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100년 집권을 위한 비법

머니투데이 강기택 경제부장 2017.07.19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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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론만 있고 각론이 없다. 선언만 있고 대안이 없다. 당위만 있고 설득은 없다. 이 동어반복적인 표현은 문재인정부가 ‘국정과제’를 풀어가는 방식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우선 최저임금이다. 지난 15일 내년도 최저임금을 16.4% 올리면서 ‘임기 내 1만원’에 대한 의지를 관철했다. 소상공인·중소기업 등의 부담은 15조원 더 늘어나는데 국고 3조원을 투입해 임금을 보전한다. 신용카드 수수료율을 낮추고 임대료 인상을 억제하며 세금을 줄여주는 등의 방책도 곁들였다. 문제는 매년 이렇게 하는 게 가능한가다. 물가 상승은 제외해도 폐업이나 고용을 줄일 경우 대책은 없다. 보다 근본적으로 최저임금을 정부가 세금으로 메꿔주는 게 맞는지, 경쟁력 없는 자영업자나 중소기업까지 지원하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구체적인 방도가 아직 없다. 대통령의 취임 뒤 첫 행선지인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연구용역을 줘 ‘직접 채용’ ‘자회사 설립’ ‘무기계약직’ 등의 정규직화 형태를 검토하고 있다. 민노총은 ‘직접 채용’을 요구한다. 직원들을 다 넘겨주고 용역계약이 끊길 처지에 놓인 협력업체들은 소송을 준비 중이다. 해법을 잘 찾지 못하면 자칫 ‘성공적인 공항모델’도 망가지고 정규직, 비정규직, 노조, 협력업체 등 이해관계자 모두로부터 원망을 들을 수 있다.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의 공사 중단 결정도 일단 지르긴 했지만 수습이 쉽지 않다. 한국수력원자력 노조는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면서 대정부 투쟁을 천명했다. 탈원전에 대한 로드맵 없이 정부가 내놓은 건 제8차 전력수급계획 초안이 전부다. 법적 근거도 약했지만 ‘기습 이사회를 열어 날치기 통과를 했다’는 절차적 정당성 문제도 부각됐다. 공론화를 한다지만 시민배심원 선정과 그 의사결정의 객관성을 찬반진영 양쪽에서 인정받는 건 고난도 작업이다. 신형 원자로(APR1400)의 안전성을 검증하고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면 이를 먼저 설명했어야 했다. 나중에 공사를 다시 하면 탈핵론자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외고(국제고)와 자사고 폐지도 주장만 하다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로 공을 넘겼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일반고를 살리기 위한 밑그림이다. 그게 없는 한 저항은 강력할 것이다. 이들 학교를 없앤다고 일반고가 자동으로 살아나진 않으며 두 가지는 별개 일이다. 설립근거가 된 시행령을 개정하면 법에 대한 신뢰와 법의 안정성이 무너진다. 몇백억 원을 투자한 학교들은 손해배상소송에 나설 것이다. 선발권을 빼앗아 추첨으로 돌리면 우수한 데도 ‘부실한 일반고’에 가야 하는 낙첨자들의 불만은 평생 갈 것이다. 기어코 정리하겠다면 법정부담금도 못 낸 채 족벌재단의 생계용 학교로 전락한 일반고부터 손을 대는 게 순서다.

대안도 각론도 미흡하지만 그나마도 서로 충돌한다. 공공기관에 블라인드 채용을 도입해놓고선 수학능력평가(수능)은 절대평가로 바꿔 ‘무력화’를 시도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수능만 보는 정시전형이야말로 최고의 블라인드테스트다. 사법시험 역시 출신학교와 학력을 보지 않는 블라인드 테스트의 본보기였다. ‘금수저 전형’으로 불리는 수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은 이와 정반대다. 오히려 로스쿨의 선발방식에 가깝다. 국정철학이 모든 정책에 공유돼야 한다면 교과과목뿐 아니라 비교과과목까지 사교육을 유발하고 부모와 아이를 생활기록부의 노예로 만든 수시 학종은 더 축소해야 한다.
[광화문]100년 집권을 위한 비법


정권 초기 힘이 있을 때 핵심정책을 밀어붙이고 싶은 욕구가 강한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무작정 그렇게 한다고 되는 건 아니다. 동시다발적인 갈등을 관리하는데 실패하면 집권 초의 환희가 환멸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다. 관건은 설득하고 동의를 구하는 것이다. 부작용을 최소화해 비지지자들로부터도 공감을 얻는 것이다. 그래야 ‘100년 집권’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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