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0년 된 고목앞에서 나이 따지는 건 우습죠?"

머니투데이 신혜선 VIP뉴스부장 겸 국제경제부장 2017.09.02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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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선이 만난 사람들]<10>'나무박사'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그곳이 어디건 뿌리내리는 나무의 삶"

정조와 순조 시대 학자이자 시인 유득공의 둘째 아들인 수헌 유본예(1777~1842)가 규장각 검서관으로 20여 년 간 봉직하면서 쓴 수필집 ‘수헌집’에 담긴 ‘이문원의 늙은 노송나무’의 주인공. 노송은 향나무로 수령 700년으로 추정된다. 창덕궁보다 더 오래 살았고, 창덕궁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천연기념물 제194호).나무가지 일부를 떼어다 향을 피워 울퉁불퉁한 모양이 된 것으로 것으로 추정한다. /사진=신혜선기자, 갤럭시S6정조와 순조 시대 학자이자 시인 유득공의 둘째 아들인 수헌 유본예(1777~1842)가 규장각 검서관으로 20여 년 간 봉직하면서 쓴 수필집 ‘수헌집’에 담긴 ‘이문원의 늙은 노송나무’의 주인공. 노송은 향나무로 수령 700년으로 추정된다. 창덕궁보다 더 오래 살았고, 창덕궁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천연기념물 제194호).나무가지 일부를 떼어다 향을 피워 울퉁불퉁한 모양이 된 것으로 것으로 추정한다. /사진=신혜선기자, 갤럭시S6


이문원의 동쪽에는 늙은 노송나무가 있는데 적어도 백여 년은 된 나무이다. 그 몸통은 울퉁불퉁 옹이가 졌고 가지는 구불구불하여 멀찍이서 바라보면 가파른 산등성이나 성난 파도와도 같지만 바짝 다가가서 보면 둥그스럼한 큰 집채와도 같았다. 기둥으로 나무를 받쳤는데 그 기둥이 모두 열두 개였다. 나무 옆에 누각이 있는데 바로 내가 이불 들고 가서 숙직하는 장소이다. 좌우에 도서를 쌓아놓고 교정하느라 바쁘게 시간을 보내다가 때때로 그 곁을 산책한다. 쏴쏴 불어오는 긴 바람소리를 들으며 널찍이 드리운 서늘한 그늘 아래를 거닐면 몸은 대궐안 관아에 있어도 훌쩍 숲 속의 소나무와 바위 사이에 있는 기분이 든다.
하루는 내가 동료들을 돌아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나무는 정말 특이하군! 무릇 풀과 나무가 살아가려면 제각기 스스로를 보전하는 계책이 있게 마련이다. 풀명자나 배, 귤이나 유자, 그리고 단내(丹柰, 붉은 사과)나 석류 같은 종류의 나무들은 열매가 커도 가지가 그 무게를 충분히 지탱할 수 있다. 하지만 질경이나 두루미냉이, 남가새나 강아지풀 같은 종류는 살아가려면 땅바닥에 붙어있어야 한다. 그래서 말발굽이 짓밟고 수레가 밟고 지나가도 더 해를 끼치지 않는다.



지금 저 노송나무란 나무는 줄기가 길어 몸통보다 곱절로 뻗어서 사방에 드리워도 잘라낼 줄을 모른다. 기둥으로 받쳐주는 것이 없으면 부서지고 갈라지고 말 뿐이다. 조물주가 이 나무에게는 사람이 기교를 보태주게 하여 온전하도록 한 것이나 아닐까?”

아! 내가 암소의 뿔을 봤더니 뿔이 구부러져 안으로 향했는데 심한 것은 사람이 반드시 톱으로 잘라내야만 광대뼈를 뚫는 재앙을 모면하였다. 이제야 알겠구나! 노송나무는 가축에 비교하면 저 뿔을 잘라내야 온전해질 수 있는 암소와 같다. 가축이 인간에게 의지하여 살아나듯이 노송나무도 인간에 의지하여 살아난다. 나는 저 깊은 산중 인적 끊긴 골짜기에 이렇듯이 번성하게 자란 노송나무를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 수헌집 中 ‘이문원의 늙은 노송나무’/안대회 교수(성균관대) 제공




창덕궁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향나무(천연기념물 제194호)다. 수령 700년으로 추정한다. 창덕궁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사진=김창현 기자창덕궁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향나무(천연기념물 제194호)다. 수령 700년으로 추정한다. 창덕궁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사진=김창현 기자
정조와 순조 시대 학자이자 시인 유득공의 둘째 아들인 수헌 유본예(1777~1842)는 규장각 검서관으로 20여 년 간 봉직했다. 이 글은 당시 쓴 산문집 ‘수헌집’에 실렸다. 이문원은 창덕궁 규장각의 다른 이름이다.

이 노송은 창덕궁에 남아있을까. 수헌의 기록을 확인해 줄 현대 학자가 있다. 다만 이 학자는 궁에 근무하는 이도 아니고, 문인도 아니다. 임학을 전공한 이과 출신이다.

“나무 해부학 전공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나무 세포 보는 게 일이죠. 나이 들고 눈도 침침해지고, 그게 잘 안 보이니 옆길로 샌 거죠. 하하하.”


#'나무 해부학자'에서 '나무 문인'이 된 60년 인생

박상진 경북대학교 명예교수(78)는 그냥 ‘나무 박사’가 아니다. 우리 궁의 나무, 보호수와 천연기념물 그리고 문화재까지, ‘이야기를 담은 나무’에 대해서는 대부격이다.

박상진 명예교수(경북대)는 "나무 앞에서 사람 나이 얘기하는 건 무색하다"며 웃는다. 사람보다 오래 살았고 더 오래 살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인지 60년이다. /사진=김창현 기자박상진 명예교수(경북대)는 "나무 앞에서 사람 나이 얘기하는 건 무색하다"며 웃는다. 사람보다 오래 살았고 더 오래 살 나무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인지 60년이다. /사진=김창현 기자
지난 24일, 창덕궁 매표소에서 만난 박 교수 앞에서 그만 대놓고 탄식을 내뱉고 말았다. 나무 인생 50년. 노학자임을 알았지만, 백발에 그만 놀라고 만 것이다. “늙은이가 나타나 놀랬죠? 하하하.” 서울대 임대 입학을 시작으로 치면 오는 2019년으로 그의 나무 인생은 50년이 아닌 60년이다.

“남해 창선도에 간 적이 있어요. 왕후박나무(천연기념물 제299호, 수령 500년)를 만났죠.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이기고 상륙해서 그 나무 그늘에서 군사들을 쉬게 했다는 전설이 내려와 ‘이순신 장군 나무’로도 불리는데, 장엄함과 기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그 나무를 보고는 그만 반해버렸죠.” ‘옆길로 샌’ 계기를 물으니 돌아온 답이다. 그게 1997년인지 98년인지. 그 이후로 박 교수는 이야기가 있는 나무를 본격적으로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경남 함양의 ‘학사루 느티나무’(천연기념물 제407호, 500년), 전북 진안 평지리 ‘마령초등학교의 이팝나무군’(천연기념물 제214호)도 박 교수가 손에 꼽는 고목이다. 학사루 느티나무는 아들 목아를 홍역으로 잃은 군수 김종직이 마을을 떠나며 심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진안의 이팝나무군은 어린아이들의 시신을 묻은 곳으로 ‘아기사리’라고도 불린다. 일제 강점기 때, 그곳에 초등학교가 들어섰다. 마을 사람들은 죽은 아이들이 산 아이들을 보고 영혼을 위로받으라고 그리된 거로 믿는다. “모두 짠하죠? 오랜 나무에는 이렇게 이야기가 있어요.”

# 나무에는 켜켜이 이야기가 쌓인다
궁은 이야기가 있는 나무가 모여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그 나무들은 성난 임금의 모습도, 백성을 돌보는 관리들의 고민도, 제국주의에 무릎을 꿇어야 했던 굴욕적인 상황도 모두 지켜봤을 터다.

창덕궁은 서울에 있는 5대 궁 중 나무 연구를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나무 전문가라면 그냥 봐도 종류와 수령을 알 수 있지만, 19세기 초반(1828년) 그려진 ‘동궐도’(국보 제249호, 경복궁 동쪽 궁인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지도)와 비교하면 재미가 백배다. 지도에 묘사된 나무가 그 위치에 그대로 있다는 걸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동궐도. 대한민국 국보 제249호. 경복궁 동쪽에 있는 궁, 창덕궁과 창경궁의 전각과 궁궐 전경을 그린 조감도. 순조24년(1824)에서 30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왼쪽 하단 돈화문 입구의 회화나무부터 아직도 그림속 30그루의 나무가 창덕궁에 살아있다. /사진제공=박상진 교수<br>
동궐도. 대한민국 국보 제249호. 경복궁 동쪽에 있는 궁, 창덕궁과 창경궁의 전각과 궁궐 전경을 그린 조감도. 순조24년(1824)에서 30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왼쪽 하단 돈화문 입구의 회화나무부터 아직도 그림속 30그루의 나무가 창덕궁에 살아있다. /사진제공=박상진 교수
박 교수는 더운 여름과 한겨울을 빼고는 거의 매주 창덕궁을 찾는다. 인사배치 돼 근무하는 이들보다 창덕궁 나무의 변화를 더 많이 알고 있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100~200년 된 나무는 사람으로 치자면 어린아이죠.”

사람처럼 나이순으로 가장 어른인 나무가 어떤 건지 묻자 봉모당(규장각과 비슷한 왕실 도서관 기능 담당)을 향한다.

“향나무(천연기념물 제194호)예요. 750년쯤 됐죠. 창덕궁 짓기 전부터 뿌리를 내렸으니 나무의 역사가 궁의 역사보다 오래죠. 옛날에는 껍질과 잔가지를 가져다 향을 피웠는데. 옆에 선원전(보물 제817호, 조선시대 왕의 초상화를 봉안한 전각)도 이 향나무를 고려해 지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750년이라는 숫자가 와 닿지 않은 표정을 지어서인지 박 교수가 모른 척 한마디 던진다. “고목 앞에서는 사람 나이 따지는 게 웃기는 일이죠.”

이 향나무가 바로 앞에서 소개한, 수헌이 노래한 이문원 앞의 노송이다. “나무를 기록한 문헌을 찾기 힘들어요. 이문원 위치도 옮겨졌고. 그런데, 설명한 생김새를 보니 이 향나무가 맞습니다. 나무를 보면서 글을 읽어보세요. 묘사가 똑같지요? 문헌을 찾으신 안대회 교수님께 감사하네요.”

창덕궁 선원전의 측백나무(수령 200~300년 추정). 선원전은 조선시대 어진, 즉 임금의 초상을 모시던 곳으로 궁궐에서 가장 신성한 곳이다. 나무 줄기는 비틀어지며 올라갔으나 곳곳한 기개와 우직함을 자랑한다./사진=김창현 기자창덕궁 선원전의 측백나무(수령 200~300년 추정). 선원전은 조선시대 어진, 즉 임금의 초상을 모시던 곳으로 궁궐에서 가장 신성한 곳이다. 나무 줄기는 비틀어지며 올라갔으나 곳곳한 기개와 우직함을 자랑한다./사진=김창현 기자
나무 수명은 아무도 모른다. 멀쩡해 보이는 데도 갑자기 죽는다. 돈화문 가까운 곳, 400년 된 회화나무 한 그루도 4년 전 폭풍에 넘어갔다. 받침대를 해놨으나 죽어가고 있다. “세계적으로 5천 년, 9500년 된 나무도 있어요. 우리도 그런 나무가 있으면 좋겠죠.”

창덕궁에는 300, 400년을 넘은 고목들이 다수다. 서열 2위는 수령이 670년쯤 된 금천교 느티나무다. 내각으로 가기 위해 처음 건너는 금천교 바로 왼편에 있다. “아이고, 큰일이네. 살아있는 나무에 저렇게 버섯이 피는 건, 이미 안쪽에 균사가 다 번졌다는 건데. 저 꼭대기 잔가지와 나뭇잎 보이죠? 맥없어 보이는 게 제대로 영양분이 전달되지 않는다는 건데. 걱정이네요. 수년 전부터 저렇게 변했는데 심해지고 있어요.”

금천교를 건너오면 만나는 670년된 느티나무. 박상진 교수는 "하늘로 뻗은 잔가지에 힘이 없고, 나무에 버섯이 피는 건 심각한 상태로 보인다"고 걱정했다. /사진=김창현기자금천교를 건너오면 만나는 670년된 느티나무. 박상진 교수는 "하늘로 뻗은 잔가지에 힘이 없고, 나무에 버섯이 피는 건 심각한 상태로 보인다"고 걱정했다. /사진=김창현기자
창덕궁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수령 670년 추정 느티나무가 아프다. 느티나무는 오동나무 등과 함께 속이 단단하고 잘 썩지 않는다 국내 보호수 91만여 그루 중 7000여 그루를 차지할 정도로 우리 나라 마을 곳곳을 지키고 있다. /사진=김창현 기자창덕궁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수령 670년 추정 느티나무가 아프다. 느티나무는 오동나무 등과 함께 속이 단단하고 잘 썩지 않는다 국내 보호수 91만여 그루 중 7000여 그루를 차지할 정도로 우리 나라 마을 곳곳을 지키고 있다. /사진=김창현 기자
느티나무는 박 교수가 닮고 싶은 나무다. “부석사 무량수전 기둥도 느티나무예요. 먹감나무 등과 함께 이 수종은 단단해서 잘 썩지 않아요. 느티나무는 산에서는 곧게 자라는데, 신기하게도 마을의 느티나무는 모든 것을 다 품을 듯 넓게 넉넉하게 자랍니다.” 전국 보호수 91만3600여 그루 중 느티나무만 7000 그루다.

박 교수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를 하나 더 소개해 준다. 돈화문으로 들어가자마자 궁에서 처음 만나는 왼편의 회화나무 4그루와 오른편 회화나무 4그루다(천연기념물 제472호). 400~600년 정도로 추정된다. 회화나무는 '학자수'(scholar tree)다.

“똑바로 자라기 보다 가지 뻗음이 자유로워 학자의 기개를 상징한답니다. 뭐, 곡학아세하는 학자가 늘어나 의미가 없으려나…. 하하하.” 증명이나 하듯 왼편 회화나무 앞에는 3 정승이 임금을 만나기 전 모여 정사를 논했다는 푯말이 있다.

이밖에 600년 된 다래나무(제251호), 400년 된 뽕나무(제471호)가 천연기념물로 대우를 받는다.

670년된 창덕궁 느티나무에 버섯이 핀 모습. /사진=김창현 기자670년된 창덕궁 느티나무에 버섯이 핀 모습. /사진=김창현 기자
국내에서 1천 년 이상 된 고목은 30여 그루 정도로 추정한다. 1100년 된 것으로 추정하는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호), 수령 1000년으로 추정하는 서울 신림동 굴참나무(제 271호)가 대표적이다.

박 교수 개인적으로는 충북 음성 구지뽕나무도 천연기념물로 지정할만하다고 본다. 수령은 400년 정도 추정되지만, 식물학적으로 의의가 있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쉽지 않다. 사유지에 있어서다. “요즘은 보호수나 천연기념물 지정이 더 힘들다고 해요. 사적 재산인 경우 개발하는 데 걸림돌이 되니까.”

# 죽은 나무가 묻는다 “나는 누구일까요?”
살아있는 나무에만 관심을 가진 게 아니다. 박 교수는 전공을 살려 죽은 나무, 무형 문화재가 들려주는 나무 이야기에도 심취했다.

대표적인 사건이 자작나무로 알려진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재질이 실은 우리 산에서 흔히 보는 ‘산벚나무’임을 증명(?)한 일이다.

“지금이야 탄소측정도 가능하지만, 그때는 어려웠죠. 게다가 문화재인데 어느 부위를 잘라서 살필 수가 있나요. 난리가 나죠. 모 방송사 창사 50주년 특집에서 팔만대장경을 다뤘는데 그 기획에 전문가 자격으로 참여했어요. 구석을 아주 조금 떼 현미경으로 살폈어요. 자작나무가 아니더라고요. 사실 북쪽에 주로 사는 자작나무가 재료라는 게 처음부터 이상했죠. 제가 운이 좋아 보게 된 겁니다.”

나무로 만들어진 문화재가 한두 개인가. 여기저기서 묻는 말에 답을 한 건데 사건 사고도 많았다. 신안 보물선에서는 ‘대형사고’가 났다.

80년 광주민주화항쟁이 벌어진 직후다. 전남대에서 강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신안선 재료를 살펴보니 일본 삼나무가 나왔다. 이걸 들은 모 언론이 ‘신안선은 일본 배다’라는 오보를 내고, 일본정부에서 보도를 근거로 공동연구를 요구해왔다. “배라는 게 오가며 수리도 해야 하니 일본 나무가 사용될 수도 있죠. 저는 일본 삼나무가 사용됐다고 했지, 일본 배라고는 안 했는데….” 안기부에서 찾아왔다. “끝났구나, 생각했죠. 근데 어찌 조용히 넘어가더라고요. 하하하.”

장보고의 유적지에 있는 말뚝을 살피면서는 “천 년 됐나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건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목소리는 안 나오고 박 교수 얼굴 화면 자막에 ‘천 년으로 추정~'이라고 나갔다. "니가 그걸 어찌 아느냐고 선배들에게 엄청나게 혼났습니다. 여기서도 외도인 셈이고, 그쪽(문화재) 입장에서도 비전공자가 떠드니 환영받았겠나요. 뭐 이제는 이골이 났지만. 하하하.”

"아까시나무가 산을 황폐하게한다는 말은 잘못된 정보입니다. 자양분이 없어도 잘 자라서 산을 푸르게 하죠. 저는 오히려 벚나무가 너무 많다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문화에 갸우뚱합니다. 우리가 보는 ‘왕벚나무’는 제주가 원산지인 우리 나무입니다. 그래도 벚나무는 일본 문화를 대표 하는 건데, 어느 설문조사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선정됐다고 하니." - 박상진 교수/사진=김창현 기자"아까시나무가 산을 황폐하게한다는 말은 잘못된 정보입니다. 자양분이 없어도 잘 자라서 산을 푸르게 하죠. 저는 오히려 벚나무가 너무 많다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문화에 갸우뚱합니다. 우리가 보는 ‘왕벚나무’는 제주가 원산지인 우리 나무입니다. 그래도 벚나무는 일본 문화를 대표 하는 건데, 어느 설문조사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선정됐다고 하니." - 박상진 교수/사진=김창현 기자
# 사람보다 오래, 그곳이 어디든 잘 살아가는 생
그에게 나무는 무엇일까.

“나무는 움직이지 못하잖아요. 그곳이 어디든 뿌리를 내립니다. 최선을 다해 사는 거죠. 살아서도 죽어서도 사람에게 아낌없이 주고요. 나무를 차별할 필요도 없어요. 아까시나무가 일본이 산을 황폐시키기 위해 심었다고 하는 데 오해예요. 일본 눈에도 우리 산의 황폐함이 너무 심했던 거예요. 아까시나무, 리기다소나무, 오리나무, 이런 나무들은 자양분이 부족해도 잘 자라납니다. 빨리 산림 녹화하는데 최고인 거죠. 그런데 아까시나무가 워낙 햇빛을 좋아해 결국 무덤가로 뿌리를 뻗치니 미움을 받기 시작한 겁니다. 저는 오히려 벚나무가 너무 많다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문화에 갸우뚱합니다. 궁에 있는 일본산 벚나무는 대부분 다 뽑혔고, 우리가 보는 건 제주가 원산지인 ‘왕벚나무’입니다. 우리 나무 맞아요. 그래도 벚나무는 일본 문화를 대표 하는 거라.”

나무를 보호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한다. "보호수로 지정된 아름드리 고목에 가보세요. 나무 주변을 콘크리트로 둔 턱을 만들어 놓죠? 나무는 크게 팔 벌린 가지만큼 땅속에 뿌리가 퍼졌다고 보면 돼요. 그런데 그 위에 시멘트를 치고 벽을 만드니, 뿌리가 숨을 쉴 수 없죠. 비가 잘 스며들도록, 나무 주변 땅에 무얼 하면 안 되는데…."

산새도 오리나무/위에서 운다/산새는 왜 우노, 두메산골/영 넘어 갈라고 그래서 울지./눈은 내리네, 와서 덮이네./오늘도 하룻길/칠팔십리/돌아서서 육십리는 가기도 했소./불귀, 불귀, 다시 불귀,/삼수갑산에 다시 불귀. /사나이 속이라 잊으련만,/십오년 정분을 못 잊겠네/산에는 오는 눈, 들에는 녹는 눈. /산 새도 오리나무/위에서 운다./삼수갑산 가는 길은 고개의 길 - 산, 김소월

머언 산 청운사/낡은 기와집/산은 자하산/봄눈 녹으면/느릅나무/속잎 피어가는 열두 구비를/청노루 맑은 눈에/도는 구름-청노루,박목월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그리고 감로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 백화, 백석


박상진 교수는 창덕궁에 천 년 고목 느티나무 한 그루쯤은 있길 바란다. 처음 시작한 그곳이 어디든 거게 맡게 뿌리 내리는 성실한 삶. 박 교수는 "나무는 있어야할 곳이 따로 없는 그런 존재"라고 말했다.  /사진=김창현 기자박상진 교수는 창덕궁에 천 년 고목 느티나무 한 그루쯤은 있길 바란다. 처음 시작한 그곳이 어디든 거게 맡게 뿌리 내리는 성실한 삶. 박 교수는 "나무는 있어야할 곳이 따로 없는 그런 존재"라고 말했다. /사진=김창현 기자
졸리고 따분한 수업 시간, 박 교수는 학생들에게 시를 읊어주었다. 오리나무, 느릅나무, 자작나무. 시에는 그 시간에 공부해야 하는 나무들이 나왔다.

“학생들도 흥미를 갖습디다. 따분하고 어려운 수업인데 ‘어! 시에 나오는 나무가 이거구나’ 하는 거죠. 우리보다 더 오래 지구에서 살았고, 우리보다 더 오래 지구에서 살아갈 나무가 지닌 이야기는 재미나지 않겠습니까.”

차 한잔 하고 헤어지는 길, 박 교수가 궁으로 다시 가겠단다. “아무래도 관리소에 가서 금천교 느티나무 상황을 알아봐야겠어요.” 결과가 궁금해 메일을 보내니 답이 왔다. “잘 알고 있더라고요. 나무의 수액 이동이 멈추는 가을에 조치한다네요. 사람으로 치면 90살쯤이나 된 거니 언제 돌아가셔도 호상이긴 해요.”

창덕궁에 천 년 고목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잘 뿌리 내리기를 바라는 박 교수의 맘이 짐작 가고도 남는다.

동궐도에 그려진 창덕궁 나무 중 현재 살아있는 나무는 30여 그루쯤 된다. 박 교수는 이 30그루의 고목 이야기를 문헌 속 자료를 토대로 엮는 중이다. 혹시 가을 주말 창덕궁에 가면, 건물 아닌 고목 앞에서 머리 하얀 노익장이 열심히 이야기하는 모습을 만날 것이다. 발걸음을 멈추고 슬쩍 귀동냥부터 해보시라.

창덕궁 돈화문으로 들어오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회화나무 네그루. 3정승이 모여 왕을 만나기 전 정사를 논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회화나무는 '학자수'로 분류된다. /사진=김창현 기자창덕궁 돈화문으로 들어오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회화나무 네그루. 3정승이 모여 왕을 만나기 전 정사를 논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회화나무는 '학자수'로 분류된다. /사진=김창현 기자
돈화문으로 들어가면 만나는 오른편 회화나무 4그루(천연기념물 제472호). 400~600년 정도로 추정된다. /사진=김창현 기자돈화문으로 들어가면 만나는 오른편 회화나무 4그루(천연기념물 제472호). 400~600년 정도로 추정된다. /사진=김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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