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수가 우거진 당산/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외연도는 충남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섬이다. 대천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 53㎞ 떨어져 있으며 여객선을 타고 2시간 15분 정도 걸린다. 외연도로 가는 뱃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배를 따라오던 크고 작은 섬들이 모두 돌아가고 망망대해에서 시선이 방향을 잃을 무렵 작은 점 같은 섬 하나가 나타났다. 해저 깊이 숨어 있다 불쑥 솟아오른 듯, 느닷없는 만남이었다.
해안 트레킹 코스의 시작점으로 삼은 곳은 고라금. 마을 끝에 있는 공원을 지나 발전소에서 고개를 넘으면 닿는다. 언덕을 거의 내려갈 무렵 대숲 사이로 파란 바다가 활짝 펼쳐졌다. 산속에서 느닷없이 개활지를 만난 듯 시야가 환했다. 옥빛? 코발트? 갯벌이 없는 곳이라 물이 수정처럼 맑았다. 해변에는 크고 작은 몽돌들이 수없이 깔려있었다. 파도가 다녀가며 남겨 놓은 지문들이다.
해변을 타고 한 바퀴 도는 트레킹 코스/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돌삭금을 거쳐 작은명금‧큰명금으로 가는 길은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런 풍경 앞에서는 누구나 말을 잃게 마련이다. 이런저런 수식어가 필요한 풍경은 극치의 아름다움이라고 하기 어렵다. 언덕에 양탄자처럼 펼쳐진 초지와 시원한 바다, 그리고 구름을 두른 봉화산. 유년기에 잃어버린 꿈속으로 데려다주기라도 할 것처럼 푸른색 일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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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명금을 벗어나 약수터로 올라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벤치에 앉았다. 오장육부에 담아온 속세의 티끌이 말끔하게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거기서 내처 올라가면 봉화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하지만 나는 노랑배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트레킹의 종착점이 그곳이다. 기어이 정상까지 올라가겠다고 욕심낼 일은 아니다. 걷는 것은 정복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전망대에 서니 석양을 고스란히 안은 바다가 금빛으로 반짝거렸다. 오른쪽으로는 대청도와 중청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고, 왼쪽 당산 너머로 팔색조가 산다는 횡견도가 길게 누워 있었다. 이곳이 섬에서 정해 놓은 탐방로의 종점이다. 험해지는 길을 따라 계속 가면 마당배가 나오고 섬을 대부분 일주할 수 있지만, 그 역시 욕심대로 할 일은 아니다. 해가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다. 중간에 시간을 너무 많이 썼나? 아니, 잘한 일이다. 시간에 걸음을 담보 잡히지 않았으니 얼마나 행복했던가.
해가 지는 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저녁 빛을 받은 장엄한 풍경이 곁을 따랐다. 조금씩 나 자신을 지워 풍경 속으로 스며들었다. 단 1초도 의미 없는 순간은 없다는 생각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