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한쪽 안 들리지만…'거장'께 배우려고 한달음에 왔죠"

머니투데이 평창(강원)=구유나 기자 2017.07.31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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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평창대관령음악제 음악학교 '마스터 클래스'…국내외 '신예'들과 '대가'들의 만남

한쪽 귀가 안 들리는 첼리스트 여윤수(왼쪽)와 로렌스 레써 뉴잉글랜드음악원 명예교수가 29일 강릉 평창 알펜시아 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된 '마스터 클래스'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다. /사진=평창대관령음악제<br>
한쪽 귀가 안 들리는 첼리스트 여윤수(왼쪽)와 로렌스 레써 뉴잉글랜드음악원 명예교수가 29일 강릉 평창 알펜시아 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된 '마스터 클래스'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다. /사진=평창대관령음악제


"솔리스트로서의 재능이 있는 것 같네요."

첼리스트 여윤수(16)는 첼로에 귀를 가까이 대고 정열적인 드보르작을 선보였다. 독주가 끝나고 첼로 거장 로렌스 레써(79)가 무대 위로 올라왔다. "개인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라고 긍정적 평가를 내놓자 관중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29일 강릉 평창 알펜시아 컨벤션센터에서 뉴잉글랜드음악원 명예교수인 레써의 첼로 마스터 클래스가 개최됐다. 떠오르는 '신예'와 전설의 '거장'을 보기 위해 100여 명의 관객이 모였다. 이번 음악제의 주요 첼리스트인 정명화와 고봉인 등의 모습도 보였다.



평창대관령음악제의 '마스터 클래스'는 음악학교에 참가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세계적 수준의 교수진이 펼치는 공개 강의다. 올해 첼로 부문에서는 2대 거장으로 손꼽히는 레써와 한스 요르겐 옌슨 노스웨스턴대 교수, 지안 왕, 루이스 클라렛 뉴잉글랜드 대학원 교수가 참여했다. 이날 여윤수(한국), 안재원(캐나다), 쓰하오 허(미국) 3명이 40분씩 레써의 수업을 받았다.

레써는 여씨에게 "오케스트라보다 더 크게 연주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7살 때 뉴질랜드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이후 원인 모를 병으로 한쪽 귀의 청력을 잃은 여씨의 '세게' 연주하려는 버릇을 지적한 것. 레써는 연주 중간중간 호흡하는 방법, 활을 여유 있게 긋는 법 등 주법을 교정해주고 과거 자신의 경험을 나누며 학생, 관중들과 공감대를 형성했다.



"제가 젊은 연주자일 때 당시 호놀룰루 오케스트라 지휘자였던 조지 바라티 앞에서 드보르작을 연주한 적이 있습니다. '너는 4박에 맞춰 활 긋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채용할 수 없다'는 평을 듣고 기분이 나빴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왜 그런 말을 했을까?'라고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드보르작을 메트로놈처럼 연주할 필요는 없지만 기본적인 박자에 맞춰 연주할 수 있어야 나중에 박자를 자유롭게 쓸 수 있어요."

레써는 "청중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을 원해서 (공연장을) 찾아오기 때문에 공연자는 그들에게 무언가를 줘야 할 책임이 있다"며 "그건 화려한 연주이거나 정신적·종교적인 감흥일 수도 있는데, 아무튼 내가 공연을 마치고 내려왔을 때 청중들이 변해있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수업이 끝난 후 여씨는 "레써 선생님은 첼로계에서는 전설적인 인물이고 내가 정말 존경하는 분이기도 하다"며 "굉장히 수학적으로 연주하면서도 욕심 없이 모든 소리를 다 내는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오로지 레써에게 가르침을 받기 위해 경기도 일산에서 강원도 평창까지 혼자서 온 그다.


여씨는 최근 첼로계에서 주목받는 신예다. 청력이라는 핸디캡을 갖고도 재능과 열정은 빛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부설 한국예술영재교육원 출신으로 정명화 교수에게 첼로를 배웠고, 2014년에는 안토니오 야니그로 국제첼로콩쿠르와 쇤필드 현악콩쿠르 등에서 우승했다. 오는 9월에는 미국 커티스 음악대학에 입학할 예정이다.

"레써 선생님이 하신 말씀 중에 '오케스트라보다 소리를 크게 낼 수 없어도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유럽을 지배한 나폴레옹은 몸집이 크지 않았지만 자기만의 색깔이 있다고 하셨어요. 돌이켜 보면 저는 그동안 분노의 연주를 했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는 제 안의 캐릭터를 찾아내서 관중들을 설득할 수 있는 연주를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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