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는 지난 4일 여성환경연대가 제출한 시험보고서와 유해물질이 검출된 생리대들 이름을 공개했다. 지난달 30일 실명 대신 알파벳으로 공개한 지 닷새만의 일이다.
식약처의 딜레마가 시작된 지점이다. 이때까지 김만구 강원대 교수의 시험방식을 신뢰할 수 없어 명단 공개가 적절하지 않다는 식약처 논리는 타당했다. 그러나 업체 이름이 공개되고 '믿을 생리대 하나도 없다'는 공포가 퍼지면서 식약처는 종전 논리를 고수하기 부담스런 상황에 처했다. 식약처가 일부 업체를 보호하려다가 언론 보도 때문에 난처하게 된 것 같은 모양새가 만들어진 것이다.
단순히 보면 시험방식의 적정성 책임은 강원대에 있고 명단 작성의 책임은 여성환경연대로 제한됐다. 식약처는 이 두 가지 책임으로부터 거리를 뒀다.
식약처에 따르면 식약처는 여성환경연대로부터 2개 버전의 생리대 명단을 받았다. 한 개는 업체들과 제품 실명이 적혀 있고 또 한 개는 알파벳으로 처리됐다. 실명은 몇 달 전 비공식적으로, 알파벳은 최근 공식적으로 전달됐다. 정부가 대외에 내밀 수 있는 건 공식적으로 전달된 서류일 수밖에 없다. 지난달 말 알파벳 버전을 공개할 때 '여성환경연대로부터 받은 것 그대로'라고 표현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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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이전투구가 격해지자 식약처는 캐비닛 속 비공개 서류를 꺼냈다. 이와 동시에 식약처는 또 다른 논란거리를 만들고, 떠안게 됐다.
시험방식을 인정할 수 없다면 무슨 논란이 있어도 업체와 제품명을 공개하지 말았어야 했다. 원인(시험)을 신뢰할 수 없다면 결과(명단) 역시 믿을 게 못되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위기를 피하고자 예견된 더 큰 위기를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기관리 전문 컨설팅 업체 스트레티지샐러드 정용민 대표는 "법률과 명분, 논리가 지배하는 공무원 의사 결정 구조에 균열이 발생한 것 같다"며 "정부이기 때문에 중심을 잡고 공정성을 기해야 하는데 이것을 놓치는 큰 실수를 범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