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용호 북한 외무상. /AFPBBNews=뉴스1
백악관은 “미국은 북한에 전쟁을 선포하지 않았다”며 “터무니없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조차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전면에 나서 연일 감정 섞인 말 폭탄을 주고받으면서 긴장이 고조돼 자칫 의도치 않은 충돌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리 외무상은 이날 4박5일간의 유엔총회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기에 앞서 숙소인 밀레니엄힐튼 유엔플라자호텔에서 성명을 통해 “유엔헌장은 개별적 성원국들의 자위권을 인정하고 있다”며 “미국이 선전포고한 이상 미국 전략폭격기가 설사 우리 영공계선을 채 넘어서지 않는다고 해도 임의의 시각에 쏘아 떨굴 권리를 포함해서 모든 자위적 대응권리를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리 외무상은 특히 “미국의 현직 대통령이 한 말이기 때문에 이것은 명백한 선전포고로 된다”며 “지금 유엔총회에 참가하는 모든 성원국 대표단들을 포함해 전 세계는 이번에 미국이 먼저 우리에게 선전포고를 했다는 것을 똑똑히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3일 트위터를 통해 “방금 북한 외무상의 유엔 연설을 들었다. 만일 그가 ‘리틀 로켓맨’의 생각을 되풀이한 것이라면 그들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한 발언이 사실상 대북 선전 포고라는 주장이다. 북한이 자위적 차원에서 군사적 대응에 나서 미국의 전략폭격기를 격추하더라도 그 책임은 미국에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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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외무상의 이 같은 언급은 지난 23일 괌 앤더슨 기지에서 발진한 미국의 전략폭격기 B-1B랜서가 F-15 전투기의 호위를 받으며 북한 동해의 국제공역을 비행하는 무력시위를 펼친데 대한 강한 반발로 풀이된다.
미국의 전략폭격기 B-1B 랜서. /AFPBBNews=뉴스1
미국 국무부와 백악관은 리 외무상의 발언에 대해 “터무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저스틴 히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리 외무상의 성명 발표 이후 “미국은 북한에 전쟁을 선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적인 비핵화를 계속 추구하고 있다”며 “어떤 나라도 국제 공역이나 해역에서 다른 나라의 항공기나 선박에 발사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백악관도 리 외무상의 발언을 일축했다. 사라 허커비 샌더스는 “우리는 북한에 전쟁을 선포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잇따른 말폭탄 공방에 커지는 우려의 목소리
미국의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과 미국의 최고지도자들까지 나서 연일 말폭탄 공방을 벌이면서 자칫 북미 간에 우발적인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미국 언론들은 보도했다.
이날 뉴욕타임스는 “미 전략폭격기 격추라는 리 외무상의 위협을 실행할 북한의 능력은 구식의 공군력, 훈련부족, 연료 부족 등으로 인해 제한적”이라면서도 “이번 위협은 북미가 의도치 않은 충돌로 빠져들 수 있다고 다수가 우려하는 또 하나의 주요한 긴장 고조”라고 지적했다.
북한은 실제로 지난 1969년 닉슨행정부시절 북한 해상을 비행하던 미 정찰기를 격추, 31명의 탑승자 전원이 사망했다.
미 정치분석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리 외무상의 말을 단순한 말폭탄 이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구재회 존스홉킨스대학 국제대학원 한미연구소장은 “내가 두려워했던 상황”이라며 “이 같은 길을 가다 보면 긴장 고조가 우발적인 충돌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매우 우발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