 거로 전망했다. 그는 “ECB가 원하는 지속적인 물가상승률 상승이 유로화 절상으로 인해 또 다른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9월 1.1%를 기록한 유로존 근원 CPI 상승률이 유로화 상승이 이어질 경우 1% 밑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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