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피아 성당의 내부. 이슬람교의 상징들 한 가운데에 아기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상이 있다.
이스탄불에 가는 사람들이 꼭 들리는 명소 중 하나가 성소피아 성당이다. 사실 성소피아 성당은 ‘현존하는 최고의 비잔틴 건축물’로 널리 알려진 곳이라 건물만 보고와도 가치가 있다. 하지만 이왕 그 멀리까지 갔으니 좀 더 깊이 보고 오라고 권하고 싶다. 누가 그곳에 간다고 하면 미리 이야기 해주는 것들이 있다.
두 종교가 한 공간에 공존하게 된 데에는 배경이 있다. 성소피아 성당이 시련을 당한 것은 1453년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드 2세에 의해 함락 당하면서다. 무슬림의 성전(聖戰) 관습에 따르면 점령지에는 3일 간의 약탈이 허용된다고 한다. 당연히 성소피아 성당도 약탈 대상이 됐다. 하지만 성당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메흐메드 2세는 건물을 파괴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 뒤 성당에 미나레트를 세워 이슬람 사원으로 만들고 기독교 성화 위에는 회칠을 해서 가려버렸다. 그렇게 잠자던 성화들은 1931년 미국인 조사단에 의해 발견되면서 다시 빛을 보게 되었다.
성소피아 성당에서 내가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은, 바닥에 ‘HENRICUS DANDOLO’라고 새겨진 곳이다. 성당의 대리석 바닥을 깨고 만든 무덤으로, 엔리코 단돌로(Enrico Dandolo)라는 사람의 주검이 묻혀 있었다. 황제나 정교회 수장도 아닌 이의 무덤이 어떻게 이 위대한 건축물 안에 있었을까. 단돌로는 1204년 제4차 십자군을 이끌고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했던 사람이다.
엔리코 단돌로(Enrico Dandolo)의 무덤이었던 곳.
이 시각 인기 뉴스
단돌로는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다음해인 1205년 사망했다. 그때 나이가 97세였다. 죽을 때까지 권력을 쥐고 있던 그는 소망대로 성소피아 성당 내부에 묻혔다. 그걸로 끝이었을까? 그럴 리는 없다. 1261년 그리스인들이 콘스탄티노플을 탈환하면서 무덤이 파헤쳐지고 뼈는 개들에게 던져졌다.
그 빈 무덤 앞에 설 때마다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허무한지, 권력이 얼마나 무상한지 확인하고는 한다. 죽어서까지 영화를 누리려 했던 한 사람의 끝은 뼈 하나도 챙기지 못하는 비극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중 하나라는 성소피아 성당이 전해주는 교훈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