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영화 '전망 좋은 집' 포스터
그래서 곽현화와 비슷한 사례들을 찾아봤더니, 세상에! 그 역사가 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더라고. 게다가 세계 3대 영화제(=칸, 베니스, 베를린)에서 수상한 명감독이 가해자인 경우도 많았어. 도대체 어쩌다가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한 번 들여다보자고!
◇곽현화만 까맣게 몰랐던 감독판(#노출장면 삽입)
2014년 초, 곽현화는 지인으로부터 '가슴 노출신이 들어간 감독판이 IPTV에 유통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돼.(#기절초풍) 해당 장면은 곽현화의 요청으로 극장판에서 편집됐고, 이후에도 곽현화의 동의 없이는 쓰지 않기로 합의됐었지.(#구두합의)
놀란 곽현화는 감독에게 전화해 사실 관계를 물었어. 감독은 '미안하다', '만나서 얘기하자'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어.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아냐고? 곽현화가 기자회견에서 당시의 통화를 녹음한 파일을 공개했거든.(#곽현화 녹취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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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을 연 곽현화
회견장에 있던 한 기자가 곽현화에게 이렇게 물었어. "노출신을 찍기 싫다고 말했더라면 안 찍을 수 있지 않았나?"
자 생각해보자. 많은 스태프들이 촬영 시작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신인인 곽현화가 감독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었을까? "정 그렇게 부담스러우면 나중에 편집해주겠다"는 말까지 하는데 말이야. 곽현화는 "까탈스러운 배우로 밉보일까 두려워서 촬영을 동의했다"고 설명했어.
◇ 전라 노출 혹은 손해배상, 여중생 이상아에게 가혹했던 양자택일
곽현화 사건이 보도되자 배우 이상아가 과거 방송에서 한 발언이 덩달아 주목을 받았어. 이상아 역시 감독의 강요로 노출신을 찍었다고 고백했기 때문이야. 그것도 14살에 말이지!
80년대 국민 여동생이었던 이상아/사진=영화 '길소뜸' 스틸컷
사전에 해당 장면이 들어간 대본을 봤을 텐데 뭐가 문제냐고? 이상아의 증언에 따르면, 임권택 감독이 약속을 어겼다는 거야. 전신 노출을 비롯해 성관계를 암시하는 지문들에 놀란 이상아는 출연을 고사했어.
그러자 임권택 감독이 "내가 일찍 결혼했으면 상아만 한 딸이 있는데 그런 걸 시키겠냐, 믿고 따라와라"며 설득하는 바람에 영화 '길소뜸'(#1986년 작)을 찍게 된 거래.
그런데 웬걸. 촬영 마지막 날 이상아는 "오늘 노출신을 찍는다"라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게 돼. 이에 큰 충격을 받은 이상아가 촬영장을 떠나려 하자 임권택 감독은 이렇게 말했대. "너 돈 많아? (가고 싶으면) 이때까지 찍은 필름 값 다 물고 가!"
이상아를 울린 영화 '길소뜸'/사진=영화 '길소뜸' 포스터
철컹철컹! 요즘 같았으면 이상아의 사례는 처벌감이야. 청소년 성보호법(=아청법)은 청소년의 성행위 연기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지.
[청소년 성보호법]
제2조
4호
4.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란 아동·청소년, 아동·청소년의 성(性)을 사는 행위를 알선한 자 또는 아동·청소년을 실질적으로 보호·감독하는 자 등에게 금품이나 그 밖의 재산상 이익, 직무·편의제공 등 대가를 제공하거나 약속하고 다음 각 목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거나 아동·청소년으로 하여금 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가. 성교 행위
나. 구강·항문 등 신체의 일부나 도구를 이용한 유사 성교 행위
다. 신체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접촉·노출하는 행위로서 일반인의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행위
라. 자위 행위
5호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이란 아동·청소년 또는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사람이나 표현물이 등장하여 제4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거나 그 밖의 성적 행위를 하는 내용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필름·비디오물·게임물 또는 컴퓨터나 그 밖의 통신매체를 통한 화상·영상 등의 형태로 된 것을 말한다.
이산가족의 아픔을 그린 '길소뜸'은 백상예술대상, 대종상영화제 등 국내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었어. 베를린 영화제, 시카고 영화제에 출품해 해외의 인정도 받았지. 하지만 고작 14살밖에 안 된 어린 여배우에게 노출을 강요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어.
◇ 여배우의 수치심을 영화의 도구로 이용한 베르톨루치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사진=오스카 시상식 유튜브 공식 페이지
캡틴 아메리카로 유명한 크리스 에반스(#미국대장)는 자신의 트위터에 "베르톨루치의 영화를 다시는 못 볼 것 같다. 역겨움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는 글까지 남겼어. 베르톨루치 감독이 리얼리즘을 추구한다는 명목하에 여배우를 속였기 때문이야.
우리에게 친숙한 명작 '마지막 황제'를 연출한 베르톨루치 감독은 아카데미, 골든글로브, 베니스 영화제 등 각종 시상식에서 상을 휩쓴 천재 감독이야. 그 유명한 말론 브란도(#영화 '대부'의 그 대부님)가 출연한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2년 작)로도 아카데미 감독상 부문에 이름을 올렸지.
/사진=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포스터
영화 촬영 전, 감독과 배우들은 대본에 따른 리허설을 해. 특히 베드신을 비롯한 노출 장면을 촬영할 때는 혹시 모를 문제 상황을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하지. 감정 소모가 큰 강간 장면을 찍어야 하는 마리아 역시 그런 대우를 받았어야 했어. 하지만 베르톨루치 감독은 말론 브란도에게 대본에 없는 버터를 쓰게 했어.
마리아 슈나이더/사진=영화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스틸컷
"마리아가 수치심을 연기하기보다는 느끼길 바랐다"는 베르톨루치 감독의 해명은 분노한 여론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어.
◇감정이입 하려면 맞아야 한다? 폭행 혐의로 법정에 가게 된 김기덕 감독
지난 8월, 여배우 A씨는 김기덕 감독을 고소했어. 혐의는 강요, 폭행, 모욕, 명예훼손이야. 2013년 영화 '뫼비우스'의 엄마 역으로 캐스팅된 A씨는 촬영장에서 김기덕 감독으로부터 수차례 뺨을 맞았어. 김 감독은 배우의 감정이입을 돕기 위한 연기지도를 이유로 들었어.
여배우 폭행 혐의로 고소 당한 김기덕 감독
이후 4년간 정신적 고통에 시달린 A씨는 결국 지난 1월 영화인신문고에 피해 사실을 알렸어. 그리고 지난 8월 5일 '김기덕 사건' 해결을 위해 여성계, 법조계, 영화계 등 총 136개의 단체가 모여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었어.
김기덕 감독이 "4년 전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스태프들 중 당시 상황을 정확히 증언하는 사람이 나오면 책임을 지겠다"는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야.
A씨는 이달 검찰에 출석해 고소인 조사를 마쳤어. 검찰은 조만간 '뫼비우스'의 스태프들과 김기덕 감독을 불러 조사할 예정이래.
◇ 표준 계약서 도입이 시급합니다.
앞서 언급한 사례들의 공통점은 피해를 입은 여배우들이 힘없는 신인 혹은 무명(=乙)이라는 거야. 촬영장을 지휘하는 감독의(=甲) 뜻을 거스르기 어려운 처지지. 게다가 노출 연기 강요를 감독의 연출 열정으로 해석하는 영화계의 관행 탓에 피해를 주장하기도 힘들다고 해.
설사 고소를 했더라도 좋은 결과를 얻기는 힘들대. 곽현화는 이수성 감독을 성폭력처벌법(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혐의로 고소했어. 감독이 잘못을 시인한 내용이 담긴 녹취록은 재판에 증거로 제출됐지. 하지만 1심, 2심 모두 무죄 판결이 났어. "계약서 상에 노출신의 배포를 제한하는 내용이 없다"는 게 이유였어.
결국 '말'보다 '문서'가 법정에서 중요한 거야. 곽현화를 담당한 이은의 변호사는 "촬영 중 생긴 변동 사항을 문서로 남겨야 한다"고 말했어. 만약 '곽현화의 동의 없이는 가슴 노출신을 배포하지 않는다'를 구두합의가 아닌 문서로 남겼더라면 재판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몰라.
'김기덕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김기덕 사건' 공동위는 영화계 인권침해, 처우 개선을 위한 정기적 실태조사 및 예산 마련을 정부에 요구했어. 최근 영화진흥위원회도 '영화인의 성평등 환경 조성을 위한 성폭력 실태조사'에 나선 만큼, 전과 다른 변화를 기대해보자고.
<영화감독 김기덕 미투 사건 관련 정정보도문>
해당 정정보도는 영화 '뫼비우스'에서 하차한 배우 A씨 측 요구에 따른 것입니다.
본지는 2018년 3월 7일 '"김기덕·조재현이 성폭행" vs 김기덕 "동의하에"·조재현 "왜곡"'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한 것을 비롯하여 약 28회에 걸쳐 "영화 '뫼비우스'에 출연했으나 중도에 하차한 여배우가 김기덕 감독으로부터 베드신 촬영을 강요당했다는 내용으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했다"고 전하고, '위 여배우가 김기덕으로부터 강간 피해를 입었다'는 취지로 보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확인 결과, '뫼비우스' 영화에 출연하였다가 중도에 하차한 여배우는 '김기덕이 시나리오와 관계없이 배우 조재현의 신체 일부를 잡도록 강요하고 뺨을 3회 때렸다는 이유 등'의 이유로 김기덕을 형사 고소하였을 뿐, 베드신 촬영을 강요하였다는 이유로 고소한 사실이 없고, 위 여배우는 김기덕으로부터 강간 피해를 입은 사실이 없으며 김기덕으로부터 강간 피해를 입었다고 증언한 피해자는 제3자이므로 이를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