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를 즐기던 사람들이 전망대에서 낙조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전남 영광군 백수읍 길용리에서 백암리 석구미 마을까지 16.8km에 달하는 길은 서해안 드라이브 코스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그곳이 바로 ‘백수해안도로’다. 어지간만 하면 지자체마다 무슨 무슨 8경이니, 10경이니, 심지어 13경이니 정해놓지만 나는 그런 이름을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 막상 찾아가 보면 별 볼거리도 없는데 억지로 끼워 넣은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광 8경 중 1경인 백수해안도로는 이름값을 제대로 한다. ‘해당화꽃 삼십리 길’이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는 이 도로는 국토해양부에서 선정한 대한민국 ‘아름다운 길 100선’에도 선정되었다.
며칠 전에 이 길을 다녀왔다. 영광 불갑사에 들렀다 오는 길이었다. 이 길을 제대로 즐기려면 저녁 무렵에 가는 것이 좋다. 길도 길이지만 낙조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해가 기울기 시작할 무렵이면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가 펼쳐진다. 도로는 2차선이지만 곳곳에 작은 주차장과 전망대를 마련해놓아서 편안하게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해가 지려면 한참 남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사람이 바다의 정취에 푹 빠져 있었다. 나도 그들 틈에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갯벌에서 조개를 캐고 나르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작아 보인다. /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그들은 물이 빠진 갯벌에서 조개를 캐고 있었다. 밀물이 들어오기 전에 얼른 작업을 마치려고 그러는지, 멀리 있어도 분주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아낙네들은 조개를 캐고 남정네들은 캔 조개를 담아 뭍으로 끌고 나오는 장면은 아!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경건하고 아름다웠다. 땀 흘리는 노동에 아름답다는 말을 붙이기에는 조금 미안했지만 ‘경건한 아름다움’이란 문구를 대체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일하며 소통을 하느라고 그러는지, 아니면 노동요라도 부르는지 높고 낮은 목소리가 갯벌을 건너왔다. 물론 멀리 있으니 그저 아득한 소리일 뿐이었다. 드물게 아이들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아이들까지 왜 데리고 나갔담? 하지만 금세 고개가 끄덕여졌다. 바쁜 시간에는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을 테니까. 부모님의 일손을 도우려고 따라 나간 것 같았다. 그래서 갯벌이 더욱 활기차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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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광경에 푹 빠져있는 사이 해가 빠르게 기울기 시작했다. 그에 맞춰 바닷물이 서서히 갯벌 쪽으로 진군해 왔다. 조개를 캐던 사람들도 퇴각하는 병사들처럼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그 모습조차 경건하고 아름다웠다. 저들이 검은 개흙을 뒤져 캐내는 것은 조개뿐 아니라 내일을 살아갈 희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희망은 그들에게서 멈추지 않고 내게도 전해져왔다. 갯벌에 밀물이 들듯 가슴에 행복이 고이기 시작했다. 여행이 전해주는 뜻밖의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