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에 깃발 꽂은 코리안리, 판 커지는 亞 재보험시장

머니투데이 싱가포르=권화순 기자 2017.07.26 04:34
글자크기

[금융강국코리아 2017]⑨-1 말레이시아 작은섬 라부안에 무인지점 연 코리안리

편집자주 국내 금융회사들의 해외 진출 경험이 쌓이며 수익성에 초점을 맞춘 선택과 집중 전략이 주목받고 있다. 성장 잠재력이 높다고 무조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사 역량과 현지시장 여건을 꼼꼼히 따져 돈을 벌 수 있는 지역을 선별해 집중한다. 현지 금융회사들도 점점 규모를 키우며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개발도상국이라고 쉽게 해외 진출을 결정해서는 실패하기 십상이라는 판단이다. 머니투데이는 국내 금융회사들이 해외 현지 금융회사와 경쟁한다는 마음으로 전력을 다하고 있는 해외 진출 현장을 찾아 금융한류를 확대하는 모습을 생생히 전달한다.

싱가포르 경제·금융의 중심지 CBD(Central Business District)에는 씨티은행, 도이치뱅크, 알리안츠, 뮌헨재보험 등 글로벌 금융회사가 모여 있다. 이곳에 국내 유일의 재보험사 코리안리가 진출했다. 코리안리의 동남아시아센터인 싱가포르지점은 5분만 걸어가면 싱가포르의 명물 ‘마리나베이샌즈호텔’이 한눈에 들어오는 싱가포르 중심지에 자리한다.

코리안리는 싱가포르지점을 발판 삼아 이달부터 국내 보험사로는 최초로 말레이시아 경제특구 라부안에 무인지점을 열었다. 현지 정부가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선 외국 보험사에 신규 인가를 내주지 않아 경제특구인 라부안으로 우회진출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



말레이시아에 깃발 꽂은 코리안리, 판 커지는 亞 재보험시장


◇판 커지는 싱가포르 재보험시장=코리안리는 1979년 싱가포르에 진출했다. 이후 싱가포르지점을 근거지로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총 20개 지역, 150개 보험사와 거래를 텄다. 지난해 기준 국가별 수재보험료 비중은 태국이 39.1%로 가장 높고 이어 베트남(10.6%) 인도네시아(9.7%) 싱가포르(9.3%) 인도(7.8%) 파키스탄 (7.1%) 말레이시아(6.8%) 순이다.

싱가포르에 아시아 거점을 둔 재보험사는 총 28개사다. 코리안리 싱가포르지점은 지난해말 기준으로 수입보험료가 15위로 중위권이다. 싱가포르에 거점을 둔 대다수 재보험사가 중국과 일본, 한국 등 동북아시아 지역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반면 코리안리 싱가포르지점은 동북아시아 지역이 영업 대상에서 제외된다. 동남아 지역 실적만 놓고 보면 코리안리 싱가포르지점의 수재보험료 규모는 9위로 올라간다.



싱가포르는 지난해에도 재보험사 3곳이 신규 진출할 정도로 아시아의 거점으로 주목받는 지역이다. 인구 증가와 경제성장률을 고려할 때 동남아시아와 인도는 최고의 잠재력을 지닌 재보험시장으로 꼽히는데 이들 국가로 진출할 수 있는 길목이 싱가포르다. 박진화 코리안리 싱가포르지점장은 “재보험시장만 놓고 보면 홍콩은 이제 싱가포르에 뒤졌다고 볼 수 있다”며 “영국 로이즈가 세계적으로 대표적인 재보험시장인데 싱가포르가 아시아판 ‘로이즈’인 셈”이라고 비유했다.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보험시장이 성숙해 원수보험사들이 재보험에 가입하는 비중이 크지 않거나 해당 지역 재보험사가 물량을 모두 소화한다. 반면 동남아국가들은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4~7%로 높은 반면 화재보험 등 손해보험상품은 발달하지 않아 재보험 수요가 많다.

◇5년 내 10위권 진입이 목표=코리안리는 동남아시장에서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보고 있다. 각국이 경제성장으로 기업 규모가 커져 보험 수요가 날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박 지점장은 “재보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장기간 꾸준히 영업할 것이란 믿음과 보험사고가 났을 때 재보험금을 제대로 지급할 것이란 믿음을 주는 것”이라며 “코리안리는 이미 38년 전 싱가포르에 진출해 꾸준히 영업해온 만큼 두터운 신뢰를 쌓았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시아에서 큰 보험시장으로 꼽히는 태국은 보험사 60여곳이 경쟁하는데 이중 40곳이 코리안리와 거래할 정도다. 코리안리는 2014년 태국에 거대한 홍수가 발생했을 때 거액의 보험금 지급으로 적잖은 타격을 입었지만 신속하고 정확한 보험금 지급으로 현지에서 신뢰가 더 돈독해졌다. 박 지점장은 “유럽이나 미국 재보험사가 아니라 아시아권 재보험사로 오랜기간 영업해왔다는 점이 현지 보험사에 상당한 신뢰를 주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코리안리 싱가포르지점은 지난해 수재보험료가 897억원에 달했다. 올해는 이보다 8.2% 늘어난 971억원을 목표로 잡았다. 올해는 성장률 목표치를 보수적으로 세웠지만 중장기적으론 연평균 20% 이상 성장해 앞으로 5년 안에 싱가포르 재보험사 상위 10위권에 진입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무인지점으로 말레이시아 시장도 공략=코리안리는 이달 초 말레이시아 라부안에 무인지점을 열었다. 라부안은 인구 8만명의 작은 섬으로 1840년까지만 해도 무인도였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자국 보험사를 보호하기 위해 수도 쿠알라룸푸르에는 외국 보험사에 신규 인가를 내주지 않는다. 대신 경제특구인 라부안에 인가를 내는 정책으로 역외 금융중심지 육성에 공을 들인다.

말레이시아 시장에서 영업하는 재보험사는 크게 3개 그룹으로 나뉜다. 1그룹은 역내 인가를 받은 재보험사, 2그룹은 라부안에서 인가받은 재보험사, 3그룹은 말레이시아에서 인가를 받지 못한 해외 재보험사다. 3그룹 재보험사는 말레이시아에서 재보험 물건을 받을 경우 막대한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게다가 말레이시아 보험사는 재보험 물량의 50% 이상을 3그룹인 해외 재보험사에 넘길 수 없다는 규제도 받는다. 1그룹에 속하는 재보험사는 말레이시아 보험사의 재보험 물량을 100% 받을 수 있다. 2그룹은 재보험 물량은 100% 받을 수 있으나 1그룹에 비해 충당금 부담이 조금 더 크다.
 
코리안리는 그간 3그룹에 속해 말레이시아에서 재보험 수입보험료가 60억원에 그쳤다. 장기적으로 말레이시아 시장에서 수익을 내려면 현지 정부의 인가를 받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게다가 라부안에서 보험인가를 받으면 사실상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인 무인지점으로 영업이 가능하다. 사무실이나 직원이 없어도 싱가포르지점에서 말레이시아 보험사를 대상으로 영업할 수 있다.
 
막상 라부안에 무인지점을 세우려니 국내 금융당국의 규제가 걸렸다. 한국 금융당국은 해외지점을 설립할 때 사무실과 직원 고용 등 ‘실체’가 있어야 인허가를 내주는 원칙이 있었다. 하지만 금융회사의 해외진출을 지원하고 기술발달로 달라진 영업방식을 고려해 규제를 완화해줘 무인지점으로 말레이시아 진출이 가능해졌다.
 
라부안지점은 사무실도, 직원도 없어 보험계약은 라부안지점 명의로 하되 실제 업무는 싱가포르지점이 담당한다. 박 지점장은 “말레이시아에서 재보험 계약은 통상 상반기에 마무리되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라부안 효과’를 보려면 내년 초는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말레이시아 현지 보험사와 재보험 중개사를 상대로 홍보를 진행하고 다음달에는 한국 본사 직원들이 직접 말레이시아 고객사 20곳을 만나 설명회도 연다”며 내년 상반기를 대비해 이미 영업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