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의 영악한 승부사들이 이미 본능적으로 터득하고 있던 이 계책의 탓인지는 단정할 수 없지만 진보와 보수의 노선이 ‘수렴’되는 게 어느덧 전지구적 현상이 됐다. 사회당 소속인 프랑수아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이 2008년 집권한 뒤 부유세 도입 등을 시도하다 에마뉘엘 마크롱을 경제장관으로 발탁해 우파적 노동개혁으로 돌아선 것 역시 이 범주에 속한다.
더 놀라운 대목은 문재인정부가 야심차게 밀어붙이는 주요 공약이 박근혜정부의 것과 거의 같다는 점이다. 장시간 근로관행 개혁, 공공부문부터 비정규직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 비정규직 차별회사에 대한 징벌적 금전보상제도 적용 등이 포함된 노동공약은 제목을 가리면 문재인 대통령의 것이라 해도 믿을 정도다.
일부는 박근혜정부가 이행했다. 경찰을 4년간 1만2000명 늘린 것이다. 약속을 어긴 것도 있다. 매년 1500명씩 선발하겠다던 특수교사 등 교사의 증원이 그것이다. 학령인구와 학교수가 줄면서 자연감소분을 채우는 데 그쳤다.
통상 공약이 이행되지 못하는 이유는 애초부터 선거용이어서 실현 불가능한 것이 많아서다. 예산 등 여건이 받쳐주지 못하거나 이해관계자들의 저항이 격렬해 안 된 사정도 있다. 정권의 부정부패로 내적 동력이 약해진 게 원인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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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정부의 ‘미완의 공약’ 중 쓸 만한 것들은 다음 정부가 손질해 요긴하게 써먹는데 문재인정부가 그렇다. 현실과 그에 대한 인식이 다르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다. 상대의 이슈를 점유하려 박근혜정부가 가로채간 공약을 되가져왔을 수도 있다. 박근혜캠프를 기웃거린 ‘철새 폴리페서(정치교수)’들이 문재인캠프에 합류한 까닭도 부분적으로 있을 것이다.
또 하나, 표를 얻기 위해 경쟁하다 생긴 포퓰리즘의 결과일 수도 있다. 최저임금인상의 경우 ‘2020년까지 1만원’이냐 ‘대통령 임기(2022년) 내 1만원’이냐만 다를 뿐인데 ‘선의’로만 해석하긴 어렵다.
재원조달 방법이 명확하지 않고 결국 세금을 더 걷고 국가부채를 늘리는 게 불가피하다는 논리는 문 대통령의 감성적 메시지 앞에서 무력하다. 방향성이 같다고 해도 마크롱이 프랑스 사회당이 걸은 길을 거슬러 공공 일자리를 줄이고 고용과 해고를 쉽게 하려는 것과 정반대의 방법론으로, 견제 같은 견제 없이, 문재인정부는 가고 있고, 갈 것이다. 2017년의 봄날도 이미 그렇게 다 갔다.