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금 최대 17조원' 애플·구글·페북 옥죄는 'EU 경쟁법'은?

머니투데이 이영민 기자 2017.07.02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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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리포트]EU, 美 IT기업에 경쟁법 집행 강화…'EU vs 미국' 무역 갈등 촉발 요인될 수 있어

'벌금 최대 17조원' 애플·구글·페북 옥죄는 'EU 경쟁법'은?


EU(유럽연합)가 '경쟁법'을 무기로 미국 IT(정보기술) 기업에 잇달아 철퇴를 내리고 있다. 계속 이어지는 EU의 경쟁법 집행이 미국과 EU의 무역전쟁을 촉발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EU 집행위원회가 구글에 24억2000만 유로(약 3조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해 반독점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다. 같은 혐의에 대한 벌금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EU가 27일(현지시간) 발표한 구글의 불공정 거래 행위는 △구글 쇼핑 상품의 검색결과 상단 배치 △구글 쇼핑 미이용 상품의 검색결과 순위 강등 등 크게 2가지다.

마그레테 베스타거 EU 경쟁담당 집행위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구글이 2008년부터 자사의 검색시장 지배력을 남용해 구글 쇼핑에 불법적인 혜택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상품을 검색할 때 구글 쇼핑에 등록된 제품을 먼저 보여주는 식으로 불공정 경쟁을 했다는 것이다.



◇ EU 경쟁법…'담합·독·과점·합병·정부지원' 통제해 유럽 기업 보호

이번 결정은 'EU 경쟁법'에 근거한다. EU 경쟁법은 EU 역내 시장에 적용되는 경쟁법으로 2009년 11월까지 'EC 경쟁법'이라고 불렀다. 불공정경쟁, 독점적 지위의 남용, 기업 합병 통제, 과도한 보조금으로부터 유럽 기업들을 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EU 경쟁법은 로마조약(현 TFEU)을 기본 골자로 한다. 로마조약은 프랑스, 룩셈부르크, 이탈리아, 서독, 벨기에, 네덜란드 등 6개국에 의해 1957년3월25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체결, 1958년1월1일 발효됐다. 유럽 경제 통합 기구 '유럽경제공동체'(ECC, European Economic Community)을 설립하기 위한 조약으로 'ECC 조약'이라고도 한다. 두 차례 개명을 거쳐 현재는 '유럽연합의 기능에 관한 조약'(TFEU)이라고 부른다.


EU 내에서 적용되는 경쟁법은 크게 4가지 원칙을 따른다. 우선 기업 간의 담합 금지다. TFEU 제101조는 기업 간의 담합, 기업이 연합해 결정하는 일, EU 내에 불공정경쟁을 야기할 수 있는 모든 합의를 금지하고 있다.

두 번째 원칙은 독점적 지위 남용 금지다. TFEU 102조는 독점적 지위를 남용해 무역에 영향을 미치거나 경쟁을 방해 또는 제한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다음으로 합병 원칙이다. EU는 1989년부터 합병규칙을 시행해 유럽연합 및 유럽 경제 지역 내 일정한 매출액을 가진 기업이 관여하는 합병, 매수, 합작 사업을 통제한다. TFEU 102조에는 유럽 위원회에 합병 통제에 대한 권한을 부여했다. 또 유럽연합이사회(Council of the European Union) 규칙 No.139_2004에 의해 규정돼 있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보조 금지 원칙이다. TFEU 107조와 112조는 원칙적으로 기업이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에 따른 특혜를 막고 유럽연합 내의 경쟁이 왜곡되는 현상을 막기 위해서다. 다만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 보상, 빈곤 지역 개발 지원, 중소기업 원조, 실업자 고용 프로그램 지원 등 예외적으로 보조금을 허용하는 경우도 있다.

◇ '최대 17조원' 미국 IT 기업에 과징금 철퇴

EU는 1989년 이후 마이크로소프트(MS), 인텔, 애플,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의 EU 경쟁법 위반 여부를 조사해 큰 액수의 과징금을 부과해왔다.

앞서 2009년 EU는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에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10억6000만 유로(약 1조4000억 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경쟁업체의 시장 진입을 방해하기 위해 자사 컴퓨터 칩을 전부 또는 거의 구매하는 컴퓨터 제조업체들에 판매 장려금(리베이트)을 지급했다는 혐의다.

또 컴퓨터 제조업체들이 경쟁업체 AMD 기반 제품 출시를 취소하거나 지연시키는 조건으로 금전을 지급했으며 불공정 거래 조사 당시 증거를 은닉한 혐의도 받았다. 인텔은 판결에 불복하며 유럽 1심 재판소에 항소했다.

EU보다 1년 앞서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는 인텔에 같은 불공정 거래 행위를 근거로 벌금 260억 원을 부과했다. 인텔은 이에 불복해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했다. 2005년 일본 공정거래위원회도 같은 혐의로 반독점법 위반 판결을 내렸다. 인텔은 해당 판결에 항소하지 않았다.

구글, 인텔 이전에 MS도 2004년 반독점법 위반으로 과징금 4억9720만 유로(약 6507억 원)를 부과받았다. MS가 당시 세계 PC 운영체제(OS)시장의 95%를 독식하던 지위를 남용해 '미디어 플레이어 끼워 팔기'를 했다는 혐의였다.

EU 경쟁법 위반으로 가장 큰 과징금을 부과받은 기업은 애플이다. 애플은 지난해 8월30일 EU로부터 130억 유로(약 16조9000억 원)에 달하는 벌금 폭탄을 맞았다. 지난 10여 년 동안 아일랜드로부터 법인세 감면 특혜를 받았다는 혐의다.

EU에선 국세 당국이 특정 기업에 대해 세금을 우대하는 것은 정부의 보조를 금지하는 EU경쟁법 TFEU 107조와 112조를 위반하는 행위다.

해당 판결에 대해 아일랜드 정부는 자국의 주권이 침해받았다며 항소를 선언했고, 애플 역시 유럽사법재판소(ECJ)에 항소장을 냈다.

페이스북은 EU 경쟁법 중 합병규칙을 위반해 과징금 1억1000만 유로(약 1400억 원)를 부과받았다. 왓츠앱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허위 정보를 전달했다는 혐의다.

EU가 지난 5월18일 공식 홈페이지에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왓츠앱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양사의 고객 정보를 통합할 기술적 방법이 없다고 EU에 보고했다. 하지만 지난 8월 왓츠앱은 개인보호 규정 변경을 통해 왓츠앱 사용자 전화번호를 페이스북 아이디와 통합한다고 밝혔다.

기업 M&A(인수합병) 과정에서 벌금이 부과된 사례는 이 사례가 처음이다. 마그레테 베스타거 EU 경쟁담당 집행위원은 "이번 결정은 기업들이 EU의 합병 규칙을 준수해야 할 필요가 있고, 인수 합병 심사 과정에서 EU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에 페이스북은 성명을 통해 "2014년 제출한 자료에 허위 정보를 주장할 의도가 전혀 없었다"며 "EU 집행위의 절차를 존중해 사안에 대한 전면 검토를 적절히 행했다"고 반박했다.

EU 집행위원회의 미국 IT 기업에 대한 경쟁법 집행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EU는 이번 건과 별도로 두 건의 예비조사 결과 구글이 EU 경쟁법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EU는 구글의 애드센스 광고서비스와 안드로이드 휴대전화 소프트웨어 불공정 거래, 페이스북의 사용자 정보 광고 활용, 애플의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반독점법 위반 여부, 아마존과 룩셈부르크 정부의 법인세 경감 담합 의혹 등을 조사 중이다.

전문가들은 EU가 미국 IT 기업들에 과징금과 세금을 부과하는 일이 미국과 EU의 무역 갈등을 심화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EU의 과징금 철퇴가 미국 기업들의 반발을 일으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무역 행보를 부추길 수 있다고 분석했다.

◇ 공정위, 글로벌 IT 기업 '불공정 거래' 검토 준비…'구글세' 도입 움직임도

우리나라의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도 최근 글로벌 IT 기업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미국 ICT(정보통신기술) 기업 퀄컴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조300억 원을 부과했다. 이동통신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남용하고 불공정거래행위를 했다는 혐의다.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중 역대 최대 규모다. 퀄컴은 지난 2월 공정위 처분에 불복하는 소송을 제기하고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EU의 과징금 부과로 구글과 페이스북 등 글로벌 IT 기업의 시장지배력 남용을 규제하려는 우리 정부의 움직임도 더욱 매서워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26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김상조 위원장 취임 이후 IT 관련 시장의 불공정 거래와 반독점 관련 시장 점검을 준비하고 있다. 기존 인터넷·모바일 시장의 경쟁환경 조사와 더불어 빅데이터 시장 질서도 챙기겠다는 방침이다.

공정위의 움직임을 시작으로 IT 산업 분야에서는 '구글세' 도입 등을 통해 국내 기업과 해외 기업에 대한 역차별 해소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무선인터넷산업연합회(MOIBA)와 인터넷 업계에 따르면 구글이 지난해 한국 앱마켓에서 올린 매출은 1조4000억 원으로 추정된다. 페이스북도 3000억 원 이상의 매출과 1400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구글과 페이스북 모두 자본금 1억 원 내외의 유한회사라는 이유로 제대로 세금을 내지 않고 있다. 유한회사는 법적으로 매출액 공시나 외부 감사 의무가 없어서다.

'구글세'라는 신조어가 탄생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구글세는 애플, 구글처럼 조세체계상 맹점을 이용해 합법적으로 탈세하는 글로벌 기업에 부과하는 세금을 말한다.

영국은 지난 2015년 구글세를 처음으로 도입해 구글에 1억3000만 파운드(약 1900억 원)의 세금을 징수했다. 비슷한 시기 이탈리아도 구글에 10년간의 세금을 계산해 3억600만 유로(약 4000억 원)를 추징했다.

이와 관련 국내에서는 지난 21일 국민의당 오세정 의원이 글로벌 IT 기업의 매출액, 영업이익, 가입자 수 등의 자료를 정부에 공개하도록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방송통신위원회도 3월 '외국사업자 집행력 확보 방안'을 주제로 법무법인 세종에 연구용역을 줬다. 국내 기업과 해외 기업 간 역차별 해소를 위한 대책 마련의 일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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