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선고 생중계' 이럴려고 규칙 바꿨나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2017.09.01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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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피고인 인권·무죄추정 원칙 고려 안 하는 재판이 어디있나

이럴 거면 뭐하러 규칙까지 바꿨나 싶다. 1·2심 재판 선고 생중계 이야기다. 대법원은 지난달 규칙 변경을 홍보하면서 “국민의 알 권리가 확대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국민이 가장 ‘알고싶어’ 했던 이재용 부회장(49)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66)의 선고공판은 생중계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생중계로 얻을 공익에 비해 피고인들이 입는 손해가 커 중계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쉽게 말해 형사재판에 선 피고인의 모습을 영상으로 남기는 건 너무 가혹하다는 뜻이다.



이런 기준이라면 어떤 재판을 생중계할 수 있을까. 피고인의 인권, 방어권 보장과 무죄추정의 원칙을 등한시하는 판사가 어디있겠는가. 그럼에도 대법원이 생중계를 허용한 것은 중요 사건 재판일수록 더 많은 국민에게 공개돼야 공정성과 신뢰를 담보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대법원도 인권 문제를 의식해 카메라가 재판부만 촬영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두 사건의 재판부는 이런 차선책도 배제했다.

판사들은 “재판부의 부담이 컸을 것”이라고 한다. 한 판사는 “내 얼굴이 영상으로 남아 인터넷에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면 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판사는 “생중계 도중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어떡하냐”고 염려했다. 이런 걱정이 딱한 건 사실이지만, 국민 입장에선 생중계 여부를 가를 만큼 중요한 문제로 보이진 않는다.



이번 두 재판은 전직 대통령의 선출부터 파면까지 어떤 비리와 오해가 있었는지를 밝히는 과정이었다. 좌우할 것 없이 전 국민이 재판 결과에 주목했다.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갈등과 대립이 생길 게 뻔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많은 사람에게 재판을 통해 드러난 ‘실체적 진실’을 정확히 전달할 필요가 있었다. 이런 점에서 생중계로 얻을 공익이 크지 않다고 한 재판부의 결정도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최근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자 1041명 중 84%가 ‘공익이 큰 중대사건 재판은 중계해야 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재판 생중계를 허하라는 국민들의 요구는 더욱 커질 것이다. 법원이 더 신중한 결정을 내리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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