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근로시간 단축, 유연하게 접근해야

머니투데이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 2017.07.30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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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최저임금이 전년대비 16.4%나 오른 7530원으로 결정되면서 경영계는 기업들의 경영환경 악화와 일자리 감소를 우려했다. 그것이 현실화되고 있다. 일부 기업에서는 벌써부터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부담으로 해외 공장 이전을 서두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의 충격에 더해 또 하나의 거대한 벽이 기업 경영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 바로 근로시간 단축 문제다. 지난 25일 정부는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대통령 후보 시절 공약이기도 했던 주 52시간 단축과 더불어 연 1800시간대 근로시간을 실현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최근 경부고속도로 버스사고를 인해 버스 운전자의 장시간 근로가 문제되면서 정부뿐만 아니라 국회에서도 특례업종 폐지를 포함한 근로시간 단축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장시간근로 국가이고 근로시간 단축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다만 급격한 근로시간 단축은 중소기업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 등 부작용도 엄청나다. 이를 감안해 2015년 노사정위원회에서 120여 차례의 치열한 논의를 거쳐 근로시간을 단축하되 기업 규모별 4단계 순차 도입과 1주 8시간 특별연장근로 허용 등에 합의를 이뤘다.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법 개정을 논의할 때 노사가 합의한 보완 장치들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근로시간 단축은 노사가 서로 조금씩 양보해야 성공할 수 있다. 그런데 노동계는 근로시간 단축은 당장 실시해야 하지만 임금의 감소는 절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인위적으로 급격하게 근로시간을 단축한다면 임금보전을 둘러싼 노사갈등이 불 보듯 뻔하다. 만약 기존의 소득수준은 유지한 채 근로시간 단축을 추진한다면 효율적인 인력운용이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은 추가고용보다 설비보완이나 해외생산 확대 등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



열악한 사업장의 경우 인건비 급증에 따른 경영상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기업이 추가고용을 망설이거나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그 피해가 다시 근로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근로시간 단축은 노사 어느 한쪽의 희생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프랑스가 주 39시간제에서 주 35시간제로 임금 감소 없는 근로시간 단축을 시도했으나 고용창출 효과가 나타나지 못한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성공적인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또 하나의 전제조건은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에 있다. 노동시장이 유연하다면 그때그때 필요한 인력을 고용하거나 줄일 수 있겠으나 상황이 그렇지 못하다 보니 기업들은 초과근로를 통해 경기변동에 대응해 왔다. 기업경쟁력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성공적인 근로시간 단축과 고용창출을 이루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제도 개선이 선행돼야 하는 이유다.

높은 초과근로 할증률 인하도 방법 중의 하나다. 일본이나 프랑스의 경우 할증률이 25%인 반면 우리는 두 배인 50%다. 이러한 높은 할증률은 근로자들의 초과근로 동기를 유발하는 주요 원인이다. 국제노동기구(ILO) 권고 기준인 25%로 하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 또 전세계 유례가 없는 미사용 연차휴가에 대한 금전보상 관행을 개선해 근로자의 휴식권을 보장하는 것도 필요하다. 탄력적 근로시간제 등 유연근로시간제의 실시요건을 완화해 근로시간 운영의 탄력성과 효율성을 높일 필요도 있다.


업종에 따라서는 특정 기간에 집중적으로 연장근로를 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석유화학업종의 경우 고압가스안전관리법 등 법령을 준수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대정비작업을 수십일에 걸쳐 집중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이 기간에는 일시적으로 주 52시간 초과근로가 불가피한데 이러한 업종별 특수성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1일, 1주 단위만으로 근로시간 초과의 불법성을 따지는데 월간 또는 연간 단위 총량을 기준으로 위법성을 판단하는 제도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최근 일본 정부는 성수기 등에는 특례로 연간 720시간, 월평균 60시간을 상한으로 하되 일시적으로 최대 월 100시간 미만의 근무를 인정하도록 하는 법률개정을 추진 중이다. 근로시간을 단축하더라도 좀 더 유연한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근로시간 단축이 기업의 생산경쟁력 약화로 이어져 고용감소라는 악순환을 초래하지 않도록 경제, 사회 전반을 고려한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차원의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기고]근로시간 단축, 유연하게 접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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