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진 前 삼성전자 사장 "최순실 알았다면 이재용이 대통령에 그리 혼났겠나"

뉴스1 제공 2017.08.01 02:35
글자크기

피고인신문 첫날…뇌물공여 혐의 부인

(서울=뉴스1) 장은지 기자 =

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사장이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뇌물공여 등 48회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17.7.31/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사장이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뇌물공여 등 48회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17.7.31/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특검 말대로 2015년 7월23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부터 정유라 지원을 지시받았다면 (이틀 후인) 7월25일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승마지원이 부족하다는) 질책을 받을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협력사장(전 대한승마협회장)이 31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48차 공판에서 위같이 말하며 승마지원이 뇌물이라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주장을 반박했다. 피고인 중 한명인 박 전 사장이 자신의 혐의에 관해 법정에서 직접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특검은 대한승마협회 회장사였던 삼성의 승마지원을 최순실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로 보고 있지만, 삼성 측은 회장사로서 집행한 승마지원이었으며, 다만 지원받은 승마선수에 정유라가 포함된 것은 최순실의 강요와 압박에 의한 것이었다는 입장이다.

이날 박 전 사장은 대한승마협회장을 맡은 이후 삼성의 승마지원 경위에 대해 진술했다. 박 전 사장은 2015년 7월29일 독일에서 만난 박원오 전 승마협회 전무로부터 최씨가 박 전 대통령과 친분이 깊다는 말을 듣고 "굉장히 놀랐다"고 증언했다. 박 전 사장은 이때 최씨의 영향력을 처음 인지했다고 밝혔다.



박 전 전무는 당시 박 전 사장에게 '문체부 국·과장 좌천' 등이 최씨가 박 전 대통령에게 부탁해 이뤄진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때 박 전 사장은 왜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그토록 호되게 나무랐는지 이유를 짐작했다고 진술했다.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합병 가결…일주일 후 독대서 朴 "승마지원 부족하다" 이재용 질책

시점으로 보자면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이 주주총회에서 가결됐다. 이후 일주일여후인 7월25일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의 2차 독대가 이뤄진다. 특검은 이 자리에서 삼성의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고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당시 독대에서 30분 가운데 15분을 박 전 대통령이 승마지원 미비를 질책하는데 할애했고, 소위 '레이저' 눈빛을 받으며 호된 질책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사건의 발단은 2015년 7월2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대통령과 독대를 마치고 돌아온 이 부회장은 최지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에게 "내가 왜 대통령에 야단을 맞아야 하나"라며 당혹감을 나타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30분간의 면담 중 15분을 승마 지원 이야기에 썼고, 삼성의 지원이 미비하다고 크게 질책했다. 독대에서 돌아온 이 부회장은 오후 4시 이후 서초사옥에서 최지성 전 실장과 대한승마협회장인 박상진 사장과 긴급회의를 가졌다. 상황은 이날 2차 독대 이후 급변했다.

박 전 사장의 이날 진술에 따르면, 박 전 사장은 이날 회의에서 대통령이 이 부회장을 크게 질책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독대에서 박 전 대통령은 '(올림픽에 나가려면) 좋은 말도 사고 전지훈련도 가야 하는데 삼성은 아무것도 안한다. 한화보다 못하다'며 독대한 승마 이야기만 주로 했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회의에서 "'대통령 눈빛이 레이저빔 같다'는 언론 기사가 있는데 무슨 말인지 알겠다"고 황당한 심경을 밝혔다. 또 당시 승마협회장이었던 박 전 사장이 이 부회장에게 승마계의 파벌 다툼에 대해 설명하려 하자 이 부회장은 "저는 그런 것에 관심이 전혀 없다"며 "대통령이 계속 화를 내면 회사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것 아니냐. 앞으로 잘해달라"고 언짢은 기색을 내비쳤다.

마음이 급해진 박 전 사장은 독일로 출국해 자초지종을 알아본다. 박 전 사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묻는 특검 질문에 "이 부회장이 대통령에 야단 맞는게 보통 일이 아니지 않느냐"며 "그래서 내가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승마협회 부회장)에게도 사태를 파악하게 시킨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 전 사장은 독일로 출국해 박원오 전 전무를 만나 그로부터 '최순실과 박 대통령이 친자매 이상으로 돈독하며 최씨의 딸인 정유라를 대통령이 친딸처럼 아낀다'는 말을 들었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박 전 사장은 대통령이 승마협회를 맡아달라고 부탁한 것도 최씨가 관여됐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는 "최순실씨와 대통령의 관계를 듣고 급박한 상황이라고 판단했고 부탁을 거절하면 삼성을 모략할까 두려웠다"고 진술했다.

◇"최순실 알았다면 이재용 질책받을 일이 있었겠냐…어쩔수 없는 강요"

박 전 사장이 최순실 모녀의 영향력을 미리 알았다면 7월 독대 때 이 부회장이 대통령에 질책당하는 일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독일에서 귀국한 박 전 사장은 최순실이 박 전 대통령과 가깝다는 박원오와의 만남 내용을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부회장)에 보고했다. 이후 7월31일 최 전 실장으로부터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그리하라"는 답변을 받게된다.

박 전 사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최 실장이 고심하는 것 같았고 이 부회장이 대통령에게 받았다는 질책에 최순실이 연관돼 있다고 짐작했다"며 "승마선수단 지원에 정유라를 포함시키는 것을 요구한다니 최 전 실장이 그럼 그렇게 하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특검이 "대통령이 독대에서 정유라 지원을 언급한 것이 아니냐"고 질문하자 박 전 사장은 "독대에서 돌아온 이 부회장이 정유라 이름을 얘기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대통령이 정유라를 특정하지 않고 승마 전반의 지원을 주문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2차 독대에서 박 전 대통령의 질책을 받은 이후 독일에서 사건의 전모를 파악한 박 전 사장이 최 전 실장에 보고, 이후 승마 지원이 급하게 이뤄졌다는 것이 박 전 사장의 일관된 진술 내용이다.

삼성은 2015년 8월26일 코어스포츠와 213억원 규모의 컨설팅 계약을 체결, 9~10월 280만유로(약 35억원)를 송금하고 이후 마필 구입비 등을 포함해 총 78억원을 보냈다.

박 전 사장에 따르면, 당시 최순실 측이 박원오를 통해 삼성에 요구한 사항은 2가지다. 하나는 올림픽 승마선수 지원 명단에 정유라가 포함될 것과 승마지원 용역 수행을 위한 컨설팅회사를 최씨의 지인이 운영하는 회사로 해달라는 것이었다. 박 전 사장은 "독일 코어스포츠가 최씨가 운영하는 회사인지 전혀 몰랐다"며 "최씨의 지인이 운영하는 회사라고 박원오로부터 전해들었다"고 했다.

한편,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전현직 임원 5인에 대한 피고인신문이 이날 시작됐지만 오전 재판이 특검의 준비 부족으로 휴정되면서 재판 일정에 차질이 빚어졌다. 이날 마무리하려던 박 전 사장에 대한 피고인신문은 다음날인 8월1일 오전까지 넘어가게 됐다. 박 전 사장에 대한 특검 측 주신문이 자정이 다 돼서야 끝나면서 1일 예정됐던 이 부회장에 대한 피고인신문이 2일로 연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