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맹점에 가려 느끼지 못할 뿐 당신은 이미 행복하다

머니투데이 권성희 금융부장 2017.07.22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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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 투자노트]

고딩 아들이 게임에 빠져 있다. 학교 공부는 둘째치고 게임밖에 아는 것이 없는 바보가 될까 걱정됐다. 아들과 거래를 했다. 밤 11시까진 게임을 하든 뭘 하든 아무 말도 안 하고 방해하지도 않을 테니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책 한쪽만 같이 읽자는 제안이었다. 거래가 성사돼 매일 책 한쪽을 같이 읽게 됐다. 어느 날 책 내용이 삶의 우선순위에 관한 것이었다.

이 때다 싶어 “넌 학생의 우선순위가 공부인데 게임에만 빠져 있으니 어떡하니?”라고 물었다. 그러자 아들은 “공부는 안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우선순위는 지키잖아” 했다. “내 주위에 엄마랑 나처럼 친한 아들은 없을걸”이라는 말이었다. 그 말에 마음이 소프트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러워졌다.



아들의 말을 듣고 행복은 마음의 맹점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맹점은 망막에서 시세포가 없어 물체의 상이 맺히지 않아 볼 수 없는 부분이다. 마음에도 맹점이 있어 이미 존재하는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만 해도 아들에게 없는 것, 열심히 공부하는 모범생의 모습을 찾느라 행복하지 않았다. 성실하게 공부하는 다른 집 아이를 보면 ‘저 엄마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저런 아들이 있으면 걱정이 없겠다’ 하는 부러움이 있었다.

/삽화=김현정 디자이너/삽화=김현정 디자이너


내 마음의 맹점은 아들에게 이미 있는 좋은 것을 보지 못하게 했다. 물 좀 갖다 달라. 방에 불 좀 꺼달라. 재활용 쓰레기 좀 버려라 등등 소소한 심부름을 시키면 아들은 군말 없이 다해준다. 영화 보러 가자고 하면 같이 가주고 “엄마 오늘 힘들어. 좀 안아줘” 하면 꼭 끌어안아 위로해준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아들의 이런 모습이 내 마음의 맹점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글의 미래사업을 담당하는 구글X의 신규사업개발 책임자 모 가댓은 ‘행복을 풀다’라는 저서에서 ‘행복=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 삶이 어떠해야 한다고 기대하는 수준’이라는 행복 방정식을 제시했다. 내게 일어나는 일이 내 기대수준을 넘어서야만 행복을 느낀다는 의미다. 삶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적으로 통제할 수는 없으니 결국 기대수준을 낮춰야만 어떤 순간에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문제는 사람이 기대하는 존재란 점이다. 기대하지 않는다면 꿈이 없다는 얘기인데 꿈이 없으면 그 삶이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아들이 공부하지 않는다고 아들의 미래를 기대하지 않는다면 그게 행복일까.

행복 방정식에서 이 문제를 푸는 비밀은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있다. 기대수준을 낮추지 않아도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 가댓도 “당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생각(다시 말하면 해석)이지 사건 자체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일어난 사건을 해석할 때 마음의 맹점이 걸림돌이 된다. 아무리 힘겨운 사건에서도 행복의 요소를 찾아 해석할 방법이 있는데 마음의 맹점 때문에 그 요소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행복은 마음의 맹점을 채워 이미 존재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맹점에 가려 보이지 않는 행복을 발견하는 방법으로 모댓은 5가지 진실을 제시한다. 첫째, ‘삶은 지금 여기에서’가 전부다. 매 순간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에 충실하라. 둘째, 모든 변화를 통제할 수는 없다. 어떤 변화를 만나든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을 내려다보며 감사하라.

셋째, 사랑이 없으면 기쁨도 없다. 줄 수 있는 것이면 모든 것을 주는 사랑을 하라. 넷째, 누구나 죽는다. 삶은 잠시 빌린 것이니 이왕이면 평화롭고 재미있는 삶을 빌리라. 다섯째, 우주는 질서에 따라 움직인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일지라도 질서에 따라 일어난 사건이라고 받아들이라.

모댓은 ‘행복을 풀다’란 책을 21살 난 아들이 의료사고로 죽은지 17일 후부터 쓰기 시작했다. 아들의 죽음과 행복은 양립할 수 없는 주제다. 그럼에도 모댓은 아들의 죽음이라는 불운에 집중했다면 마음의 맹점이 가려 보지 못하고 인정하지도 못했을 5가지 진실을 직시하며 마음의 평안을 찾고 아들과 함께 한 시간과 추억만으로도 행복했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통제할 수 없고 다른 사람, 심지어 내가 낳은 자식조차 내 마음대로 변화시킬 수 없다. 환경을 내 기대수준에 맞게 바꾸고 사람을 내 마음에 맞게 변화시켜야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저 마음의 맹점을 채워 일어난 사건, 바꿀 수 없는 환경 속에 이미 존재하는 긍정의 씨앗. 행복의 요소를 발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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