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화=임종철 디자이너
"네, 편한 대로 하시죠. 공문 받았습니다. 업무 능률이 안 오를 수 있으니 복장을 조금 자유롭게 하게 해 달라는 말씀이시죠. 검사님들도 자유롭게 하시면 되겠습니다."
지난달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진행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재판에서 오간 대화 내용입니다.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인 이상철 변호사는 법정에서 넥타이를 매지 않으면 안 되겠느냐고 정중하게 요청했고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서울변회는 2013년부터 소속 변호사들이 7∼8월에는 넥타이를 매지 않은 정장 차림으로 법정 내 변론을 할 수 있도록 전국 법원에 공문을 보내왔습니다. 복장을 간소화하는 방법으로 에너지 절약에 동참하고, 변호사들의 원활한 변론을 돕기 위한 방안이었죠. 올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른 법정의 사정은 더 심합니다. 서울법원종합청사 내 수십개의 법정을 누벼봐도 넥타이를 하지 않은 변호사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한증막' 같은 법정에서 머리가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을 뻘뻘 흘리면서 변론을 하는 변호사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여기서 드는 의문점. 서울변회에서 공문까지 보내 복장에 대해 편의를 구했는데도 변호사들은 왜 굳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까지 넥타이를 고집하는 걸까요?
취재 과정에서 만난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입을 모아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재판의 승패가 곧장 자신의 실적으로 연결되는 변호사 업무의 특성상 재판부에 트집잡힐 일은 애초에 피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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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법무법인에 근무하는 A변호사는 "요즘 같은 날씨에 넥타이를 매고 법정에 가는 일 자체만 해도 너무 힘이 든다"며 "그래도 사건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튀는 행동은 최대한 자제하려고 한다"고 털어놨습니다. 이어 "민사 소송의 경우 내가 넥타이를 매지 않았는데 상대편이 넥타이를 매고 법정에 나왔다면 사건에 영향을 줄까 신경이 쓰인다"고 했습니다.
A변호사는 또 "변호사들은 자신이 맡은 사건의 의뢰인에게 불이익이 있을까봐 행동거지를 조심할 수밖에 없다"며 "실제로 재판에서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지 못한 의뢰인이 변호사의 복장을 지적하는 사례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습니다.
B변호사는 "법정에서 넥타이를 매는 것은 법조인으로서 예의의 문제"라며 "판사들이 법복을 입는 것처럼 변호사들도 그에 상응하는 법정 내 예의를 지켜야 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눈치' 이야기는 빼먹지 않았는데요. 그는 "넥타이를 매지 말라고 해도 매는 이유는 단 한가지, 사건에 영향을 미칠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변호사에게 중요한 건 넥타이가 아니라 변론의 내용일텐데요. 폭염 속에서 넥타이라는 장신구 때문에 본령에 해당하는 변론에 지장이 가는 건 의뢰인이나 재판부 모두 바라지 않을 겁니다. 판사들이 먼저 "너무 덥죠? 변호인단 모두 넥타이 푸세요"라고 말해준다면 어떨까요? 그런 '쿨한 판사'들의 모습을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