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학교’, 가르치는 게 없다

강명석 ize 기자 2017.07.26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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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학교’, 가르치는 게 없다


Mnet ‘아이돌학교’는 걸그룹을 꿈꾸는 연습생들을 위한 학교가 콘셉트다. 출연자 중 상당수를 아이돌이 되기 위한 트레이닝을 제대로 받은 적 없는 일반인들로 채울 수 있는 명분이다. 그러나 이 학교에서는 사실상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교사인 김희철은 수업에서, 걸그룹 노래에서 특히 시선을 끄는 ‘킬링파트’의 중요성을 가르친다. 하지만 정작 시험 과목은 춤, 노래, 체력 등이다. 춤과 노래를 가르치는 교사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2회까지 그들의 역할은 순위를 매기는 감독관에 더 가까웠다. 교사가 출연자에게 전문적인 트레이닝을 해주는 시간은 없다. 대신 경험과 실력이 있는 출연자들이 교사의 역할을 대신한다. ‘아이돌학교’ 홍보용 뮤직비디오 촬영을 위한 군무를 연습할 때, Mnet ‘프로듀스 101’ 시즌 1에 출연했던 이해인은 몇몇 출연자들이 군무 대형을 무너뜨렸다고 말했다. 지적받은 이들은 그렇지 않다고 반박했다. 인지도와 실력이 모두 있는 출연자와 그렇지 못한 출연자들 간의 갈등. 수업은 시험과 상관이 없고, 그나마 시험공부를 시켜줄 교사 또는 트레이너의 역할을 최소화한다. 그 결과 출연자들은 어떻게든 화합하거나 갈등하면서 드라마를 만들어낸다.

군무 연습 중 실력 있는 몇몇 출연자들은 연단에 올라가 다른 출연자들의 군무를 평가하고 지시했다. 연습 내내 교사가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 그들이라도 나서야 할 상황이었다. 다만 그만큼 이들의 방송 분량은 늘어났다. ‘아이돌학교’는 100% 시청자 투표로 성적을 결정하고, 방송 분량은 투표에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미 실력을 갖춘 출연자는 JYP 엔터테인먼트 출신의 나띠처럼 기획사의 트레이닝을 받은 경우가 많다. ‘아이돌학교’는 이 프로그램 출연 전부터 경력을 쌓은 출연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다른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일이 다 비판하기 어려울 만큼 문제가 많았던 ‘프로듀스 101’도 출연자들의 합숙 기간 동안에는 언제든지 춤, 노래, 랩 등을 트레이닝 받았다. 인지도는 낮아도 실력 있는 출연자들은 조별 무대 평가 연습 도중 주목받거나, 현장 평가 투표 1위를 해서 득표수의 열세를 만회할 ‘베네핏’을 얻을 수 있었다. 반면 ‘아이돌학교’에는 초반부터 유리한 출연자와 그렇지 못한 출연자의 격차를 좁힐 최소한의 시스템도 없다.

하위권 출연자들이 경쟁 시스템을 통해 부각받을 기회는 없다 해도 무방하다. 그만큼 쇼의 재미를 만들어낼 극적인 드라마가 생길 가능성도 낮아진다. ‘아이돌학교’의 문제는 단지 비윤리적인 것이 아니라, 그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출연자들이 이 쇼를 견뎌야 할 이유를 아직 제대로 주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리고 제작진들은 이 문제를 출연자들에게 떠넘긴다. 실시간으로 투표 결과가 발표되는 사이, 최하위의 성적을 기록한 출연자는 생방송으로 자신의 심경을 밝혀야 한다. 인생에서 가장 당혹스러울 수도 있는 순간에도, 출연자는 어떻게든 자신의 매력을 어필해야만 한다. ‘프로듀스 101’은 출연자들을 나눠 여러 개의 방에 배치했다. 제작진은 출연자들이 숙소에서 나누는 대화 중 눈에 띄는 것을 편집했다. 반면 ‘아이돌학교’는 군대의 구식 내무반을 연상시키는 숙소에 모든 출연자들을 몰아넣었다. 그 틈에서 조금이나마 주목받으려면 눈에 띄는 행동을 애써 해야 한다.

제작진이 이 학교의 교장, 이순재를 활용하는 방식은 쇼의 문제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교장이지만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학교를 거닐다 두 명의 출연자에게 간식거리를 사주면서 덕담을 할 뿐이다. 학교 운영의 철학도, 성적을 높일 실력도 없다. 그럼에도 그럴듯한 말로 인자한 교장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아이돌학교’도 마찬가지다. 출연자들을 성장시키고, 재미를 만들어낼 면밀한 계획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대신 출연자들에게는 별 상관 없을 내용의 수업을 진행시킨다. 그만큼 쇼의 긴장감은 떨어지고, 출연자의 캐릭터와 스토리를 풀 시간은 줄어든다. 하지만 이런 수업들은 ‘아이돌학교’가 출연자들을 잔인하게 몰아붙이는 것을 희석시킨다. ‘아이돌학교’에서 출연자들은 아침에 군인처럼 구보를 한다. 제작진은 이 장면을 짧고 밝은 분위기로 편집한다. 제작진은 출연자들에게 육체적, 심리적으로 온갖 압박을 가하면서도 그들은 스스로를 밝고 유쾌하게 프로그램을 끌고 가는 것처럼 묘사한다. 그리고 교사와 교장의 존재를 거의 지우다시피 하면서 출연자 중 누군가 악역이 되는 상황을 만든다.

‘프로듀스 101’이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성공한 이유 중 하나는 이른바 ‘악마의 편집’ 속에서 고통 받는 출연자들을 투표로 구한다는 서사에 있었다. 지지하는 출연자를 보기 위해서 쇼를 참고 견디며 보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돌학교’의 제작진은 악당으로 나서지 않는다. 대신 애써 이곳이 좋은 학교라는 것을 강조하고, 실제 스토리와 상관없는 부분에 시간을 할애한다. 그 짐은 고스란히 출연자들에게 돌아간다. 이 기만적인 태도가 쇼를 더 비윤리적이고 재미없게 만들고 있다. 출연자들을 내무반 같은 숙소에 집어넣으려면, 최소한 비난받는 악당이 되겠다는 다짐은 해야 하지 않았을까. ‘프로듀스 101’이 그나마 나은 쇼였다는 이상한 생각을 갖게 만들다니, 어떤 의미에서는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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