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 누가 나 좀 어두운 상자에서 꺼내주지?

머니투데이 김정수 시인 2017.09.30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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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최인숙 시인 ‘구름이 지나가는 오후의 상상’

[시인의 집] 누가 나 좀 어두운 상자에서 꺼내주지?


2012년 경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최인숙(1966~ )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구름이 지나가는 오후의 상상’은 힘겨운 일상에 발목 잡혀 어디로도 탈출하지 못하는 답답하고도 불안한 자아를 발칙한 상상력으로 표현하고 있다. “공처럼 튕겨 나가”(이하 ‘시인의 말’)고 싶지만, 구름이 되어 자유롭게 흘러 다니고 싶지만 결국 “공들이 튀어나간 연못을 바라보며” 멈춰서 있다. 어두운 상자(암실)에서 벗어나려 무진 애를 쓰고 있다.

표제시 ‘팝콘’은 서시(序詩)라 할 만큼 이번 시집의 특징을 한눈에 보여준다. 폭립종 옥수수가 팝콘이 되어가는 과정을 꽃에 비유한 이 시는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면서도 불안해하는 자아를 뛰어난 솜씨로 다루고 있다. 애초에 화자는 “단단하고 냉정한 성격을 가졌”지만 팝콘을 만드는 기계, 어쩌면 결혼과 같은 새로운 환경에 처하는 순간 “내가 어디로 튈지 몰라 불안하”기만 하다. 내가 스스로 변하는 능동이 아니라 기계에 의해 인위적으로 변화를 꾀하는 수동인지라 불안은 더욱 가중된다. 초조하고 불안한 화자가, 아니 불안에 의해 나를 대신할 수 있는 ‘그림자’를 만드는 것. 그림자는 내 분신이지만 나에게 직접 데미지를 주지 않는 존재이므로 화자는 “몸 뒤척이며 반전 준비”를 한다.



하지만 불안은 내면 깊숙한 곳에 내재되어 있는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밀봉의 세계”(‘괄호의 감정’)이면서 타의에 의해 생겨난 것이므로 내 의지대로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다. 지상에서도 무척 불안한데, 더군다나 “허공에 높이 올라” 흔들리고 있으니 불안은 극에 달한다. 이쯤 되면 자포자기의 심정이다. “비명을 지르며 탈피의 순간” 폭립종 옥수수는 드디어 팝콘으로 변한다. 고통스러운 변신의 순간이 지나자 그림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남은 것은 사각의 팝콘기계에서 둥근 종이상자로 옮겨진 팝콘, 즉 “뿌리 자른 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내가 뿌리를 자르고, 내가 “밋밋한 입술”에 “뭉텅 뛰어들어 안긴다”는 것이다. 타의가 아닌 자의로 순간의 불안을 극복하고, 스스로 변신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좁은 공간에 갇혀 있다가 더 좁은 공간에 갇혔지만 상황을 즐기고 있다. 하지만 뿌리가 없는 꽃이므로 긍정의 세계는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나는 부채가 사라지기를 기다린다, 암실 안에서
납작하게 웃으며 기다린다
이봐, 부채
이 웃음이 사라지기 전에
이젠 나 좀 꺼내주지?
- ‘부채 또는 부채’ 부분

다 잊어버릴 거예요
다른 사람의 어깨에 매달려 있던 난 뾰로통해지고
돌아본 내 몸은 침대 속에서 암전
잠든 몸을 보고 나는 조금 편해져서 잠든 내가 깰까 봐 조용히
입술을 내밀고 당신과 이별하는 중이다
- ‘남아도는 머리’ 부분

상자를 닫는다
나를 안에 남겨두고
상자 속에서 나는 다시 상자를 만든다
쌓여가는 상자
벽이 흔들린다
- ‘나의 다른 상자들’ 부분




달콤한 “나의 관능”은 “다른 입술로 옮겨”(이하 ‘따지고 보면 그것은 립스틱 때문이야’)간 “너의 취향” 때문에 산산이 부서지고 만다. 화자가 불안하고 불안해하던 정체는 “처음부터 칼을 품고 있었던”(‘이슬이 이슬을 만날 때’) “이중성격의 당신”(‘경포비치파라솔’)과 “나를 괴롭히는 부채”(‘부채 또는 부채’)였던 것. 이에 화자는 상자 속으로 도피하거나 “제발 나를 좀 놓아 달라”(‘이상한 나라의 풍선’) 하소연한다.

“하얗게 부서질 때까지” 관능을 자랑하던 입술은 “빨강 위에 빨강을 덧바르”다가 결국 “당신과 이별”을 선택하는 상징물이 된다. “퉁퉁 부은 입술 앞에서/ 주먹은 어디까지 주먹일 수 있나”(‘만두’), 즉 일방적인 폭력 앞에 “좀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떠”(‘서로를 떠도는 중이다’)돌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른다.

“암전 안에서/ 납작하게” 있거나 “침대 속에서 암전” 상태로 견디고 있는 우울하고도 불안한 화자가 안식을 취할 수 있는 데는 한 곳밖에 없다, “누가 저 산 너머에서 스카프를 흔들”(‘무지개’)며 부른다. 어머니! “그래 그래 여기야 여기”(‘노루귀가 피는 곳’). “보는 순간 심장부터 놀라 돌아서곤” 하는 침(당신)이 아니라 “아픈 곳을 알아서 나긋나긋 더듬”어주는 “어머니의 손”. 신기하게도 신통하게도 세상이 환해진다.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어머니의, 그리움의 힘이다.


그래 그래 여기야 여기
신기해하고 신통해하는 것은 뜸이다
안으로 스미는 연기의 수백 개 얼굴이
아픈 곳을 알아서 나긋나긋 더듬는다
그러고 보면 뜸은 어머니의 손을 숨기고 있다

뜸과 이웃인 침을 권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침의 얼굴과 대적한 적 많아
보는 순간 심장부터 놀라 돌아서곤 한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뜸이 다 사그라지기를 기다리다 보면
어머니도 부엌에서 또 뜸을 뜨고 계셨다
아침저녁 굴뚝으로 하늘 한켠을

할머니 무덤 여기저기에
노루귀가 피었다
겨울과 봄 사이
가려워 진물 흐르는 대지에
아니 너와 나의 그곳에
누가 아련히 뜸을 뜨고 계시다

어느 세상의 기혈이 뚫렸나 하루도 환하다
- ‘노루귀가 피는 곳’ 전문

◇구름이 지나가는 오후의 상상=최인숙 지음. 시산맥 펴냄. 120쪽/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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