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최저임금, 스미스와 막스 사이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장 2017.07.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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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와 사회주의의 정신적 지주인 칼 마르크스(칼 막스)의 공통점은 당대 유명 철학자이면서 경제학자라는 점이다.

또 이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부(富)의 기원을 그 이전의 중농주의나 중상주의와 달리 노동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중농주의 시대에는 영토나 토지가 부의 기반이 됐고, 그 토지에서 나오는 산출로 국가의 부가 결정됐다면, 중상주의 시대에는 그 나라가 가진 금이나 은이 국부의 척도였다.

이런 부의 기원이 그 나라의 노동력과 상품의 양으로 규정된 것이 애덤 스미스부터다. 스미스는 그의 저서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에서 부의 원천은 노동이며, 부의 증진은 노동 생산력의 개선에서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스미스가 주장한 부의 기원(노동)을 그대로 끌어다 쓴 게 칼 막스다. 막스가 1800년대 영국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가장 많이 읽고 참조했던 책이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다. 이 국부론을 헤겔의 변증법과 유물사관을 결합한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비판한 것이 그의 저서인 '자본론'이다.

노동을 통해 축적된 부의 분배를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인 시장이 해 줄 것으로 믿었고, 막스는 부의 축적이 잉여가치의 착취로부터 이뤄진다고 보고, 분배를 사회시스템의 변화(혁명)를 통해 만들려고 했던 차이가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간당 최저임금 논란은 시장에 의한 부의 분배에서 일어나는 양극화의 문제를, 자유시장 경제주의자인 스미스와 사회주의자인 막스의 중간지점에서 정부 주도의 경제정책론자인 케인즈식으로 풀어내려는 시도로 보인다.


최저임금은 국가가 근로자들의 생활안정을 위해 임금의 최저수준을 정하는 것이다. 이는 노동자 계급의 강력한 힘의 결집을 통해 부의 분배를 실현하려는 마르크스식 사회주의 이념과도 다르다. 노동조합의 강력한 파워의 영향권 밖에 있는 일반 임금 소득자가 사용자로부터 일정 수준 이상의 임금을 보장받도록 하는 제도다.

문제는 이런 정부의 개입으로 인한 각 계급의 이익 침해를 어떻게 잘 풀어낼 것인가이다. 애덤 스미스든 칼 마르크스든 이들이 보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다.

이 이기심을 최소화하고 공동체가 함께 살아가는 방법으로 스미스는 인간의 마음 속에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는 공정한 관찰자가 있다고 봤다. 막스는 이기심이 없는 '자유로운 개인의 연합'을 통해 모든 인간들이 이기심을 버리는 공동사회가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공정한 무언가(공정한 관찰자나 자유로운 개인의 연합)'와는 상관 없이 인간은 그렇게 이타적이지 않다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 위한 전쟁을 하고, 전쟁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은행에 맡긴 금보다 더 많은 화폐를 찍어내면서 금융 자본주의가 시작된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시간당 최저임금은 '자유로운 개인 연합' 간에 공정한 관찰자가 조율하는 게 아니라 개개인의 이익 관점에서 부딪히는 대목이다.

영세 자영업자와 임금 근로자 간의 이해 충돌은 피할 수 없는 필연이다.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누군가의 파산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라는 게 근대 자본주의 경제학자들의 이론이다. 30~40년마다 일어나는 경제 대공황은 그 과정이라고 한다. 자신이 온전히 갖지 않은 자본을 빚으로 해서 자라나는 경제체제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자만큼 경제가 성장하면 그 빚을 갚는데 문제가 없지만, 어느 순간 이자의 크기만큼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고, 소비가 줄어들 경우 빌린 돈을 갚지 못해 궁극에는 파산자가 생길 수밖에 없는 체재다.

최저임금의 선택 문제는 이런 자본주의 사회에서 분배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는 피할 수 없는 숙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안정 위에 최소 수혜자의 행복이 나아지는 방향으로 개선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변화할 경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하는 사람들이 속출할 수 있고, 너무 느린 변화는 변화의 중간에 도태되는 사람들이 생길 수 있다.

변화에 있어서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최상의 적절한 속도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오동희 산업1부장오동희 산업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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