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있는 무주택자에 절호의 기회" 강남권 몰리는 중장년층

머니투데이 신희은 기자 2017.09.18 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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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반포센트럴자이 청약을 앞두고 서울 강남구에 마련된 견본주택 방문을 위해 줄을 선 수요자들의 모습. @뉴스1신반포센트럴자이 청약을 앞두고 서울 강남구에 마련된 견본주택 방문을 위해 줄을 선 수요자들의 모습. @뉴스1


#부부가 변호사로 맞벌이를 하는 40대 A씨 부부는 결혼 15년 만에 처음으로 청약을 넣기 시작했다. 서울 강남의 목 좋은 곳에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그동안 자녀를 맡아 길러주시는 부모님댁 근처에서 줄곧 전세로 살았지만 정부의 ‘8·2 부동산대책’으로 A씨 부부는 지금이 내집 마련의 적기라는 판단을 내렸다.

전세 보증금에 모아 둔 현금을 합하면 대출을 크게 받지 않아도 돼 원리금 상환에 대한 부담도 덜하다. A씨 부부는 "자녀 양육 문제도 있고 내 집 마련을 계속 미뤄왔는데 8·2 대책 이후로 오히려 자신에게는 기회가 넓어진 것 같아 청약을 적극적으로 해볼 생각"이라며 "주변에 비슷한 사정의 지인들도 부쩍 청약에 관심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구매력과 높은 청약가점으로 무장한 40~50대 중장년층이 서울 강남권 청약시장의 핵심 수요층으로 부상했다. 8·2대책 이후 청약요건과 대출규제가 대폭 강화된 결과다. 치솟는 강남지역의 청약가점을 맞추려면 전세 혹은 반전세(보증부월세)로 거주한 무주택자면서 부양가족이 많고 청약통장 가입기간이 길어야 한다. 분양가가 상대적으로 낮아진 강남 청약시장에서 청년층이 실종되고 중장년층이 부상한 배경이다.
 
17일 분양업계에 따르면 최근 강남권 신규 분양단지는 높은 청약통장 가점을 확보한 가운데 무리한 대출 없이도 계약금, 중도금 등 마련이 가능한 40~50대 중장년층 실수요자가 주를 이룬다.
 
8·2대책 이전 단기차익을 노린 투자자들이나 집값의 상당부분을 대출로 충당해야 하는 20~30대 젊은층이 청약에 적극 뛰어든 것과 달라진 모습이다.
 
대출규제 강화로 강남권 진입장벽이 높아진 상황에서 젊은층 투자수요가 떠난 자리를 부동산에 무관심하거나 내집 마련을 미뤄온 중장년층이 다시 채운 것이다.
 
특히 최근 분양단지들이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분양보증 가이드라인에 맞춰 분양가를 시세보다 최대 2억원 낮은 수준으로 하향조정하면서 중장년층 사이에서도 치열한 청약경쟁이 벌어지는 모양새다.
 
분양업계 관계자는 “현금을 보유한 청약가점 높은 40대 무주택자들이 생각보다 많고 이들 중 상당수가 이번에 실거주 목적으로 내집 마련에 적극 뛰어들었다”며 “이들에게는 이번 부동산 규제책이 어찌 보면 절호의 기회인 셈”이라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도 “시세보다 수억 원 낮은 가격에 분양가가 책정돼 공급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이유로 내집 마련을 미룬 구매력을 갖춘 무주택자들이 청약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시세차익 기대감이 높아 ‘로또청약’으로 불린 서울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센트럴자이’도 예외가 아니었다. 가점제 청약결과 중소형 평형 아파트의 평균가점은 74점에 달했다. 이 정도 가점이면 중장년층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74점이 되려면 만 45세 가장이 15년간 청약통장 가입을 유지한 채 무주택자로 살면서 부양가족 4명을 거느려야 한다. 청약가점은 총 84점이 만점이다. △부양가족수(최고 35점) △무주택기간(최고 32점) △청약통장 가입기간(최고 17점) 순으로 비중이 높다. 물리적으로 중장년층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이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신반포센트럴자이’ 청약에서 탈락한 30대 실수요자 B씨는 “중소형 평형에서 5~6명의 가족이 실거주하는 건 맞지 않는데 부양가족 가점은 평형별로 조정되는 게 합리적”이라며 “실거주 없이 주민등록으로만 부양가족을 등재해 당첨되는 경우도 많아 이래저래 중장년층에게 유리한 구조”라고 꼬집었다.
 
강남의 한 부동산중개업자도 “부양가족에 무주택자인 부모를 넣어 청약가점을 높여 당첨률을 더 높이는 중장년층이 실제로 많다”며 “자녀 수가 적은 30대 부부들의 경우 대출도 어렵고 이래저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시장에선 제도보완이 이뤄지지 않는 한 올 하반기 청약은 현금을 보유하고 청약가점이 높은 중장년층의 장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분양업계 관계자는 “현금을 갖췄더라도 부양가족이 적고 청약가점이 낮은 이들에겐 강남 ‘로또청약’은 그림의 떡”이라며 “앞으로 기회가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보이지만 강남단지는 일반에 풀리는 가구수가 많지 않아 치열한 경쟁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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